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내려 앉아 더 푸른 축제, 2013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2013.06.10 14:35:00

순천하면 떠오르는 것이 만이다. 고흥반도와 여수반도 사이에 깊숙이 들어간 순천만은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의 배경이기도 하다. 지금은 자연생태공원으로 국제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 직접보지는 않았지만, 순천만의 아름다움은 마음속으로 충분히 그려낼 수 있다. 그 정도로 많이 듣고, 사진으로 많이 보았다.

그런데 이번에 큰마음을 먹고 순천으로 향한다. 2013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어 가기로 했다. 승용차를 이용할까 하다가, 대중교통을 선택했다. 매일 타는 자동차보다 기차가 타고 싶었다. 어린 시절 기차 여행의 향수가 있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에 기차 여행은 최고의 호사였다. 그 기분을 느끼려고 기차를 택했다. 그리고 수도권에서 멀리 가는 여행이라 기간도 넉넉히 잡았다. 인근에 선암사까지 가는 계획을 세웠다.


순천에 도착하는 날은 선암사로 향했다. 남녘의 산세가 부드럽고 아름답다. 하늘로 뻗은 나무들, 그 사이로 부는 바람들 모두가 향기를 낸다. 남도 사람들의 구수한 말투도 달게 느껴진다. 선암사 입구에서 먹은 산채 비빔밥은 산 내음이 그대로 난다. 음식을 먹고 나니 건강해졌다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발길도 가벼워진다.
 
사찰은 천년 세월을 이기고 버텨온 흔적이 보인다. 고찰답게 고즈넉한 분위기다. 오래된 절이 오히려 경건함을 더한다. 세월을 이겨내고 있는 것이 사찰뿐이 아니다. 나무, 물 모두가 멋스러움을 더한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 저렇게 멋지게 서 있고 싶다는 욕심을 담아본다.

다음날 아침 일찍 서둘러 박람회장으로 갔다. 셔틀버스 등 교통편이 편리하다. 준비를 많이 한 탓이다. 또 기분이 좋은 것이 있다. 순천만 정원박람회라는 이름이다. 엑스포라는 이름이 안 붙어서 좋다. 여기에 정원 대신에 가든 엑스포라는 이름이 붙었으면 어땠을까. 정원이 주는 정겨움과 아늑함이 없었을 것이다.

일찍 도착했는데도 사람들이 많다. 입장권을 발급받으려는 줄이 길다. 그런데 나처럼 인터넷 예매 자는 관람권을 따로 발급받는다. 순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쓸데없는 우월감도 들었다. 아무튼 빠르고 편안한 입장으로 몸이 가벼워진다.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장은 말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정원이다. 박람회장에 들어서는 순간 온통 초록이 보인다. 그 위로 떨어지는 햇살은 왜 그리 마음조차 푸근하게 하는지. 아내와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가운데 크게 보이는 순천호수정원이 눈길을 끈다. 순천만을 둘러싸고 있는 6개의 산봉우리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박람회장에서 가장 높은 곳인데, 나사 모양으로 난 길을 따라 빙글빙글 돌면서 걸어 올라가게 만들었다.

이곳은 말 그대로 정원을 보아야 한다. 한국의 미를 잘 반영한 한국정원은 정감이 간다. 왕과 왕비가 거닐던 궁궐 정원, 선비들의 군자 정원에서 옛 사람들의 여유와 멋을 느낀다. 한국과 가까운 중국 정원은 사랑의 노래가 들린다.

우리나라의 춘향전에 가까운 중국인의 사랑 이야기로 정원이 꾸며져 있다. 맞은편의 프랑스 정원은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바로크 시대 건축 양식을 도입했다. 규모가 제법 큰 대리석 건축물이다. 일본 정원은 사실적이고 정교한 미니어처가 눈길을 끈다. 화산 활동이 있고, 섬나라라는 특색이 있다. 이탈리아 정원은 조경 문화 발전에 큰 역할을 했던 르네상스 시대 메디치 가문의 빌라 정원을 깔끔하고 정돈된 이미지로 연출했다.

태국 정원은 태국의 전통 건축물인 살라 타이와 대나무 구조물로 만든 가옥이 보인다. 야자나무 등 열대성 식물을 심어 이국적인 정취를 더한다. 네덜란드 정원은 관람객이 많다. 네덜란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튤립과 풍차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겠다는 사람들이 많아 붐빈다.

박람회장에 볼거리는 꿈의 다리다. 이 다리는 동천으로 분리된 두 박람회장을 연결하고 있다. 생태도시의 완성을 향한 순천의 꿈과 희망을 살리기 위해 컨테이너를 활용해 디자인 했다고 한다. 아내와 나도 꿈의 다리를 건너고 있다.

그러나 개장 시간이 몇 시간 넘은 탓인지 사람이 물결을 이룬다. 다리는 이미 다리가 아니라 사람이 머물러 있다. 앞으로 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다. 다리 내부에는 14만 5천여 점의 세계 어린이들의 꿈을 담은 그림을 전시하고 있지만, 그것을 읽는 사람들은 없다.



정원박람회에는 큰 나무가 없다. 그래서 그늘이 없다. 다행히 실내 정원이 있어 햇빛을 피할 수 있다. 사막 정원, 도시 농업, 원시의 자연 등 갖가지 테마별 볼거리가 수두룩하다. 호주 퀸즐랜드가 원산지인 자이언트 보틀 트리와 대만 고무나무, 지중해에서 자라는 올리브나무 등 주변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나무들이 많다. IT정원인 식물 공장도 이색적이다. 상추, 고추, 가지, 토마토, 피망, 딸기 등 야채와 과일이 자라고 있다. 기후 변화와 관계없이 무농약 고품질의 안전한 농산물을 대량 생산할 가능성을 실험하는 공간이다. 천장에 거울이 있고 화려한 조명 장치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이런 곳에 오면 먹는 것이 불편했는데, 여기서는 문제가 없다. 실내 정원 앞쪽에 위치한 대형 식당 덕분이었다. 먹을거리가 풍부하고 맛도 일품이다. 점심을 먹고 걸음이 더 느릿느릿해졌다. 점심을 먹어 몸이 무거워진 탓도 있지만, 하루 종일 걸어 다닌 피로가 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순천만의 갈대밭을 빼놓을 수 없다. 역시 갈대밭도 사람이 많다. 차로 이동한다고 줄을 서고 있다. 땡볕에 오랜 시간을 견디고 순천만을 볼 수 있다. 영상 자료는 가을의 누런 갈대를 봤는데, 오늘 보는 갈대는 어린 초록색 옷을 입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시원해 보인다. 순천만을 환경론자들은 생태계의 보물이라고 하지만 로맨티스트에게는 감성의 보고라고 한다. 갈대는 이미 식물이 아니라 감성의 언어라는 말이다. 맞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니 신경림의 갈대가 생각난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갈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이다. 나도 서정적 감흥에 겨워 글을 남기고 싶다.


하지만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발걸음을 끓다시피 버스 정류장으로 왔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갈대만큼 빽빽하게 서 있다. 그리고 모두 지친 몸이지만 가족과 함께 한 기쁨에 얼굴들은 웃음으로 넘친다. 그런데 여기에도 훼방꾼이 있다. 긴 줄을 오가며 확성기로 떠드는 사람이 있다. 특정 종교를 선전하고 있다. 그 종교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험한 말을 한다. 안타깝다. 외국인도 많이 찾은 이런 관광지에 저런 종교 활동을 한다니. 마음으로 믿어야 하는데, 즐거운 여행에 옥에 티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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