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출어람의 기쁨

2013.02.04 09:56:00

진도 학생 백일장에서 장원했다는 제자

지난 1월 중순, 무척 반가운 전화를 받았습니다. 벌써 헤어진 지 6년이나 된 제자의 어머니였습니다.
"선생님, 이 전화번호가 선생님 전화번호 맞습니까?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했습니다."
"맞습니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계시지요? 우리 아영이도 잘 있지요?"
"예, 선생님! 아영이가 진도 학생 백일장에서 시를 써서 장원했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독서와 글쓰기를 열심히 지도해주신 선생님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아영이가 책을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글을 잘 써서 1학년 때부터 동심이 빛났지요. 힘든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도 남달랐고 늘 해맑게 웃던 예쁜 아이였지요. 아영이의 소질을 발견하셨으니 문학 방면으로 진학할 수 있도록 해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그래도 문학을 권하고 싶지는 않은데요? 배고프잖아요."

"인생을 길게 보시면 좋겠습니다. 아영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행복합니다. 힘들어도 그 길을 갈 때 스스로 찾아서 가는 힘이 생깁니다. 눈에 보이는 가치보다 진정으로 그 아이가 행복해하는 길을 가도록 끌어주셨으면 합니다. 유난히 책을 좋아하던 모습이 참 아름다웠던 소녀가 글도 잘 쓰니 문학의 길을 가도록 해주시길 빕니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엄마의 희망보다 아영이의 행복이 먼저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움 말씀 감사합니다. 종종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요. 광주에 오시면 꼭 연락 주십시오. 아영이랑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함께 먹으며 이야기하시게요. 아영이가 쓴 다른 작품도 함께 보고 싶습니다."

사람을 남기는 교직의 아름다움

제자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고 듣는 것은 늘 행복한 일입니다. 더구나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욱 행복한 일입니다. 여덟 살짜리 꼬마 숙녀가 어느덧 중학생이 되어서도 잊지 않고 전화를 해주는 기쁨이라니! 한발 더 나아가 그 아이의 진로지도까지 조언해 줄 때 믿고 받아주는 학부모와 소통할 수 있음은 선생으로서 느끼는 보람과 행복을 너머 감동마저 안겨 주었습니다. 6년이라는 시간의 벽을 너머 전화 한 통화만으로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신뢰로 연결된 인간관계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며 사람을 기르는 교직의 아름다움에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사랑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점심시간이면 채소를 먹지 못해 유난히 힘들어했던 제자였습니다. 식판 앞에 앉아서 채소만 쏙 빼놓고 먹지 못하던 아영이는 점심시간마다 나와 씨름 아닌 씨름을 하곤 했습니다. 입안에 음식을 넣고서는 넘기지 못하여 채소건더기를 오물거리던 아이는 식사시간이 끝난 급식소를 나와서 식판을 들고 교실로 데리고 가서 다 먹을 때까지 어르고 달래서 한 시간 이상 기다리게 하던 아이였습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을 내게서 확인하고 싶어 하며 관심을 끌게 하는 자신만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식판을 앞에 두고 눈을 맞추며 일대 일로 선생님을 차지할 수 있으니 그렇게 오래 밥을 먹으면서도 늘 싱글거리던 표정이 그 증거였습니다.

바쁜 선생님의 오후 시간을 붙잡고 즐거워하던 1학년 꼬마 숙녀는 아마 그때 일도 잊지 않았겠지요? 1학년이 끝나갈 무렵에는 식사 시간이 줄어들어 다른 아이들과 함께 급식실을 나서곤 했으니까요. 심성이 고왔던 그 아인 정신이상을 보이는 동네 아저씨에게까지 친절해서 곤란한 일을 겪기도 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그 아저씨를 놀리거나 무서워해서 곁에 가지도 않았는데 그 아인 친절하게 말도 들어주고 웃어주니 그 아저씨가 친구처럼 데리고 가는 바람에 가슴을 졸이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다행히 아무일도 없었고 정신 연령이 낮은 그 아저씨는 친구가 필요했던 것임을 알고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유괴나 성추행을 걱정하며 찾아 나선 일로 더 이상 친절해선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며 마음 아파했습니다. 불쌍한 사람을 향한 순수한 동심을 상처 받지 않고 잘 키워서 아름다운 시심의 우물을 맑게 가꾼 제자가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라도록 잘 돌보아준 부모님께도 감사합니다.

미래의 시인, 정아영 양이 예술의 고장, 진도에서 큰 나무로 자라기를 기원합니다. 시인은 세상을 정화시키는 생수입니다. 아름다운 시심의 샘터를 잘 간직하고 늘 퍼내는 부지런한 농부가 되기를 빕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고 시를 쓰는 일이 행복한 일임을 일찍 발견했으니, 망설이지 말고 싹을 틔우고 나무를 키워 우람한 상수리나무로 자라서 다람쥐처럼 바쁘게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토실토실한 열매를 안겨주기를!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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