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 정승의 자식 교육
조선 시대 최고의 청백리로 알려진 황희 정승에게도 망나니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로 타일러도 아버지의 훈계를 듣지 않고 주색잡기에 빠져 있는 아들을 황희 정승은 이렇게 타일렀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집에 돌아오는 것을 보고 황희 정승은 의관을 갖추고 문밖에까지 나가 공손히 절을 하고 맞이했습니다. 한 차례 꾸지람을 듣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아들은 뜻밖의 아버지 모습에 당황했습니다.
"아버님, 어이된 일이옵니까? 대궐에 들어가실 때나 입는 옷을 입으시고 또 저를 공손히 맞이하시니 영문을 모르겠 습니다."
방에 들어온 황희 정승은 여전히 정중한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아비의 말을 듣지 않으니 어찌 내 집 사람일 수 있겠습니 까? 한 집 사람이 아닌 나그네가 집을 찾아왔는데 그를 맞 는 주인이 인사를 차리지 않으면 어찌 예의라 이르겠습니 까?"
아들은 아버지의 이 말에 무릎을 꿇어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황희 정승과 같은 훌륭한 분마저도 자식 교육을 얼마나 어려워 했는지 짐작케 하는 일화입니다.
부모도 힘들어하는 자식, 모두 품어야 하는 선생님
흔한 이야기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들을 참 많이 합니다. 대부분 바른 길로 가지 못하거나 부모의 뜻대로 할 수 없는 자식을 보는 어버이의 안타까움과 자식 교육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말로 쓰이곤 합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자식을 이긴다는 표현보다는 설득하고 감화시키기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내 자식 하나도 제대로 감화시켜서 바른 길로 인도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다수의 제자들을 가르치고 본을 보이며 살아야 하는 선생님들의 고충과 애로를 생각하게 하는 말입니다.
자기 자식이 바르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듯, 내 반의 제자들이 바르고 지혜롭게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버이의 마음과 똑 같습니다. 때로는 그 염려와 충고의 방법이 다급하거나 오해가 발생하여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거나 문제 사태로 확대되는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관점은 염려와 사랑의 발로가 대부분입니다.
훈계하는 선생님을 폭행하는 학생까지
정말로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경기도 고양에서 고교 2학년생이 흡연 여부를 검사하려 했다는 이유로 교사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경기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오후 1시쯤 학생부 담당인 김모(40) 교사는 점심 때를 이용해 상담실로 유군을 불렀습니다. 지난달 25일 오토바이를 훔친 혐의로 고양경찰서에 붙잡혀 교내 징계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 지난 4월에는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다 파출소에 연행된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교사는 얘기를 나누다 유군에게서 담배 냄새가 나자 "교내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느냐"며 흡연측정기가 있는 교무실로 데려가려 했고, 유군은 도망쳤는데 잠시 뒤 수업을 하기 위해 복도를 걸어가던 김 교사에게 갑자기 유군이 달려와 뒤에서 팔로 등을 밀치고 허리를 무릎으로 찍어 쓰러뜨렸고, 다른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쓰러진 김 교사 머리를 한 차례 발로 차고, 얼굴을 주먹으로 때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유 군은 경찰 조사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는데 냄새가 난다며 질책해 화를 참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고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2012.6.5 참고)
황폐한 내면 위에 겉모습은 스마트 교육 시대
스마트 교육을 외치며 정보화 시대의 첨단을 걷는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훈계하는 선생님을 무차별 폭행하여 생명의 위협까지 당해야 하는 이 슬픈 현실 앞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잘못을 앞에 두고 상담하는 선생님을 뒤에서 가격한다는 것은 배우는 학생임을 포기한 범죄자의 행동에 가깝습니다. 어디까지 치달아야 무너진 교실의 모습에 경악하고 특단의 대책이 나올 것인지 답답합니다. 교권의 존중이 바탕이 된 위에 학생인권도 소중히 하며 상생하는 교단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요? 공무원의 직업군 중에서 가장 질병이 많고 수명도 짧은 곳이 교직이라는 조사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감정노동의 강도가 높은 선생님이라는 자리를 국가가 보장해주면서도 제자들도 함께 행복한 교실을 만드는 것은 정말 불가능할까요?
이것은 정치적 해결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국가의 법적 장치와 제도의 틀 속에서 가르치는 공무원입니다. 모든 것을 참고 무한히 사랑하며 머리끝까지 오르며 자식 같은 학생들에게 인간적인 모멸감까지 감내하며 가슴 속 분노를 삭이며 진실한 교육을 할 수 있는 성인(聖人)을 기대하는 지금과 같은 현실이 지속된다면 모두가 패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사회에도 최소한의 안전망이 필요하듯 교실에도 최소한의 안전망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선생님도 살리고 제자들도 같이 살 수 있는 합의점의 도출이 시급합니다.
