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닝햄에게 배우는 교육
존 버닝햄(Jhon Mackintosh Burningham)은 그림책 작가로 유명한 사람이다.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 <지각대장 존>, <검파 아저씨의 뱃놀이>, <알도>, <우리 할아버지> 등 수많은 그림책을 발표하여 아이들에게서 호기심과 상상력을 끌어냈다. 영국의 최우수 그림책 작가에게 주는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두 차례 받았으며, 뉴욕타임즈 선정 최우수 그림책 작가로 네 차례나 상을 받았다. 우리나라에도 <지각대장 존> 등 약 34권의 책이 번역 소개된 바 있다.
그는 얼마 전 한 언론과의 대담에서 정신연령에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좋은 그림책 작가가 되려면 아이들과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그들의 내면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저의 정신 연령은 다섯 살에 멈춰 있습니다.”라고. 필자는 바로 여기에 그의 작가적 명성의 비결이 담겨 있다고 보았다. 동심의 눈으로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키워 준 것이다. 상당수의 작가들이 아이들은 경험과 지적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교훈적이고 계몽적인 내용으로 가르치고자 했던 것과는 판이하지 않은가. 다섯 살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그들의 삶과 세상을 그려내는 존 버닝햄의 작가적 사명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그들이 상상하고 꿈꾸는 세계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통찰이 그를 훌륭한 그림책 작가로 만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는 그들의 눈으로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교육은 초․중학교는 물론이고 대학교육에 이르기까지 한 가지에만 얽매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즉, 학생들이나 학부모의 관심은 명문대학의 인기학과에 모아지고 있다. 발달 단계에 따른 학교의 층위를 오로지 출세와 성공을 위한 사다리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우리 교육에는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따른 눈높이 교육이 소홀히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상황에서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워주는 교육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교육을 보는 관점이 존 버닝햄의 관점으로 치환되어야 한다. 제대로 된 교육을 펴기 위해서는 대상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초등 교사의 경우는 초등학생의 정신세계를, 중등학교의 교사는 중등학생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 학부모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지금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출세와 성공이라는 거대한 도그마에 빠져 일방적 밀어붙이는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과정에 있든 우리 학생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프레임에 갇히고 말았다. 초등학생이든 대학생이든 학생 스스로의 생각이나 관심사보다는 부모의 기준과 잣대가 크게 작용하는 현실, 이러한 학부모의 기대에 편승하듯 정신없이 경쟁의 대열로 몰아넣고 있는 우리의 교육 구조에는 학생들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와 배려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존 버닝햄이 명성 있는 그림책 작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생각과 호기심을 그려냈다는 점이다. 교사로서의 성공비결, 좋은 부모로서의 성공비결 또한 이와 같지 않을까. 학생들에 대한 심층적 이해가 전제되어야만 그들을 훌륭한 인재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 또한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지금까지 가르치기에 급급했던 성급함을 떨쳐버리겠다. 그들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며,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그들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꿈꾸는 것을 찾아갈 수 있도록 좋은 안내자가 되고 싶다. 진정한 프로는 고객과 동감하면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혜안을 가진 사람이다. 우리들이 학생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고 수용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그럴듯한 제도라도 그 효과가 미미하다는 점을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