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학교의 불편한 진실

2011.11.29 15:52:00

행복한 학교는 어떤 곳일까. 행복한 학교는 교사와 학생이 서로 존중하며 안정되게 공부하는 곳이다. 선생님은 사람됨을 차근차근 가르쳐주고, 학생은 학업 성취로 삶의 질이 높아지는 기대를 안고 있다. 선생님은 교육 활동을 하는 동안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는다. 오직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는 일에 몰두한다. 선생님의 가르침은 온화한 가운데 아이들에게 감화를 준다. 학교에서 질서를 배우고 남과 사는 법도 배운다. 소외된 학생이 없고, 모두가 사랑스러운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 행복한 학교다. 교사와 학생이 눈길만 마주쳐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학교다.

지금 학교의 모습은 어떨까. 밖에서 보는 교실은 행복한 웃음이 넘치는 듯하지만, 확대경을 들이대면 불편한 진실이 보인다. 우선 가장 먼저 아이들은 수업에 의욕이 없다.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가도 앉지 않는다. 교과서도 없는 아이가 제법 보인다. 교사는 수업을 열심히 하는데, 아이들은 떠들고 있다. 수업이 시작되도 여전히 떠든다. 수업 시간에 휴대 전화 사용은 습관이 되어 버렸다. 청소 당번이면서 그냥 집에 가기도 한다.

모두 거짓말 같지만 진짜다. 물론 소수의 아이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수가 학교 문화를 흔들고 있다. 소수에 의해서 교권은 조금씩 무너지고, 무너진 둑으로 선량했던 아이들이 따라간다. 아이들은 이것이 행복한 학교라고 믿고 있다.

학교에서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것은 지식뿐만이 아니다. 예절, 성품, 태도, 노력, 인내심, 성실, 배려, 화법 등 인간적인 성숙이다. 이는 교육과정에 없다. 철학적 지식이나 참고서를 통해서도 해결할 수 없다. 오직 선생님이 사랑으로 적시고, 학생이 스스로 실행할 때 내면에 쌓이게 된다.

학교는 선생님의 지도에 대한 결과가 산출되지 않고 있다. 선생님이 학습 동기 유발을 위해 자세 등을 지적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당한 지도에도 버르장머리 없이 대든다. 말끝마다 핑계를 대며 선생님과 옳거니 그르니 논쟁을 한다. 심한 경우 오히려 선생님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일부 젊은 여교사는 무시당하기 일쑤다. 힘깨나 있는 남교사가 윽박지르면 듣는 척하지만, 젊은 여교사의 말은 귓등으로 듣는다. 아니 아예 무시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자기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에 대해 체벌은 당연히 못하지만 처벌도 못한다.

더 답답한 것은 교육 당국의 태도다. 교사가 먼저 학생을 존중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라고 한다. 학생의 눈높이에 맞추는 수업을 강조한다. 끝없이 긍정하라고 한다. 최근 아이들의 특성이니 이해하라고 한다. 교사가 바뀌면 된다고 한다. 친절한 미소로 아이들에게 한없는 사랑의 실천이 해답이라고 한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장악하는 방법은 뛰어난 수업 기술이라고 그럴듯한 논리를 펴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일정 부분 교사에게 책임이 있다고 민다.

아이들은 삶의 원칙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 주어진 일상적 삶의 의무도 다하지 않는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실내에서도 고성을 지른다. 무례한 행동은 일상이다. 준법정신도 없고, 더불어 사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자유와 방임도 모른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도 구분하지 못한다.

교육정책가들은 학교 문제의 해법을 학교 내에서만 찾고 있는데 잘못이다. 잘못된 패러다임 안에 갇혀 있으면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현재 학교의 문제는 외부에서 왔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찾아야 한다.

교육은 수행과정에서 자율성을 통제받고 어느 정도 강제성을 띠게 된다. 교실의 통제는 교육을 위해 수반되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서구 프랑스나 영국 등은 전통적으로 인권과 자유의 이미지가 강한 나라다. 그런데 학교 규율을 엄하게 하고 있다. 이는 교육의 본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다. 우리나라도 교육에 시장 경제가 도입되면서 수요자 중심 교육을 주장하며 무턱대고 학생을 위한 교육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학교를 이상하게 만들었다.

무분별한 인권 강조도 문제다. 인권 조례에서 직접 직시하지 않았지만, 학생의 학습권, 교사의 교권을 흔들었다. 기본적인 생활지도조차 인권 침해로 간주되는 세상이다. 사실 학교의 인권 친화적인 문화는 학생의 개성 신장과 밝은 학교 문화를 만들었다. 즉 인권 조례 자체는 바람직한 문화다. 문제는 아이들이 인권 조례를 나쁘게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판단력이 없다보니 그것을 악용하고 있다. 아이들은 학생 인권 보호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막무가내로 살아가고 있다. 선생님께 무례한 언행을 일삼는 것조차도 새로 획득한 문화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권 강조 문화로 아이들이 점점 더 나쁜 학생으로 커가는 것이다.

음식도 당장 입에는 달지만 궁극적으로는 몸에 해로운 것이 많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달콤한 자율을 누리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공부를 하기 싫어도 통제하지 말라는 상급 조례 지침이 있으니 아이들은 철저한 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 그야말로 행복이 넘친다.

공원 화단에 많은 사람이 가로 질러가 잔디가 죽고 길이 만들어진 것을 본다. 화단 보호를 위해 울타리도 쳐 놓은 곳을 보았지만 쉽게 복구가 안 된다. 학교에도 지금 소수가 지나가 나쁜 길이 많이 만들어졌다. 지금이야 나쁜 길이 좁지만 방치하면 화단 전체가 죽어 간다. 행복한 학교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면 학교에 재앙이 온다. 몇 년 전 학교 붕괴, 교실 붕괴를 걱정했는데 이제는 우리 삶의 기본 질서까지 무너질지도 모른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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