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오면 생각나는 것들 2-- 놋그릇 닦기
이제 설날이 되어가니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그 옛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하자. 그 설날의 추억들 중에서 가장 우리를 힘들게 한 일이 하나 있었으니 설날 준비는 대부분이 어머니의 몫이었지만, 우리 어린 남자들에게 주어진 몫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살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놋그릇을 닦을 때의 일이다.
요즘은 갖가지 재료로 만든 그릇들이 즐비하고 어지간하면 한두 번 쓰고 버리기도 하지만, 어머니들은 한 번 준비한 그릇을 한 평생 쓰시곤 하였다. 이 때 쓰던 그릇은 대부분이 유기라는 놋그릇이었다.
[유기는 구리와 주석을 78:22로 합금하여 거푸집에 부은 다음, 불에 달구어 가며 두드려서 만든 그릇. 유기의 종류는 제작기법에 따라 방자(方字)와 주물(鑄物), 반방자(半方字) 등으로 나눈다.] -네이버지식백과-
이 유기는 유해독성을 막아주는 성질이 있어 인체에 유익하며 체내의 독을 제거하여주고, 순동 특유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세균번식 억제 및 살균효과가 있어 사용하는데 큰 효과를 볼 수 있어서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나 허약체질에 적극 추천할만한 용기이다. 다만 구리라는 금속이 쓰인 까닭에 무게가 무거운 것이 단점이지만, 그래서 이유기에 담은 음식은 쉬 식지 않고 한식은 한꺼번에 차려지는 음식이지만, 유기에 담은 음식은 식사가 끝날 무렵까지 완전히 식지 않아서 다른 식기의 음식과 달리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아무리 이런 장점이 있다지만 지금은 다 사라지고 찾을 길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 무슨 이유가 있어서 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더렵혀지면 닦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은 닦는 약품들이 나와서 어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명절이 오면 이 그릇을 닦는 일이 하루 꼬박 걸리곤 하였다.
이렇게 어려운 그릇 닦기의 첫 번째 과제는 아직 어린 우리 남자아이들의 몫이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절터에 가서 기왓장을 주어오는 것이었다. 절터의 여기저기를 뒤져서 부서진 기왓장을 주어 담아오면 이것을 깨끗이 씻어서 불에 달구었다가 식혀서 가루로 빻아야 한다. 그냥 빻은 것이 아니라 아주 곱게 채로 쳐서 만든 가루를 만드는 것이다.
유기그릇을 닦는 날은 온 마당에 널찍하게 멍석을 펴고, 그릇들을 죽 늘어놓고서 기왓장 가루를 짚을 구겨서 만든 수세미에 기왓가루를 물에 개어 놓고 이것을 묻혀서 그릇을 닦아낸다. 기운대로 싹싹 문지르면 놋그릇은 황금빛으로 반짝이는데, 얼굴이 환히 비추어지고, 거울처럼 집안 풍경이 어리는 모습은 정말 신기할 정도가 된다. 닦아낸 유기그릇은 마른 행주로 잘 닦아서 말려야 다시 더러움을 타지 않게 된다. 이렇게 닦아 놓은 그릇에 물기가 가면 금세 얼룩이 져서 다시 닦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이 장남하다가 물이라도 뿌리면 야단을 맞고 쫓겨나기 일쑤이었다.
이렇게 그릇을 닦아야만 명절에 깨끗한 그릇으로 제사를 모실 수 있는 것이어서 기본적으로 반드시 해야 할 일중의 하나이었다. 보통은 설날이 오기 한주일쯤 전에 하는데 이때는 추워서 방안에서 일을 하는데, 온통 집안이 그릇으로 가득하였다.
그 고생스러운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어머니들은 일 년 내내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단 하루도 조용히 쉴 날이 없었던 고달픈 삶을 살아 오셨었다. 요즘 젊은 주부ㅈ들이 가정일이 고되다는 말을 하면 그 무렵의 어머니가 하셨던 일을 비교한다면 1/3도 안되는데 싶어 보인다.
그러나 요즘의 젊은이들에게는 명절 증후군이라는 고달픔으로 미리 겁을 먹고, 명절에는 피난하듯이 외국 여행으로 고달픔을 달래곤 하는 모습은 참으로 부러운 모습이기도 하고 새로운 풍속도로구나 싶어서 씁쓸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