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 매주 월요일 야간자율학습 시간마다 초등학교 5학년 수학책을 펼쳐놓고 문제를 푸는 한 학생의 모습을 발견하곤 하였다. 수능공부 하기도 버거운 고3 이기에 지원자의 그런 행동이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다. 그 이유가 궁금하여 그 여학생을 조용히 불러 물었다.
“고3이 이럴 시간이 어디 있니?”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아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을 회피했다. 그리고 더 큰 오해를 사는 것이 두려워서인지 지금의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매주 화요일마다 방문하는 지역아동센터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해 가르칠 교재연구를 하고 있다며 자신의 선행을 알리지 말 것을 요구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 여학생이 저소득층 자녀를 위해 학습재능기부를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의 일이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겠다는 하나의 일념으로 시작한 이 활동이 이제는 생활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었다고 그 아이는 말했다. 이 활동으로 성적이 떨어지지 않을까 담임으로서 걱정이 되었으나 그 아이의 성적은 항상 최상위를 유지하였습니다.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듯, 그 아이는 교재연구를 하면서 막연하게 알고 있던 내용을 확실하게 알게 된 경우가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교재 연구를 하지 않아 곤혹을 치른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 주었다.
봉사활동 첫 날. 가리키는 대상이 초등학생 저학년이라 우습게 여기고 그날 가르칠 교재 연구를 하지 않고 수업에 임했던 적이 있었다고 하였다. 수업시간, 한 아이의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답변을 못해 무시를 당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아이가 선생님을 바꿔줄 것을 요구했다는 말을 센터에서 근무하는 담당자로부터 들었다고 하였다. 그 후유증으로 그 여학생은 한동안 봉사활동을 나가지 않은 적이 있다고 하였다. 그때부터 교사에게 있어 교재연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스승의 날 그 아이가 내게 쓴 편지 내용이 생각난다. 이 세상에는 존경할 분이 많지만 제일 존경받아야 할 분은 다름 아닌 선생님이라며 "선생님, 존경합니다."라는 문구를 편지지 한장 가득 적은 편지였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힘들다는 사실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본인 또한 느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여학생은 지식 전달의 교사보다 아이들에게 인성을 가르치는 참스승이 되고 싶다며 나의 가르침을 바라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