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반 아이들 이름 다 외우셨어요?”

2012.04.01 23:29:00


언제부턴가 출근하여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아이들의 출석점검이다. 아마도 그건, 며칠째 학교에 나오지 않는 한 여학생의 출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인지 모른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아이는 3월 한 주 학교에 나오고 난 뒤, 2주째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다. 결석 사유를 알아보기 위해 1학년 때 그 아이와 친했던 친구 몇 명을 불러 알아보았으나 허사였다.

처음에는 그냥 몸이 아파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뿐 그 아이의 결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결석 일수가 늘어남에 따라 왠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새 학기에 일어날 수 있는 학교폭력, 집단 따돌림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하였다. 알아본 결과, 그런 징후는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 아이의 1학년 때 생활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 위하여 1학년 담임을 찾아갔다. 결석 한번 없이 얌전하게 학교생활을 잘해온 아이가 2학년에 올라와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담임 또한 놀라는 눈치였다. 담임은 1학년 때 그 아이와 상담한 내용이 담긴 일지를 내게 건넸다. 상담일지 내용을 꼼꼼하게 살펴보았으나 문제 될 만한 내용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1학년 담임으로부터 몇 명의 관심대상인 아이들의 명단을 받았으나 그 아이의 이름은 없었다.

문득 학기 초 수업시간 내 질문에 답변을 잘했던 그 아이의 모습이 떠올려졌다. 이름을 몰라 예쁜이라고 불러주면 환하게 미소 짓던 아이였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괜찮은 듯 항상 그 아이의 주변에는 많은 아이가 모여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 아이는 아무런 고민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결석한 이유라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환경조사서에 본인이 직접 쓴 휴대폰 번호로 전화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도 전화를 걸었으나 착신이 금지된 전화번호였다. 아무튼, 담임으로서 취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해 보았으나 그 아이와 연락할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한편 그 아이와의 상담이 미루어진 것에 후회되었다.

사실 이번 학기는 여느 해보다 유난히 바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개학과 동시에 일선 학교의 모든 관심사는 연일 불거지는 학교폭력이었다. 그러다 보니, 부리나케 이루어진 선생님과의 상담내용이 학교폭력과 관련된 것이었다. 더군다나 담임 업무와 과다한 잡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보니 아이들과의 상담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매번 담임을 맡을 때마다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는 일이다. 이것은 교직 경력 20년이 넘은 지금까지 지켜져 오고 있다. 이름을 외우는 것 그 자체가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밤사이 이름을 다 외워 다음 날 출석부를 보지 않고 1번부터 마지막 번호까지 얼굴만 보면서 이름을 불러 아이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그것으로 아이들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고 아이들 또한 그것을 선생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식은 탓일까? 새 학기가 시작된 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아이들의 이름을 제대로 외우지 못해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더군다나 올해 맡은 아이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르쳐 본 적이 없고 비슷한 얼굴과 이름이 여럿 있어 이름을 외우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한번은 교무실에 찾아온 아이의 이름을 잘못 불러 화가 난 그 아이가 울먹이며 나간 적이 있었다. 특히 수업시간, 행여 실수라도 할까 이름 대신 번호를 부른 적이 많았다.

사실 그 아이가 학교에 결석하기 전까지는 이름을 몰랐다. 그 아이가 결석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아이의 이름이 ○○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금만 더 일찍 그 아이의 이름을 알고 관심을 나타냈더라면 그 아이의 결석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학기 초 상담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 되었다. 한편 그 아이의 결석이 다른 학생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에 아이들과의 상담을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락되지 않는 그 아이와 연락할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것이 문자메시지였다. 무엇보다 결석하는 이유를 모르고 있는 터라 자칫 말을 잘못하여 그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메시지 내용에 신중을 기했다. 따라서 결석을 나무라기보다 그날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재미난 사건을 이야기해 주었으며 우리 반 아이들 모두가 보고 싶어 한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가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한통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줄 것을 주문하였다.

문자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 아이가 나의 문자메시지를 읽었는지를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아이들과 내 마음이 담긴 메시지를 읽었다면 조만간 분명히 학교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주말을 이용해 아이들과 함께 ○○이 집에라도 다녀와야겠다.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