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돌아본 교단 50년(50) 날마다 날으는 연습을 하는 아이

2013.02.06 22:10:00

날마다 날으는 연습을 하는 아이

아람이는 오늘도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달려갑니다.엄마가 밥상에 차려 놓은 점심상 앞에 주저앉아서 밥을 퍼넣고서는 밥상을 밀어 놓은채, 방바닥에 엎드려 선생님이 내어 주신 숙제를 얼른 끝냅니다. 코를 훌쭉여 가면서 숙제를 끝내고서 방바닥에 책과 공책을 널부려 놓고 그대로 집을 나섭니다.

아람이는 오늘도 땡볕이 내리 쬐어서 숨을 제대로 쉴 수도 없는 무더위 속에서 함께 놀아줄 친구도 없이 한나절을 보내야 합니다. 그래서 이골목 저골목을 혼자서 헤매고 다니다가 이 즐거운 놀이터를 찾아낸 것입니다.

지난 월요일 그날은 유난히도 무더워서 정말 숨이 턱에 닿을듯한 더위에 지쳐서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던 아람이는 마을의 아이들이 모여서 놀고있는 골목 어귀에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아람이네 골목의 아이들이 서넛이 모여서 공깃돌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람이는‘이 아이들이 나를 친구로 받아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생각을 했지만 차마 자기도 함께 놀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곁에서 들여다 보다가 아뭏소리도 못한채 골목을 벗어나서 큰길가로 어정어정 걸어 나갔습니다. 통일로를 달리는 차들이 쉴사이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려 나가고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아람이는 눈이 어지러울만큼 많은 차들에 정신을 홀딱 빠뜨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천천히 길가로 다가서면서 여러가지 모양의 차들이 쉴새없이 지나는 모습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무심히 앞으로 걸어 나가던 아람이는 발밑에 있는 그물망으로 이루어진 환기통을 못본채 그 위로 걸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그 때 바로 발밑에서 휑하니 바람이 불어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지하철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밀어 올린 바람이 이 환기통을 통해서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아람이의 린넨천으로된 치마는 마치 낙하산처럼 부풀어 오르면서 아람이 자신이 붕 떠오르는것만 같았습니다.

당황한 아람이는 얼른 치마를 붙들어서 훌렁 뒤집어 지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 바람에 아람이는 정말 날아오를듯 붕 뜨는것을 느꼈습니다. 아람이는 이렇게 시원하고 신나는 놀이터가 있다는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아람이는 이 자리를 떠날줄을 모르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환기통으로 바람이 빨려 들어가면서 아람이의 치마는 아래로 끌어 당겨져서 치마는 내의처럼 몸에 찰싹 들어 붙는것을 느꼈습니다. 이제는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람이에게는 이 순간이 밑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아니라,오히려 로켓트가 하늘을 나르듯 “슝” 솟아 오르는 느낌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아람이가 이곳으로 이사를 해 온것은 보름전입니다. 몇 년전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서해페리호의 사고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작은 페리호에 정원의 두배가 넘는 사람과 거기다가 짐까지 가득 실은 서해페리호는 위도 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바닷가에서 삼각파도에 휩쓸려 순식간에 물속으로 잠기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200 몇 십명이란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엄청난 사고였습니다. 그 때 아람이는 아직 ‘아빠’라고 불러 보지도 못한채 아버지를 잃었습니다.아직 첫돌도 지나지 않은 어린 아람이에게는 이런 불행이 자신에게 어떤 일인지도 모른채 슬픔속에서 울다가 지쳐서 기절을 하곤하는 어머니에게 달려 들어서 젖을 빨던 아람이었습니다.

아람이네는 그곳에서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어머니는 점점 이곳에서 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아버지를 잊지 못하고 늘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나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외삼촌과 외할아버지가 억지로 그곳을 떠나도록 끌어서 낯설은 이곳 서울의 진관내동으로 이사를 하게 된것입니다.

‘차라리 복잡하고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속에서 살다보면 잊을 수가 있을 것이께,이곳을 떠나거라.’모두들 이렇게 억지로 이끌어서 눈물을 흘리면서 거의 강제로 끌려 오듯 이사를 하게된 것입니다.

이곳으로 이사를 온뒤에도 어머니는 며칠을 그냥 울면서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밤새워 혼자 앉아서 울고 있는 것을 본 아람이는 엄마를 달래 보려고 엄마 왜 울어 ? 난 엄마가 울면 싫단 말야. 엄마 울지마......”하고 매달려 보기도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아람이는 그만 지쳐서 잠이 들었고,아침에 옆에 쓰러져 잠이든 어머니를 발견하고서는 소리가 나지 않게 살금살금 방문을 열고 나가서 부억에서 세수를 하고 학교에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때까지 어머니는 일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아람이는 이제 오늘은 학교에 가서 전학을 해야 하는 날이라는 것을 잊어 버렸나보다고 생각을 하고 마루끝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참이 지나서 어머니는 부시시 일어 나셔서 방안을 두리번 거리며 아람이를 찾으셨습니다. 이럴때는 아람이가 엄마고 엄마가 아람이가 된것 같았습니다. 아람이는 방안에서 어머니가 일어나서 부시럭거리는 소리를 듣고서 조용히 말을 했습니다.

