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에서 배우는 가르침의 지혜

2011.12.06 12:51:00

나는 지휘관일까, 부지휘관일까

동물세계에 전쟁이 났습니다. 사자가 총지휘관이 되어 병사들을 인솔했습니다. 산 속 깊은 곳에서 많은 동물이 자원해서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부지휘관인 여우가 동물들을 둘러보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끼리는 덩치가 커서 적에게 들키기 쉬우니 그냥 돌아가는 게 낫겠어. 당나귀는 멍청해서 전쟁을 수행할 수 없으니 돌아가고, 음~토끼는 겁이 많아서 데리고 나가봐야 짐만 될 거야. 돌아가. 개미도 왔군. 네가 무슨 힘이 있다고 전쟁을 해? 돌아가."

여우의 이야기를 듣던 사자가 여우에게 버럭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나귀는 입이 길어서 나팔수로 쓰면 되고, 토끼는 발이 빠르니 전령으로 쓸 것이고, 코끼리는 힘이 세니 전쟁 물자를 나르는 데 쓸 것이고 개미는 눈에 잘 띄지 않으니 게릴라 작전에 투입하면 된다."

위의 이야기는 오늘 아침 우리 반 아이들과 독서를 하다  어느 신문 한 귀퉁이에서 우연히 발견한 우화입니다.부모나 선생님은 부지휘관의 안목보다 지휘관의 눈으로 자식을 바라보고 그가 가진 장점을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했습니다. 

학교 교육에서는 흔히 학력이나 지식이라는 작은 틀에 아이들을 가두고 그 틀 안에 맞지 않는 아이들을 부진아로 몰아세워 그가 가진 또 다른 장점까지 덮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케 하는 이야기라서 마음이 뜨끔했습니다. 아이들이 가진 얼굴이 다 다르듯 그가 가진 장점도 다 다른데 오로지 학력이라는 잣대 하나에 모든 포커스를 맞춘 채 한 줄로 세우는 교육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반성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 중에서도 국어, 수학 공부는 못해도 유난히 잘 웃기고 능청스러워서 배꼽을 잡게 하는 아이가 있는 가 하면, 자로 잰 것처럼 도무지 일탈 행동이 없어서 답답할 정도인 모범생도 있습니다. 난독증은 있어도 수학적 사고력이 뛰어나서 수학 시간이면 눈빛을 반짝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툭하면 해찰을 하다가 엉뚱발랄한 질문으로 웃음보를 터뜨리게 하는 악동도 있어서 유쾌한 교실.

틈만 나면 내 휴대폰을 가져다가 귀여운 스티커를 잔뜩 붙여놓고 사랑스런 표정을 지으며 애교를 떠는 덩치 큰 소녀가 있는가 하면, 우수한 두뇌로 금방 드러날 거짓말로 숙제 안한 사실을 감쪽 같이 숨기려다 들통이 나서 매번 꾸지람을 들으면서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잔꾀를 부리는 아이까지, 아홉 명뿐인 작은 교실에서도 아이들의 재능과 소질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입니다.

바야흐로 도학력 평가가 코 앞입니다. 다달이 치르는 학교 시험도 모자라서 방학을 눈앞에도 두고도 다시 시험 공부에 내몰리는 아이들이 안쓰럽습니다. 학과 공부에 뒤진 아이들에게는 괴로운 시간의 연속인 12월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오지 못하는 성적에 교실에서도 집에서도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입니다.

그 아이들이 안고 있는 분노의 감정을 들여다 보면 걱정이 앞섭니다. 어쩌면 교실에서 일탈 행동을 보이고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대드는 아이들은 그들도 살고 싶고 대접받고 싶다는 또 다른 표현 방법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학교라는 틀 안에서 학과 성적 외에는 자신의 재능과 자랑을 드러내고 끼를 발휘할 무대가 거의 없으니 지적인 공부가 아닌 다른 재주를 가진 아이들은 늘 소외되고 자존감에 상처를 받아서 자신감조차 없습니다. 그렇게 누적된 불안과 두려움은 친구들에게 폭력으로 나타나고 분출시킬 방법조차 모르니 반항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나라의 아이들과 학생들은 분노와 좌절감으로 어른 못지않은 상처를 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달려도 결코 순위에 들 수 없음을 뻔히 알고 달리는 학력사회의 병폐를 알면서도 선생님도 부모님도 무조건 달리라고 성화입니다.

아이들의 장점을 찾아 학급 자랑 준비해요

나는 위의 우화를 읽으며 내 반 아이들이 지닌 장점을 찾아 기록해 보기로 했습니다. 웃음이 예쁜 아이, 말씨가 고운 아이, 친구를 잘 돕는 아이, 아이디어가 좋은 아이, 남을 잘 웃기는 아이, 춤을 잘 추는 아이, 개그를 잘하는 아이 등등.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얼마나 더 중요한데 우리는 늘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봅니다. 보이는 것은 일시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며 진리에 가깝다는 나름대로의 깨달음의 언덕에 우리 아이들 하나하나 앉혀 놓고 거울처럼 들여다 보며 마무리를 하고 싶어집니다.

날마다 받아쓰기 못한다고, 숙제를 덜 했다고, 글씨가 예쁘지 않다고 칭찬 받을 일이 거의 없었던 아이들이 이제야 보이니 한심스럽습니다. 헤어짐이 코 앞에 다가와서야 재미있는 교실로 만들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는 습관도 여전하니 이것도 병이라면 병입니다.

마음 편하게 놀아주지 못한 미안함, 하루라도 숙제를 주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몰고 온 1년이었습니다. 이제라도 우리 반 아이들에게서 코끼리의 장점과 토끼의 발빠름, 개미의 부지런함을 갖춘 아이들의 숨겨진 장점을 드러내어 칭찬할 수 있는 도수 높은 안경을 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방학 전에 우리 반 자랑에는 자기가 가장 잘하는 재주를 한 가지씩 준비해서 전교생 앞에서 자랑하게 하고 싶습니다. 만날 동화 외우기만 시킨 내 욕심을 내려놓고 아이들을 힘껏 믿어주고 도와주는 시간을 만들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가수가 꿈인 재리에게는 춤과 노래를, 면장님이 꿈인 준태에게는 연설을, 선생님이 꿈인 선화랑 은영이게는 일일 선생님 역할을 시켜 보고 싶습니다. 태권도 선수가 꿈인 류재는 태권도 시범 동작을 펼치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주도하는 학급 자랑이 아니라 아이들이 주인이 되어 스스로 준비하는 학급 자랑이 무척 기대가 됩니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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