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도 서럽지 않았던 설날

2013.02.11 18:09:00

헬퍼스 하이

1998년 하버드 의대 교수가 학생들에게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먼저 두 그룹으로 나누겠네."

교수는 학생들에게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한 그룹은 대가가 주어지는 일을 하게 하고 다른 그룹에는 아무런 대가 없는 봉사활동을 하게 했다. 학생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다. 며칠 후 교수는 학생들이 면역 항체 수치를 조사했다.

"예상은 했지만 이럴 수가!"
교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면역항체 수치를 조사한 결과 무료로 봉사한 학생들에게서 나쁜 병균을 물리치는 항체가 월등히 높아진 것이 발견된 것이다.

몇 달 후 교수는 마더 테레사 수녀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를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실험을 했다. 그리고 다시 측정했다. 이번에도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이 영화를 본 학생들은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현저히 낮아지고 엔돌핀이 정상치의 2배 이상 증가하여 몸과 마음에 활력이 넘친다는 사실을 알았다. 교수는 남을 돕는 활동을 통해 일어나는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 변화에 대해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는 '마더 테레사 효과'라고도 하고 '슈바이처 효과' 라고도 한다. 실제로 남을 돕거나 봉사하면 심리적 포만감 즉 '헬터스 하이'가 최고조에 이른다. 결국 남을 돕는 것은 자기 자신을 돕는 것이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30~31쪽에서 은지성 지음

헬퍼스 하이가 일상생활이었던 어린 날들의 추억

설날이 코앞이다. 설날이면 온 동네가 축제처럼 들썩였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누구네 집에서 먼저 떡을 하면 이웃집에 돌리며 나눠 먹던 따끈한 떡부터 시작해서 누구네 집에서 기름 냄새를 풍기며 전을 부치면 그것도 나눠 먹었다. 대문도 없던 집들은 누구라도 드나들 수 있었다. 옆집의 밤나무가 밤알을 떨어뜨릴 땐 부지런한 아이들은 알밤 줍기 시합을 하며 가을날을 보냈다. 커다란 장두감도 일찍 일어나면 차지할 수 있었다. 우리 집에 없는 과일도 어렵지 않게 나눠 먹는 게 일상이었다. 팥죽만 끓여도 나눠 먹고 밀가루 수제비 죽만 끓여도 당연히 나눠 먹었다. 그러니 자기 식구만 먹으려고 음식을 마련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가난해도 심리적 포만감으로 충만했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이웃집에 슬픈 일이 생기면 서로 위로를 했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 가난함이 슬픈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다 같이 가난해서 그런 걸까? 마음으로 나누는 삶이어서 그 가난조차 나누며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설날이면 온 동네를 떼 지어 다니면서 동네 어르신들께 넙죽넙죽 세배를 올리던 철없던 친구들은 감 한 개, 사탕 몇 개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아니, 아무것도 받지 않아도 행복했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설음식을 장만하지 못한 집도 동네에서 돌리는 음식만으로도 따스하게 배를 불릴 수 있었고 그걸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설날이 헬퍼스 하이가 되도록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떤가? 명절에나 먹을 수 있는 하얀 쌀밥을 날마다 먹으면서도, 귀한 계란이나 김을 날마다 먹을 수 있으면서도 그때보다 더 행복하지 않은 표정들이 넘친다. 아니, 문을 잠그고 살아도 도둑을 걱정하고 해침을 당할까 봐 마음을 닫고 산다. 내가 나를 보호하지 않으면, 장막을 치지 않으면 언제 피해를 당할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산다. 누군가와 마음을 열고 친해지려면 용기를 내야만 하는 세상이 되었다. 자칫하면 이용당하는 슬픈 세상에서 명절이 더 슬픈 사람들도 많다. 동네가 누가 어려운 처지인지, 누구네가 밥을 굶는지 다 알고 살아서 아무런 대가 없이 베풀고 살았으니 그야말로 '헬퍼스 하이' 시대였던 그날들이 그립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보다 모든 것이 풍요로워졌는데 무섭고 험한 소식들을 보면 그때만 못한 게 분명해 보인다. 고독사를 걱정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요즘은 아무리 가난해도 밥을 굶는 사람은 그때만큼 없다. 얻어먹는 사람들을 늘 볼 수 있었던 그 시절에 비하면 의식주 생활이 나아진 건 분명하다. 아프리카 아이들처럼 물을 얻기 위해 물동이를 이고 다니던 친구들, 눈 속에 물지게를 지고 물을 긷던 우물가에 가면 동네 소식을 전해주던 어른들은 설날이면 누구네를 도울까 걱정을 나누던 풍경들이 그립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걸까? 인간답게 살고 있는 걸까? 마음이 추운 사람들,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설날은 더 춥다. 사회의 냉대가 슬프고 속해 있던 일터에서 밀려난 소외감으로 슬프다. 찾아갈 고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빈손으로 갈 수 없어 타향을 배회하는 시린 가슴으로 더 춥다. 명절이라 밥을 사 먹을 식당조차 찾기 어렵다는 학생들 이야기가 마음을 때린다. 설날이 서러운 날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돌아보는 날이 설날이다. 헬퍼스 하이를, 말없이 실천할 일을 찾아보아야 하는 날이다. 주는 기쁨으로 행복해지는 날이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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