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라는 말이 있다. 전문적인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라는 뜻이다. 이번 호에서는 생명의 위급함이 경각에 달려있지 않은 이상 무리한 일을 감행하다가 큰 코 다친 경우와 관련된 판례가 있어 소개해 본다. 언론을 보면, 승강기(엘리베이터)가 갑자기 고장 나 작동을 멈춰 갇히는 사고가 심심찮게 발생했다고 나오는데, 이 때 기다리지 않고 무리하게 탈출하려다가 사망한 경우, 이에 대한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아니한 경우이다.
A씨는 2007년 1월 새벽 신문을 배달하기 위해 부산의 한 아파트의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던 중, 승강기가 21층과 22층 사이에 멈춰 서는 사고를 당했다. A씨는 바로 인터폰을 통해 경비원에게 구조요청을 한 뒤, 갖고 있던 오토바이 열쇠로 강제로 문을 열고 탈출하려다 지하 4층 승강장 바닥으로 추락해 결국 사망했다.
이에 숨진 A씨 유족들은 승강기 제조업체와 관리업체, 보험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도 같은 의견이었다. 망인이 신문배달 시간에 쫓겨 스스로 탈출을 시도했을 가능성은 있으나, 구조요청까지 하고도 구조를 기다리지 않고 무리하게 탈출을 시도한 것을 두고 이러한 행동이 불가피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이다.
재판부는 먼저 “이 사건 승강기에는 비상호출용 인터폰이 설치되어 있었고 작동상태 또한 양호했으며, 카 내부에서 쉽게 문을 열 수 없도록 하는 장치 등도 구비되어 있었고, 이용자가 카 내부에 갇혔을 경우에 지켜야 할 안전수칙도 적절히 부착되어 있는 등 승강기가 정지했을 경우에 대비한 조치가 적절히 강구되어 있었다.” 고 밝혔다. 이어 “실제로 망인은 인터폰으로 연락해 경비원, 전기기사와 통화하면서 그들로부터 ‘구조를 기다려 달라’ 는 말을 들었던 점에서, 40대 여성인 망인이 새벽에 카 내부에 혼자 갇혀 있던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시간까지는 구조를 기다릴 것이 예상되거나 기대된다.” 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인은 통화 직후부터 소지하고 있던 오토바이 열쇠를 이용해 문을 열려고 시도한 점, 망인이 구조지연 등에 따른 불안과 공포 등으로 탈출을 시도하기에 이른 것으로는 보이지 않아 망인의 탈출 시도를 불가피한 행동으로 보기는 어렵다” 고 판단했다. 또 “망인은 결국 강제로 문을 연 후 탈출을 시도하면서, 승강기 바닥과 승강장 문틀 상단 사이의 50cm도 채 안 되는 공간을 통해 약 1.6m 아래의 승강장 바닥으로 뛰어내리는 고도의 위험성을 수반하는 행위를 스스로 감행했다” 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부는 “전기기사 등이 10분 정도 지난 시점에 승강기의 카 문을 열어 내부를 확인하게 됐으므로 망인이 그대로 승강기 내부에 있었더라면 쉽게 구조됐을 것으로 추인되는 점 등의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 고 판시했다.
* 대전교육소식지에 있는 '재미있는 법률 이야기' 2012년 1월호 코너에 기고한 글입니다. 위 내용은 기존 판례를 단순히 소개하거나 법률적 지식을 전달한 것에 불과하므로 기타 자세한 사항은 반드시 전문가에게 법률적 자문을 받으시거나 법원 관계자에게 질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