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들의 입맛을 당기는 생선 중에서 인기 있는 횟감이 하나 있다. 그것은 가자미인데 생긴 것을 보면 이렇다. 몸은 계란형이고 한쪽이 거무스름하고 다른 쪽은 희다. 검은 쪽에 두 눈이 몰려 있으며, 눈이 있는 쪽을 위로 향하고 있다. 대부분 추운 곳에서 살아가기에 겨울철에 가장 맛이 좋다고 식도락가들에게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가자미를 잘 보면 눈이 오른쪽에 치우쳐 있는데 이런 것을 빗대서 세상의 일부 또는 한 쪽만을 바라보는 사람을 두고 가자미눈을 가졌다고들 말한다.
조선왕조 500여년의 위대한 기록이자 역사교육 자료인 조선왕조실록이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될 때 일제치하에서 편찬된 고종과 순종실록이 빠진 것은 이유가 있다. 고종과 순종실록을 편찬한 일제가 그 이전의 실록을 기록했던 조선시대 사관들처럼 관직의 독립성과 기술(記述)에 대한 비밀을 보장하지 않아서 역사적 진실성과 신빙성이 부인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 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기록한 불순한 의도 또한 배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역사는 작게는 한 개인의 기록이요, 크게 봐서는 국가와 세계라는 큰 조직의 기록물이기에 소중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역사를 어떻게 보고 가르치느냐는 인류의 큰 숙제라고 할 것이다. 그러함에도 요즘 역사교육이나 역사를 보는 관점이 편향되어 나타나는 흐름이 자주 보여서 답답한 심정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노파심인가.
일례로 역사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과학기술부는 얼마 전 고등학교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내용을 담은 역사교육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역사가 필수과목으로 지정돼 의무적으로 배우게 된 것이다. 늦게나마 다행이지만 만시지탄의 느낌이다. 그것은 역사교육에 대한 순수한 관점 보다는 그간 불거진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에서 실마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중국이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등 역사왜곡이 심해지자 학생들이 이러한 상황을 바로 알 수 있도록 역사교육을 강화할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만시지탄의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교육적 관점을 벗어나서 외교적, 정치적 관점으로 접근했기에 하는 말이다. 또한 역사를 수학능력시험이나 공무원 시험 등에서 점수 얻기를 위한 시험용으로 전락시킨 것도 큰 잘못이라 하겠다.
거기에 더해서 요즘 흘러가는 세태를 보면 각종 이데올로기가 적극 개입된 편향적인 시각으로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것같아 안타깝다. 무릇 역사라는 것은 어느 한 가지 원인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것들이 버무려져서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서 발생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보는 역사는 단지 하나의 사건만 보일뿐이지만 내면을 세밀히 분석해 본다면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도 그러하다. 결과론적인 것만 가지고 그 인물에 대한 됨됨이를 편향되게 평가하는 것의 문제점이 여기에 존재한다. 얼마 전 방송되었던 한국전쟁의 영웅적인 인물인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과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같은 인물에 대한 평가가 그렇다. 그들의 허물도 분명 존재하건만 그들이 세운 공(功)만 열심히 들여다보는 가자미눈을 가진 사람들은 어느 한쪽만 열심히 보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것이 역사교과서의 자유민주주의 논쟁이 아닌가 한다.
필자는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고, 역사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알고 있다. 불이 훤히 켜져 있는 사회에서 진실은 결코 우회하지 않을 것이고, 단순한 진실을 밝히지 못해 우회하고 표류하는 사회현상은 시급히 극복돼야 한다고 말이다. 또한 역사는 바로 내가 살고 있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자 기록이다. 아무리 못난 조상들의 역사가 조금 있다한들 침소봉대하여 그것만 탓하고 폄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저 앞산 바위의 모양이 예쁘지 않다고 정을 들이대서 깎아내려 하는 못난 석수장이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라틴어에서 진실(veritas)의 반대말은 거짓(falsum)이 아니라 망각(oblivio)이라고 한다. ‘진실한 것’은 ‘잊을 수 없는 것’이 되는 셈이다. 역사는 잊으려야 잊힐 수도 없고, 잊고 싶어도 잊히지도 않는다. 다시 한 번 기억하고 후세에게 바르게 가르쳐야 하는 준엄한 의무가 있는 것이다. 마틴 루터킹은 "우리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잔인한 만행이 아니라 오히려 선한 사람들의 침묵이었다"고 갈파했다.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고 올바로 볼 수 있게 알려주는 것, 이것은 살아남은 자들인 모든 우리 기성세대의 몫이자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