“어머니 나 여기 있어요. 어서 학교에 가야 할것 같아서 준비를 하고 있어요.”하고, 오히려 어머니를 안심시키려고 하였습니다.어머니는 아람이를 붙들고 또 울음을 터뜨리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람아, 우리 아람이를 어쩌지 ? 우리 아람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머니의 눈물을 훔치면서 아람이를 껴안고 푸념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아람이가 얼른 커서 우리 어머니 기쁘게 해드릴께. 으응.”
“그래,우리 아람이가 이 엄마를 기쁘게 해주어야지. 엄마가 누굴 믿고 살겠니 ? 그렇지 아람아 ?”

아람이는 고개를 까닥이며 어머니의 눈물을 훔쳐 드렸습니다. 그래서 아람이는 아무리 친구가 없고 함께 놀 아이가 없어도 어머니가 걱정을 할까 보아서 그런 소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밖에 나와서 친구들이랑 신나게 놀다 들어오는 것처럼 기쁜 얼굴로 어머니를 위로 해드리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지만 골목에서 아이들이 함께 놀아 주지 않아서 늘 혼자 여기저기를 떠돌이처럼 돌아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여기 환기구멍에서 솟아 나오는 바람이 시원하고 재미가 있어서 이제는 이곳이 가장 즐거운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아람이는 학교가 끝나면 이곳으로 와서 솟아 나오는 바람에 치마폭을 휘날리며 부풀어 오르는 치마를 붙잡고 날아오르는 꿈을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아애 읽을 책을 들고 나와서 여기에 주저 앉아서 책을 읽기도 하고,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면서 땅속에서 지하철이 다가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바람이 쏟아져 나오기를 기다리기도 하고, 속으로 셈을 하며 바람이 나오는 시간을 재어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때는 양쪽에서 함께 들어오는 지하철열차의 바람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서 정말 갸녀린 아람이가 바람에 훌렁 날아가는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자아, 하나아,두울, 세엣.”
지하철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으며 아람이는 셈을 하였습니다.
“휘이잉,잉.”
바람이 솟아 나오자 아람이는 치마폭을 움켜 쥐었습니다. 그 순간 아람이의 몸은 정말 나비가 된것처럼 공중으로 날아 오르고 있었습니다.
“아아,보인다.”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 오른 아람이는 벌써 동네의 위를 날아 오르면서 자기가 놀던 자리가 까맣게 내려다 보이는 것이 어찌나 신나고 신기한지 그만 정신이 몽롱해는것만 같았습니다. 저 아래 아물아물 보이는 동네는 아람이가 사는 동네이고 저 만치 널따란 운동장과 커다란 학교 건물도 마치 성냥갑처럼 내려다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아람이의 몸은 마치 민들레 꽃씨처럼 하늘거리면서 하늘을 천천히 나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차들과 사람들은 이런 아람이의 모습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듯 누구하나 올려다 보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람이는 벌써 비행기보다도 더 높이 더 멀리 날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아득히 내려다 보이는 시내가 이제는 아주 한폭의 그림처럼 산과 강과 어울러져 옹기종기 집들이 들어선 자리는 짙푸른 자연속에 사람이 그려 놓은 추상화 한폭으로 보였습니다. 높다랗게 솟은 북한산이 조그만 소꼽장난으로 만든 모래산처럼 보입니다. 산봉우리에서 부터 보이는 바위산은 점점 아래로 내려 오면서 파아란 초록으로 물들이고 그 끝자락에 옹기종기 사람들이 만든 도시가 다시 바위산과 같은 색으로 모자이크를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금수강산이라더니 이래서 그런 말이 생겨난 모양이구나 !’
아람이는 이런 생각에 잠기면서 끝없이 하늘로 날아 오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나서는 날마다 날마다 아람이를 이곳으로 불러 내었습니다. 비가오는 날이나,너무 날씨가 추워서 견디기 어려운 날이면 잠시 이곳에 왔다가 가더라도 반드시 이곳에 와야 하루의 일이 끝나는것만 같았습니다. 실제로 아주 추운 날이면 이곳에서 나오는 바람은 추운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간 따스한 느낌을 주는 바람이었습니다. 전동차가 들어 올 때 밀려 나오는 바람은 아람이의 추위를 한결 녹여 주는 것 이었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나르는 놀이를 하는 아람이는 이제 친구가 없어도 아무런 염려가 없습니다. 여기만 오면 아무런 걱정이 없고,날마다 나르는 연습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추운 떄는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바람으로 몸을 녹여 주고 더울 때는 시원한 바람으로 더위를 식혀주는 이곳은 맨날 집에서 혼자 보내야 하는 아람이에게 따스한 어머니의 손길처럼 고마운 것 이었습니다.
김선태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노년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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