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 전남 목포 시내를 알몸으로 활보하는 정신 이상자로 추정되는 여성을 주변 행인들이 보호하기는커녕 따라다니며 사진과 동영상을 찍거나 방관한 일이 일어났다. 그 여성을 보호한 것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로 인근 가게에서 속옷을 사서 입히고 경찰 비옷으로 몸을 감싸서 파출소로 데려갔다고 한다. 현재 인터넷을 통한 SNS 등에서는 이 여성을 찍었던 동영상과 사진이 유포되고 있다.
장면 2 : 대전의 한 지하철역에서 초등학생이 지하철 출입구 지붕 위 채광창에 기어 올라갔다가 유리가 깨져서 밑으로 추락해 중상을 입은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당시 지하철 계단을 지나가는 많은 승객들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말리지 않았다고 한다. 밑으로 추락한 초등학생을 구조 신고한 것 또한 전화 3통에 불과했다. 중상자 학생을 보호한건 역무원, 경비원, 초등생 친구였다고 한다. 사건 당시에 역을 오가는 수많은 승객들이 있었다.
앞에서 말한 사례는 가상의 일이 아니다. 한 달도 안 된 최근에 발생한 바로 우리 주변에서 생긴 일들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동물에게 없는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있다. 그것이 바로 모든 동물들의 제왕이라는 인간이 가진 장점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위 사례를 보면 안타까운 일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나서서 도와주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은 것은 무슨 일일까? 그것은 나만 알고 이해타산을 따지는 개인주의가 횡행해져서 생긴 각박해진 세상인심일 수도 있겠지만 심리학이라는 다른 각도로 이 현상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심리학에서는 위 사례와 같은 것을 방관자 효과(傍觀者效果) 또는 제노비스 신드롬(Genovese syndrome)으로 지칭한다. 이것은 주위에 사람들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또는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가에 따라 판단하여 행동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대중적 무관심 또는 구경꾼 효과라고 하기도 한다. (다음 포털 자료 일부 인용)
방관자 효과가 이처럼 과학적인 분석으로 구체화 된 것은 1964년 뉴욕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살인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 3시경 주택가에서 어느 여성의 비명소리가 들렸지만 주변의 아파트 불빛이 여럿 켜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고나 구조 신고를 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무려 38명의 목격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게다가 범인은 대담하게도 최초 범행을 저지른 후 두 차례나 피해여성에게 다가가 흉기로 찔러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나중에 누군가 신고를 했지만 그것은 피해 여성 키티 제노비스가 죽은 후의 일이었다.
나중에 이것이 사회문제화 되어서 전문가들이 원인을 분석한 결과가 바로 제노비스 신드롬이었는데, 원인으로는 ‘책임 분산’과 ‘다수의 무지’가 결합되어 생긴 현상으로 지적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방관자 효과가 개인주의 만연과 함께 더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특히 교육 현장에도 그렇다. 흔한 사례가 학교폭력일 것이다. 학생 사이의 학교폭력에 대해 학생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은밀한 폭력과 왕따 행위가 생겨도 절대 숨길수가 없다. 하지만 이를 막거나 신고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책임 분산(내가 안 해도 다른 누군가 신고하겠지. 폭력은 선생님들이 해결할 일이야.)과 다수의 무지(모르겠다. 내가 끼어들어 봐야 나만 손해지. 내가 당한 일은 아니잖아. 다른 애들도 가만있는데.)로 발생한 학교폭력은 어쨌든 양성화가 해결책이다. 숨긴다고 해결될 것은 없다. 앞에서 말한 방관자 효과에 대해 알린 후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다.
물론 대입 위주의 서열주의가 빚은 사회의 희생양이자 사회의 구조적 모순점이 만들어낸 복합물인 폭력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사안이지만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참고로 연구자들은 방관자 효과를 예방하기 위해서 피해자가 주변의 특정한 한 사람을 지목해서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한다. 불특정 다수를 지목해서 도와달라고 하면 책임 분산으로 인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 피해자 문제는 당사자의 신고와 도움요청, 주변의 적극적인 관심이 하나의 중요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