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현상을 보고 듣고 말하고 느낀다. 하나의 현상을 보고도 자기의 주관, 겉모습 등을 보면서 다른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또한 사람들이 흔히 하는 행동 중 하나가 사실(fact)과 진실(truth)을 쉽게 혼동한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는 것은 하나의 행위만으로도 성립하지만 그것이 진실로 받아들여지려면 많은 사람이 공감할 만한 반복과 누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를테면 오늘밤에 달이 뜨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달이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건 진실이 아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매사 합리적이고 과학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사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각종 믿을만한 증거를 찾아보고, 충분한 근거자료에 의해 판단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는 어떤 주장과 피상적 사실을 접할 때 그것이 합리적 근거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늘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따라서 늘 잘못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대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사실과 진실에 대한 합리적 이해와 함께 과학적 사고를 강조한 것은 요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작년 선거 과정 중에서 후보 단일화를 하는 과정에서 상대 후보인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원을 건넸다는 사건에 대한 이해 때문이다. 어쨌거나 당사자인 곽 교육감이 돈을 건넸다고 순순히 인정을 했고, 돈의 성격을 후보 단일화 대가가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선의’였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선의(善意)는 말 그대로 ‘순수하고 좋은 의도’를 말하는 것이지 법률 용어인 ‘어떤 사정을 알지 못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여튼 이 사건과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과 신문들은 그 돈이 곽 교육감의 도덕성과 지도력에 타격을 입혔으므로 사퇴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처음에는 서울시 오세훈 전 시장의 무상급식 찬반투표에 대한 패배를 만회하기 위한 검찰의 기획수사가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들어서 반신반의하였으나 당사자인 곽 교육감의 고백(?)이 얼마 후 바로 있어서 다행히 우려했던 기획수사는 아닌 듯 보인다.
하지만 검찰에서 피의자에 대한 확실히 확인되지 않은 사항에 대해 실시간으로 언론에 수사상황을 흘리고(피의사실 공표는 현행법상 불법이다) 이러저러한 상황을 생중계하면서 곽 교육감에 대해 도덕적 파산선고를 하고 구석으로 몰고 가겠다는 전형적인 구태의 수사수법을 동원하는 것은 인권적으로나 법적으로 문제가 심각하다고 본다. 물론 그 이전에 선의든 뭐든지 간에 사퇴한 후보에게 돈을, 그것도 일반 시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2억원을 건넸다는 행위 자체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도덕적으로는 상당히 부적절한 행위라고 본다. 하물며 도덕성이 생명인 교육계 수장은 더 그렇다.
그러나 곽 교육감의 해명과 선거 당시 관여했던 측근들의 발언들을 들어보면 이 돈이 후보 사퇴에 따른 돈이라고 보기에는 여러 가지 쟁점이 있다. 반면에 현재 구속 상태인 박 교수의 발언에 의지한 검찰의 일방적인 수사상황 흘리기는 어느 한 당사자의 단순한 발언일 뿐이다. 간혹 구속된 상태의 피의자는 자포자기 심정에서 형량을 줄이거나 석방을 위해서 검찰의 수사 방향에 맞게 따르는(이를 ‘플리바기닝’이라 하는데 현행법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개연성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사례도 있다.
지금 한쪽은 아니라고 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맞다고 하는 치열한 진실게임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반면에 부인하는 당사자의 얘기는 대부분 흘려듣고, 인정하는 당사자의 얘기를 검찰이 흘리면 그것을 확실히 확인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언론에서 열심히 그대로 받아 적기만 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더군다나 언론에서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은 정확한 증거에 의하지 않고 검찰 관계자들을 통한 발언으로만 미루어 짐작하고 있지는 않은가.
필자가 보건대 검찰은 증거를 확보했다고 하나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향후 법정에서 사실 관계를 논할 때 상대측에서 미리 방어를 쉽게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인다. 칼자루는 검찰이 쥐고 있는 상태에서 수사상황에 목말라 하는 언론에 조금만 흘려줘도 알아서 쓰고 있으니 이른바 꽃놀이패를 쥐고 있는 형국 아니겠는가. 또한 곽 교육감이 이러저러한 일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지, 검찰에서 흘리는 수사상황과 언론 보도에 대한 인정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왜냐면 검찰이 확보한 증거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언론에 해명을 한다면 수습할 수 없는 부메랑이 되어서 본인을 강타하게 될 것은 법학자인 곽 교육감이 더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법정으로 가서 정면 돌파를 하겠다는 마당에 지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현명한 행동일 것이다.
우리는 어느 한쪽의 얘기만 듣다보면 정확한 진실을 알지 못한다. 검찰이 흘려서 언론에 나오는 얘기만 듣다보면 곽 교육감의 잘못이 명백해 보이지만, 곽 교육감 주변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2억원이 선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곽 교육감 개인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서 정확한 사실관계를 따져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그러므로 그 돈이 진짜 후보 사퇴에 따른 검은돈인지 아닌지는 법원에 가서 확실한 사실관계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또한 곽 교육감을 비판하려면 그 이유와 증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곽 교육감을 변호하거나 두둔하는 이유로는 정책에 대한 선호를 떠나서 비판하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본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2억원의 돈이 아무리 선의였다고 해도 도덕적으로는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은 돈이었으므로 교육감을 사퇴한 자연인 상태에서 법정 다툼을 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생각한다. 그렇다고 교육감 사퇴가 2억원에 대한 검은돈을 인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해서 언론이나 사람들은 잘못을 인정한 것이라 여기겠지만. 차라리 한번 죽어서 백년 살 길을 택하는 것, 그 후에 명예회복을 하고 지금 교육계에 부담을 덜어 주는 것이 현재 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울러 이번 사건과 연계하여 교육감 직선제 폐지 운운하는 것은 맞지 않다. 본 사건은 개인적인 문제이지 선거 시스템과는 별개인 것이다. 지방자치제나 국회의원 선거로 당선된 정치인들이 비리 사건으로 중도 하차했다고 해서 선거제도 자체에 대한 무용론이 고개를 들지는 않는다. 교육을 폄훼하는 일련의 주장들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