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2011.09.02 10:21:00

‘인생 사용 설명서(해냄, 김홍신 저)’를 읽고
책 제목이 도발적이라는 느낌이다. 인생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다. 그래서 고귀한 면도 있다. 인생을 사용한다는 말로 표현하면 거부감이 인다. 사용은 구체적인 물건을 사사로이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에는 마모의 느낌도 있다. 인생을 물건처럼 닳아 없어진다고 표현하면 황당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책 제목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다. 나름대로 독특한 의미를 풍긴다. 우선 우리의 삶이 영원한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소멸한다. 인생은 본인 스스로 영위해 나가는 것이니 사용한다는 의미와도 통한다. 그리고 이 책이 삶의 지혜를 안내하고 있으니 곧 설명서 역할을 충분히 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한번 뿐인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 것인가를 안내한다. 누구나 인생의 본질을 묻고 답을 구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이러한 물음과 답을 통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을 한다. 단순히 고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이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흔히 자기계발서나 기타 인생에 대한 안내서는 삶에 필요한 안내를 늘어놓는다. 그러나 이 책은 인생을 위해 무엇을 하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소개하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사회적 가격 때문에 열등감에 빠져 주눅이 들거나 자신감을 잃거나 갈등에 시달리곤 합니다. 성적 상위의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인문계열 출신들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열등감을 느낀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른바 일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음에도, 외국의 명문대학 출신이나 의학계열 또는 사법고시 합격자들과 자신을 비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17쪽).

글에서 보듯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들도 열등감을 느낀다. 이들이 열등감을 가지는 이유는 남과의 비교에 따른 결과다. 열등감은 우리를 영원히 결핍의 상태에 머무르게 한다. 열등감은 자신의 성취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열등감을 가지는 것은 세상에 끌려다는 꼴이다. 남과 비교하면 주눅이 든다. 이 상태에서 세상에 끌려가면 힘들고 지칠 수밖에 없다. 세상은 끌고 갈 때 의미가 있고 즐거움이 넘친다.

남과 비교하다보면 스스로 허물어진다. 남의 자리만 보면 내 삶은 갉아먹게 된다. 소중한 도전과 열정은 위축되고 나의 미래는 점점 암울해진다. 남을 볼 것이 아니라, 내 세상을 봐야 한다. 내게 중요한 것은 남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다.

세상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 길지 않은 인생에서 타인과의 비교에 치중해 존귀한 생명을 잃어버린다면 그야말로 불행한 삶이다. 실제로 우리 시대에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보다 남과 비교에서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등감을 버리고 자존심을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만을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은 자만심이다. 스스로 존엄하다는 걸 인정하고, 자신이 존귀하듯 나 아닌 다른 모든 것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저자는 자존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내 인생은 누구의 것입니까?"라는 말로 강조한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듯, 인생도 영혼과 육신의 두 바퀴를 굴리며 가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인생 또한 그렇습니다. 힘들 때는 힘든 쪽으로 집중하고, 고통스러울 땐 고통스러운 쪽을 살피고, 사랑할 때는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고, 시험 볼 때는 공부에 치중하고, 병들었을 때는 치료에 정성을 다하고, 갈등에 싸였을 때는 얽힌 타래를 풀기 위해 정신을 가다듬어야 합니다(60쪽).

저자는 ‘인간시장’이라는 책으로 8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올랐다. 이 작품은 텔레비전에 극화되었고, 저자는 사회적 명성까지 국회의원까지 했다. 그러나 작가는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그때 분노하기보다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용서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다독거렸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소설로 형상화한 ‘김홍신의 대발해’를 8년여 동안 구상하고 집필했다. 이러한 노력은 열등감을 훌훌 털어내고 자존심을 확립한 것이라고 회고하고 있다.

‘인간의 향기(102~106쪽)’도 잔잔한 감동이 있다. 사랑과 베풂에 의미를 깊게 새기고 있다. 이는 단순히 주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주는 이와 받는 이가 함께 누리는 것이다. 베풂은 바이러스처럼 잘 번지는 특성이 있다고 말한다.

책은 대게 수준에 맞는 독자가 있다. 이 책은 특별한 대상이 없다. 누구나 읽으면 좋은 책이다. 아니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책은 작가의 목소리보다 읽는 독자에 따라 울림이 달라지는 책이다. 삶의 깊이에 따라 내용도 달라질 수 있는 책이다.

특별히 시간을 낼 필요도 없다. 가을 햇살이 따뜻한 날, 노란 달밤이면 더 좋다. 여유를 갖고 잔잔한 음악과 함께 읽어도 된다. 책을 읽다보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나를 사랑해야 하는 마음이 열린다. 타인을 기쁘게 하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행복한 마음을 배우게 된다. 나와 이웃과 세상이 행복해지는 인생을 배우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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