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인기가 시들했지만 70년대에서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었던 스포츠 중의 하나가 프로레슬링이었다. 특히 故 김일 씨를 대표로 하는 한국 레슬러가 일본 레슬러들을 박치기 한방으로 매트에 꽂는 것을 보면서 일제 식민지 시절의 고통과 울분, 팍팍한 삶의 무게를 일거에 날려 보낸 추억은 하나씩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프로레슬링의 인기는 우리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미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였었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 레슬링은 미국 WWE (World Wrestling Entertainment)로 대표하는 레슬링 단체가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프로레슬링은 스포츠가 아니다. 그 이유는 심판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 스포츠맨십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WWE에서도 그것을 과히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기야 WWE라는 단어 자체가 오락 내지 게임(entertainment)을 노골적으로 표방하기에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미국 프로레슬링을 케이블 TV에서 보면 몇 가지 특징을 보게 된다. 우선 심판이 제대로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를테면 한 선수가 상대선수에게 반칙을 하게 되면 심판이 제지를 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선수의 반응이 볼만하다. 심판 판정을 뒤늦게 따르는 것은 예사고, 심지어 판정에 불만을 품은 선수가 심판을 경기장 매트에 던져버리기도 한다. 더 가관인 것은 유명 선수가 자기와 대결할 선수의 시합에 심판으로도 참여한다는 것이다. 유명 선수는 심판으로 참여하기 위해 심판 옷으로 갈아입지만 그가 상대 선수와 싸울 것임은 시청자들은 다 안다. 자기와 대결할 선수가 유리해 보이면 시합을 중간에 중지시켜서 경기 흐름의 맥을 끊어 놓기도 하고, 자기와 싸울 선수의 맞수가 불리하면 그와 합세해서 자기와 싸울 선수를 공격하는 것도 있다.
시청자들은 이 경기 전에 짜고 할 것이라는 전후 내용을 모두 알기에 박장대소를 한다. 일상 스포츠에서는 느낄 수 없는 변칙과 반칙이 난무하지만 그것을 스포츠가 아닌 오락물로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레슬링은 스포츠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7~80년대 한창 유행하던 프로레슬링이 9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쇠락한 것은 유명 레슬러가 ‘프로레슬링은 짜고 치는’ 것이라고 폭로해서 그 인기가 급락했다. 인기를 위해서 철저히 사전 약속을 하고, 거기에 맞춰서 경기를 하다 보니 감동이 점점 덜해서 대중의 눈에서 점점 멀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은 공명정대함이 사회의 근간을 이끄는 기본이라고 생각한 한국인들의 정서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었기에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스포츠도 이러한데 한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함을 차지하는 대학입시는 더 그렇다. 아무리 학력의 대물림이 이루어지는 세상으로 변했다 해도 서민들의 가느다란 희망은 학력의 상승을 통해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타는 것이다. 그래서 망국적이라는 교육열과 입시열기가 면면히 그 생명력을 이어가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한 사회에서 입시부정이 이루어졌다니 서민들의 가슴이 얼마나 미어지고 통탄할 일이었겠는가. 얼마 전 감사원에서 「학사운영 및 관리실태」라는 보도 자료를 냈고 언론에서 대부분 다룬 내용이 있다. 그것은 대학들의 각종 특별전형의 허점을 악용한 대입 부정합격 추정자를 대거 적발하였고, 편입학 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하였으며, 수십 억대 스카우트비를 불법 조성해서 체육특기자를 선발했다는 것이다. 모 교육청은 불합리한 고교 입학전형 관리와 과학고 조기졸업제도를 부실하게 운영한 사례도 있었다. 특히, 이러한 비리에는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학부모와 학생이 있었지만, 학교에서 묵인 내지 방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에다가 이를 감독하고 감시해야 할 교육당국의 태만도 한몫을 했다.
이러한 입시부정은 합격한 어느 한 두 사람의 이익을 넘어서 사회 전체에 비리 불감증을 유포시키고, 더 나아가 배우는 학생들에게 사회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부정적인 악영향을 준다. 과정이야 어떻든 간에 결론만 좋으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선례를 대학입시에서부터 차근차근 배운 그들이 만일 사회지도층 인사가 되었다면 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행동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아찔하지 않은가. 스포츠가 각본 없는 드라마로 불리는 것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실력을 정정당당하게 겨뤄서 승부를 보기 때문이다. 거기에 따라서 나온 결과물에 선수들은 도취되고, 관중은 즐기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프로레슬링이 스포츠가 아니라고 하였듯 부정입학은 정당한 노력의 대가가 아니다. 범죄를 넘어서 자기 자신을 기만한 죄, 입시 상대방을 기만하고 낙담시킨 죄, 사회에 비리라는 악성 바이러스를 유포시킨 죄가 모두 해당되기 때문이다. 입시비리, 발본색원해야할 범죄 중의 악질 범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