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는 아니지만 직장을 다니다가 불가피한 경우, 사직서를 내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상사나 동료 등과 마음이 맞지 않거나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서 큰 실수를 한 경우, 보통 사직서를 쓰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와 같이 본인이 인정하고 본인의 의지로 사직서를 제출하면 상관이 없지만, 타의에 의해 사직서를 제출하여 이것에 대한 효력 유무를 다투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번 호에서는 사직서를 냈으나, 이것이 본인의 의사에 따른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을 내린 수원지방법원의 판결과 아는 만큼 보이는 법(김용국)의 내용을 인용하여 소개해 본다.
모 회사의 경영관리국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 ‘사표내’ 씨는 어느 날 사장에게 사직서를 냈다. 얼마 전 회사의 신축사옥 부지 계약을 했다가 일이 꼬이려고 했는지 몇 가지 문제가 생기자 실무자로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일단 사표를 낸 것이다. 그런데 사 씨는 사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는 않고 잘못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한 것이었는데, 회사에서는 덜컥 사표를 수리해 버렸다. 당황한 사 씨는 부당해고라며 펄쩍 뛰었다.
사 씨는 “계약 과정에서 나는 단순한 실무자였어요. 그런데 사장님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뜻으로 사직서를 내라, 그러면 절대로 수리되지 않게 해 주겠다’ 라고 제안하여 제 뜻과는 상관없이 사표를 썼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아는 회사가 사표를 수리했으니 해고나 다름없어요." 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회사 측 주장은 달랐다. 사 씨는 이사회 결의나 회장 동의도 받지 않은 채 회사에 불리한 계약을 체결했고, 회사는 책임을 묻고자 사 씨에게 사직서 제출을 요구했더니, 본인이 잘못을 인정하여 사직서를 제출했고 회사는 사표를 수리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렇듯 법은 사람의 속마음을 근거로 판단해야 할 경우도 있다. 민법에는 이른바 ‘진의(眞意) 아닌 의사표시는 무효가 된다’ 라는 조항이 있다. 법원은 지금까지 사직의 뜻이 없는 노동자가 어쩔 수 없이 사표를 내고 이를 회사가 수리하는 방식은 ‘진의 아닌 의사표시’에 해당하여 무효라는 입장을 보여 왔다.
하지만 법원은 사표수리가 정당하다며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여기서 말하는 진의란 "특정한 내용의 의사표시를 하고자 하는 표의자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지 표의자가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바라는 사항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또한 사 씨가 사직서를 제출한 후 출근하지 않은 사실, 회사 서류를 몰래 가지고 나간 점, 당시 회장의 질책에 책임을 질 방법이 사직서 제출이라고 믿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회사가 진의가 아님을 알았다고 인정하기에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즉, 사직서는 함부로 내지 말라는 말이다. 회사에 다니면서 본인이 특별한 잘못을 저질러서 그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한 것이라거나, 일신상의 급박한 사연이 생겨서 불가피하게 낸다면 몰라도 내는 순간 사직의 의사표시를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중을 기할 일이다.
* 대전교육소식지에 있는 '재미있는 법률 이야기' 11월호 코너에 기고한 글입니다. 위 내용은 기존 판례를 단순히 소개하거나 법률적 지식을 전달한 것에 불과하므로 기타 자세한 사항은 반드시 전문가에게 법률적 자문을 받으시거나 법원 관계자에게 질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