부모조차 이길 수 없어 포기하거나 어려워한 자식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선생님 혼자서 사랑과 인내로 어떠한 체벌도 용인하지 말고 부처님처럼 공자처럼 일대 일로 훌륭하게 가르쳐내라는 국가의 요구는 감당키 어려운 주문이 아닐까요? 문제를 달고 사는 학생이 있듯, 문제가 되는 선생님이 있는 것도 부인하지 못할 현실이지만, 모든 사람이 성인은 되지만 사람다운 사람이 다 되는 것은 아니기에 교원능력개발평가를 비롯한 다양한 장치로 현직교사들의 자질 향상에 힘쓰고 있는 것입니다.
학생들을 보는 게 두려워서 국가에서 정해준 기한마저 다 채우지 못하고 서둘러 퇴직하는 선생님, 다른 직업군에 비해 현저히 많은 다양한 직업병에 시달리는 선생님을 비롯해서 교직에 들어선지 몇 년도 안 되어 힘든 과정을 거쳐 입문한 교직을 중도 포기하려는 젊은 선생님들의 하소연을 들으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청진기를 들이대는 시기가 너무 늦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그런데 선생님을 고발하는 학생의 기사는 넘치지만 제자를 고발하는 선생님의 소식은 듣기 어려운 걸 보면 자식을 고발하는 부모는 가끔 있는 것에 비하면 그래도 다행입니다. 제자들에게 수모를 당하거나 모멸감을 받으며 정신적 충격으로 사표를 내거나 우울증으로 휴직하면서도 제자를 고발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자신을 해치거나 힘들게 한 제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최소한 안전망, 국가가 책임져야
부모가 행복하지 않은 집에 자란 자녀들이 행복하기는 쉽지 않듯, 선생님이 행복하지 않은 교실에서 제자들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아니, 행복 이전에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안전마저 위협당하는 현실을 직접 당한 선생님이 느끼는 좌절과 절망의 깊이는 당해 본 사람만이 알 것입니다. 또한 그것을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선생님의 자괴감은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을 가져옵니다. 선생님은 매 한 대도 대지 말고 황희 정승처럼 철학적인 접근을 하며 훈계하고 학생은 주먹질을 해도 크게 손해 보지 않는 학교,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거나 가벼운 벌로 (어리다는 이유로, 용서의 차원에서) 그치고 마는 현실.
자기 자식은 안정적인 교직을 택하라면서도 자식들 앞에서 선생님 욕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해대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게 자식들 앞에서 선생님을 깔아뭉개는 것이 자식 앞에서 부모의 자존심을 세운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선생님을 함부로 대하는 부모를 보고 자란 학생은 자기 부모를 그렇게 함부로 할 거라는 생각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인데, 경험의 위대함을 모르는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혹시라도 담임 선생님에게 섭섭한 마음이 있더라도 자식 앞에서만은 표현하는 방법을 생각해서 하시라고 말입니다. 상황 파악이 먼저이고 그 다음은 대화로 푸시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자식을 위한 길이고 길게 보면 부모까지 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은연중에 자식 앞에서 선생님을 욕하는 모습을 보고 듣고 자란 학생은 무의식과 잠재의식 속에 선생님은 무시해도 되는 사람이라는 등식이 내재되기 쉽습니다. 그것이 심화되면 자기통제조차 불가능한 상황으로 바뀔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위기의 시대, 외로운 선생님! 그래도 희망을 품어요
세상이 아무리 변했어도 선생님은 고상해야 하고 화도 내서는 안 되는 사람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힘듭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불확실한 미래는 예측조차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여 비정규직도 힘든 사람들이 넘칩니다. 날마다 억울한 죽음들은 지면을 장식합니다. 국민에게 희망의 푯대를 들고 전진해줘야 할 정치가과 어른들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이 희망입니다. 자식 같은 제자에게 주먹을 맞고도 다시 일어나 교실로 달려가 선생님을 기다리는 선량한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합니다. 상처를 준 아이는 그 자신이 이미 상처 받은 아이일 가능성이 100%입니다. 그러니 미워할 수도 없습니다. 그 아이까지 보듬어야 하는 것이 이 땅의 선생님! 바로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살기 힘들어서. 능력이 모자라서, 때를 놓쳐서 자식 교육에 헌신하지 못하는 부모의 가슴도 선생님처럼 아파하고 죄스러워합니다. 힘든 세상의 파고를 슬기롭게 넘을 수 있도록 제자들을 격려하고 위무하며 앎의 기쁨과 인생의 의미를 가르치며 다시금 청출어람의 기쁨에 눈물 흘리며 다시 일어서요,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