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미학

2013.01.08 11:15:00

추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지나간 날들은 생각할수록 아름답다. 우리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 시절을 몸서리칠 만큼 그리워할 때가 있다. 그 아름다운 추억 속엔 항상 가난했던 우리들의 초상이 있다. 춥고 배고팠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은 호의호식하던 시절이 아니다. 너나없이 가난하고 헐벗고 쪼들렸던 시절이었다. 일 년에 한두 번 명절 때만 고깃국을 먹었고 달걀 하나 찌면 할아버지 진지 상에만 올려놓던 시절이었다. 전쟁이 훑고 간 헐벗은 강산, 동화책 하나 읽을 수 없었고 라디오도 없었던 몽매하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그 시절은 아름다웠다. 날고구마 깎아먹는 것이 즐거웠고 밤톨 주으러 산에 올라가는 일이 즐거웠다. 아궁이에 감자 구워먹는 일이 즐거웠고 감자꽃 따 모으던 일이 즐거웠다. 소구치기 하고 소구 따서 모으는 일이 재미있었고 딱지치기 하여 딱지 모으는 일이 신바람 났다.

새집 찾으러 산으로 들로 쏘다니는 일이 낙원을 뛰어다니는 것과 같고 꽁꽁 얼어붙은 논배미에서 썰매를 타던 일이 스케이트장에서 노는 일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빙판으로 변한 언덕에서 수수깡을 타고 미끄러져 내리던 일마저 끼니때를 잊을 만큼 재미있었다.

한결같이 가난하던 시절이었다. 가난이 미덕이 아닐진대 내가 지금 가난을 예찬하려는 게 아니다. 종종 매스컴에 보도되는 저 지독한 가난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저 극빈층의 처절한 삶을 미화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가난도 익숙하면 정다운 것인가. 부유함보다 가난이 낯익고 정다울 때가 있다.

자꾸만 비인간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자꾸만 물질만능으로만 치닫는 세상에서 가난 속에서도 아름다웠던 날들을 회상하며 자신의 참 모습을 찾고 싶을 때가 있다. 가난 속에서도 즐거웠던 시절을 교훈 삼아 시대의 그릇된 풍조를 경계하고 자신에게 경종을 울리고 싶을 때가 있다.

일사분란하게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는 시대에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자아를 성찰하고 싶다. 자신도 모르게 물질의 노예가 되어가는 현상을 경계하고 싶을 때가 있다. 신앙인으로 자처하지만 또한 물질의 노예임을 부인하지 못하고, 시인이라 자처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시인도 되지 못한다.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신앙은 무디어가고 펜은 자꾸 녹슬어간다.

신앙인도 시인도 되지 못하면 나는 무엇에 뜻을 두고 살아야 하는가. 가난해도 당당할 수 있고 뜻을 굽히지 않는 강인함이 있다면 좋으련만. 아니 부유하더라도 가난의 미덕을 깊이 아로 새길 지혜를 가질 수만 있다면. 부의 허물을 꿰뚫어 그 유혹에 빠지지 않을 용기만 있다면. 부의 유혹에 빠지기만 하면 가난했던 날의 아름다움을 금세 잊어버리고 만다. 가난했던 날의 평화로움을 금세 외면하고 만다. 부유한 나만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 가난하던 시절의 나도 소중한 나다.

설령 오늘 부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결코 가난하던 날의 나를 잊지 말고 이웃의 가난을 흉보거나 얕잡아보지 말아야 한다. 가난하던 시절에도 자존심은 살아 있었고 대쪽 같은 자존심은 모진 가난 속에서도 새파랗게 살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난도 가난 나름이다. 옛날의 가난은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의 가난이었다. 없어도 서로 나누며 인정을 나누던 시절이었다. 가난이 가난인 줄 모르고 어우러져 살던 시절이었다. 요새 가난은 너무 처절하다. 지금도 가스비를 못내 가스가 끊기고 전기세를 못내 몇 개월씩 촛불을 켜고 생활한다니.그러다가 화재가 나 중학교 여학생 숨졌다는 뉴스다. 전깃불이 끊겨 촛불로 생활하던 장애인 부부가 화재로 숨졌다는 기사가 엊그제의 일인데. 상대적인 가난일 때 가난은 더욱 서럽고 고통스럽다. 남들이 다 호의호식하고 여가를 즐기는데 나만 끼니 걱정을 하며 가난에 허덕일 때 서러움은 더욱 더 북받쳐 오른다.

1990년대 초 인천 송림동에서 축대가 무너져 축대 밑에서 오순도순 모여 살던 달동네 주민 스물세 명이 목숨을 잃은 일이 있었다. 내가 다니던 직장 바로 옆에서 일어난 일이어서 지금도 그 충격적인 현장을 보는 듯하다. 절개지 바로 밑에 움막 같은 집을 지은 게 화근이었다. 그 안타까움을 나는 다음과 같이 투박하게 표현해보았다.

가을 연기

축대붕괴로 수많은 인명 앗아간 인천시 송림동 달동네
오늘은 노란 연기 피어올라
누군가 흩어진 유품을 다시 모아 태우나보다
아스라이 연기 솟아오르는 곳엔
전쟁의 포화 속 햇살처럼 맑은 가을 햇살 빛나고 있다
이렇게도 쉽게 무너지는 삶이었는데
모질었던 이승의 한 산 자의 가슴에 고스란히 묻어놓고
홀홀 한자락 연기로 오르고 있다
붉게 드러난 붕괴의 현장으로
질뚝질뚝 이웃들의 삶은 이어지고
남편 자식 모두 잃고 의식 잃던 그 여인은
어느 산자락에 회한의 풀을 뜯나
참고 견디던 가난도 낙이었는데
서러운 달동네의 낙이었는데
가난도 희망도 모두 빼앗기고
살아남은 이웃들의 초라한 삶의 터전에
스물셋 서러운 넋들 마지막 유품들이
새로운 땅을 찾아 행렬 이루어 하늘로 떠나네
                    - 졸시 전문-

가난이 때로는 너무 비정하다. 그러나 참혹한 가난만 있는 건 아니다. 청빈의 즐거움도 있다. 가난하지만 마음은 풍요롭고 맑은 영혼을 위해서는 가난이 보약일 때가 있다. 가난을 선택하라는 뜻이 아니라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고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잊지 말자는 의미다. 물질의 위력이 아무리 맹위를 떨치더라도 방향키를 잘 조정해 보편적 진리의 바다에서 멀리 표류하지 말아야 한다.
최일화 시인/2011.8 인천남동고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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