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천의 ‘혁신학교란 무엇인가(맘에드림)’를 읽고

2011.12.09 11:14:00

책을 읽으면 정보를 얻는 것은 평범한 진리다. 이 진리를 또 터득했다. 주변에서 혁신학교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었지만, 실체를 몰랐다. 김성천의 ‘혁신학교란 무엇인가(맘에드림)’는 이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전하고 있다.

혁신학교는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후보자 시절 언급한 학교 형태다.

학급당 인원수를 25명 수준으로 낮추어 질 높은 교육을 꾀하자는 것과 가급적 소외된 학교를 중심으로 좋은 교장과 교사를 초빙하여 공교육의 모델을 만들어보자는 두 가지의 발상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입니다(p. 62).

이 근거로 많은 사람들은 혁신학교는 학급당 인원수가 25명으로 줄이는 학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혁신학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혁신학교는 무엇보도 교육이 다르다.

기존 학교는 경영 조직이나 관료 조직에 의해서 움직인다. 교육청이나 교육부의 행정 지침이 우선이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교사의 주체성은 사라지고, 교사는 대상화된다. 혁신학교는 그렇지 않다. 혁신학교 교사들은 외부에 좌우되지 않고 내부에서 힘을 발휘한다. 자발성이 있다. 자발성은 형식성과 수동성을 극복한다. 학교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가치가 이것이다. 교사 스스로가 논의하고 합의해 실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학교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한다.

민주성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 조직은 1인 리더의 탁월한 지도로 끌고 가는 틀을 거부한다. 실제로 성공적인 혁신학교는 교장 한 명의 전문성과 리더십에 의존하지 않는다. 교사의 참여와 소통이 이루어질 때 학생과 학부모의 참여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동안 학교는 1인 교장의 진두지휘 아래 굴러갔다. 학교 구성원인 교사, 학생, 학부모는 교장의 명령대로 움직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혁신학교는 교사의 참여와 소통이 이루어진다. 참여와 소통은 일방향성이 아닌 쌍방향성을 의미한다. 특히 관리자와 교사의 소통 과정이 자유롭고 민주적이다. 이러한 과정이 교사의 효능감과 자신감을 높인다. 그 사이에 학생과 학부모의 참여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창의성 교육도 새 학교에서 추구해야 할 과제다. 최근 들어 배움 중심 수업이 논의되고 있다. 이는 교사의 강의식 수업을 반성하자는 의미다. 교사의 수업이 변해야 학생의 창의성이 자극된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극복하는 것도 창의성 교육이다. 입시 교육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문제풀이식 수업은 창의 지성을 기르는 교육이 아니다. 사교육과 차별화된 교육도 우리 교육이 감당해야 할 과제다. 입시의 틀에 갇혀 강의식 교육과 반복 학습, 그리고 선행 학습의 형태로 진행되는 교육은 결국 사교육과 다를 것이 없다. 이러한 교육은 타율적인 학습을 만들고, 자기주도적인 학습 능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우리나라는 근대 국가의 출발과 함께 전쟁을 치렀다. 자원도 없는 전형적인 개발도상국가였다. 다행히 교육과 인재개발을 통해 성장의 원동력을 찾았다. 학교는 산업 발전에 필요한 인적자원의 핵심적인 공급처였다. 특히 가난해도 공부만 열심히 잘 하면 경제적·사회적 신분이 상승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교육열은 뜨거웠다.

그러나 산업 사회를 지나면서 교육은 새로운 위기에 봉착했다. 우리 사회는 산업화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당연히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속도가 생명이었다. 교육은 많은 양의 정보를 주입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학생은 그것을 암기하는데 몰두했다. 이 틀이 지속되면서 학교는 매력을 잃었다. 더욱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학력이 가난을 벗어나는 사다리 역할을 했으나 최근에는 많이 달라졌다. 사교육 경쟁이 심해지면서 비용이 많이 들고, 가정 형편이 어려우면 오히려 대학 입학이 어려워 교육의 사다리가 약해지고 있다. 그 결과 교육은 사회와 학생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학교에 기대를 걸지 않을 것입니다. 학교가 바뀌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만큼 우리는 학교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 환경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우리 자신들이 곧 길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길은 잘 닦여져 열려 있는 그런 길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열어 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자기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래서 삶을 꽃피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본질임을 잊지 않는 한 우리는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진정한 교육을 시작할 때입니다(민들레 창간호, 창간사. p. 34 - 본 책은 p. 38).

학교는 학생들의 교육에는 사실상 아무런 관심이 없다. 학교는 학교제도, 나아가서 전체 사회제도의 톱니바퀴가 잘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한 데 관심이 있고, 그 다음으로는 스스로 무슨 대단한 활동,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는 쇼를 벌리는 데 관심이 있는 것이다. 학교는 학년제, 고정화된 교과과정, 뒤떨어진 교수법과 시설을 고수하면서 학교들의 요구를 무시한 채 관료식 경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학교는 학교에 착취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자금을 빼앗아 그 일부분을 질 나쁜 서비스의 형태로 그것도 매우 불평등하게 배분해왔던 것이다(이한, ‘학교를 넘어서’, p. 39 - 본 책은 p. 39).

두 개의 인용문은 학교를 부정하고 있다. 앞의 글은 대안교육 잡지의 창간사로 학부모들이 더 이상 교육에 기대를 걸지 않고 스스로 길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한의 글도 학교 교육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이한은 남들이 선망하는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즉 그는 이 사회의 교육체제에서 가장 우월한 승리자다. 그런 사람이 학교 제도를 비판한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지금 학교는 극심한 혼란의 중심에 있다. 산업화의 성과로 경제 수준이 향상되고 생활양식이 변화되면서 새로운 교육적 요구가 나타났다. 하지만 학교는 과거의 늪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보니 여기저기서 학교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 학교에 있는 교사도 학교를 부정하고 있다.

낯 뜨거운 고백이지만, 나도 교육 관련 글을 쓸 때는 교육의 부정적인 측면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때마다 학교 위기의 원인이 외부에 있다고 항변 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제 역할과 본분에 충실하지 못한 내적 요인도 크다. 외부의 원인도 있겠지만, 결국 내부에도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교육 현장에 있으면서 교육의 위기를 말하는 것은 내 얼굴에 침 뱉기다.

교육과정 특성화와 다양화는 혁신학교의 생명입니다. 교사들의 수업 재구성, 독서연계, 체험연계교육, 주제통합교육, 교과통합교육, 지역화교육, 진로연계교육, 영양교육 등 학교에서 추구하는 핵심적 가치와 철학은 결국 교육과정으로 구현되어야 합니다(p. 234).

우리 교육은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는데 실패했다는 문제 제기에 할 말이 없다. 교육과정 등 여러 분야에서 문제가 있었지만, 교실이 가장 큰 문제였다. 교실에서 수업은 교사의 일방적 강의로 진행되었다. 교실에서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은 배우는 이분법적인 틀에 고여 있다. 다행히 교실 수업에 대한 반성이 시작되고 있다. 학습도 개인의 고독한 작업이 아니라는 인식이 시작되었다. 배움이란 다양한 주체 간에 일어난다. 수업이 교사와 학생의 상화 작용의 교류를 통해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과정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과제는 남는다. 학교 교육은 그 목적 및 수단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교육이 일정 부분 사회 진출을 위한 수단이고 목표가 되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그렇다면 학교가 아니라 사회적 시스템이 변해야 한다. 교육 당국은 이러한 현상에 민감해야 한다. 그것이 학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우리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임을 명심해야 한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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