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길을 산책하며

2013.10.21 12:29:00

그렇게도 무덥던 더위는 어디로 사라지고 조석으로 선선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오후 아파트를 나섰다. 가벼운 복장으로 코스모스 꽃길을 걸어가니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따뜻함을 느끼는 가을 햇볕이 등을 쬐이니 포근함이 와 닿는다. 마음도 홀가분해 지고 머리도 맑아짐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계명산과 가까운 변두리에 위치해 있다. 4차선 외곽도로를 건너가면 시골풍경이 반겨주는 곳이라 좋다. 회원권을 끊어서 실내에서 기계에 의존하는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것 보다 훨씬 좋은 것 같다.

들판에는 누렇게 익은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익어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고구마를 캐는 아낙네의 정겨운 이야기도 들린다. 사과로 유명한 곳이라 과수원에는 빨갛게 익은 사과가 먹음직스러워 달려서 가을 햇살을 받아먹고 있다. 작은 도랑 옆으로 난 구불구불한 농로를 따라 걸어 올라갔다. 맑은 물이 졸졸졸 흐르는 모습이 생명의 소리로 들린다. 웅덩이를 바라보니 피라미 몇 마리가 아이들 뛰어 노는 것처럼 헤엄을 치며 놀고 있었다. 밭둑에는 보름달처럼 둥근 호박이 이불도 안 덮고 낮잠을 자고 있다. 밭둑에 두 그루의 감나무에는 주렁주렁 달린 감이 가을 냄새를 풍기며 익어가고 있었다. 농사를 지으며 밭둑이라는 공간을 이용하여 감을 수확할 수 있으니 땅을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찬거리를 만들기 위해 들깻잎을 따는 여인의 손길도 분주하다. 시골길은 구불구불하여 지루하지 않고 볼거리가 많아 좋다. 갑자기 트럭이 나타나면 길을 비켜서야 한다. 대부분이 비포장도로라서 차가지나 갈 때면 먼지가 날지만 어쩌겠는가? 모퉁이를 돌아가니 밤나무아래 밤송이가 널려있다. 숲으로 눈길을 돌리니 알밤 두 개가 숨어있다. 얼른 주워서 주머니에 넣었다. 저녁에 온다고 연락이 온 외손자를 주려고 생각하니 몇 개 더 주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밤 세 톨을 더 주웠다. 아이들은 알밤을 직접 주워야 더 재미있어 하는데 내일 밤을 주울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다.

한참을 올라가니 약수터가 나왔다. 약수터 옆에는 양봉을 치는 가건물이 있었다. 밀원이 좋은 곳이라 꿀을 많이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양봉을 지키는 개들이 우렁차게 짖어댄다. 농가에는 거의 개를 키운다. 애써서 키운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비탈진 밭에는 콩도 심고, 고추도 심어서 수확할 때가 된 것 같다. 배추와 무도 깨끗하게 잘 키웠다. 파도 싱싱해 보였고 시골에서 기르는 온갖 농작물을 볼 수 있어서 산책하면서 농작물을 구경하는 재미가 산책길을 더욱 즐겁게 해 주었다.

밤이면 산짐승들이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밭둑에 울타리를 쳐 놓았다. 산짐승이 먹이가 부족해서인지 논밭은 물론 도심까지 출몰하여 사람을 해친다고 하니 산짐승의 먹이 사슬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야외의 길을 걷는 운동이 좋은 것은 맑은 공기도 마시고, 자연과 호흡을 할 수 있지만 햇볕을 받으면 몸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비타민 D를 받을 수 있어서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산 중턱까지 올라갔다가 되돌아 걸어 내려오니 서산에 걸쳐있는 햇볕이 온몸을 비춰준다.

흰 구름이 떠 있는 가을 하늘에는 고추잠자리들이 날아다니며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는데도 가을 산은 아름다웠다. 산 아래 전원주택지로 개발하여 놓은 곳을 보니 자연 속에서 살고 싶은 인간의 욕심이 도리어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내 쪽을 바라보니 아파트단지가 답답한 느낌을 주었다. 예전에는 도시 근교의 농촌이었는데 도시가 확장되면서 논밭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확 트인 자연과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을 하다가 성냥 곽 같다는 아파트 속으로 들어가 잠을 자며 식사를 하고 살아야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자연이 없으면 잠시도 살아 갈 수 없는데 자연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자연이 내뿜어주는 공기를 3~5분만 마시지 못해도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인간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의 식재료는 어디서 얻는가? 모두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논밭에서 농사를 짓지 않으면 우리는 건강하게 살아 갈 수 없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처럼 우리의 몸은 자연인 흙과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자연이 주는 물이 없다면 우리는 잠시도 살아 갈 수 없다. 내 땅에서 생산되는 제철음식을 먹어야 건강한 법인데 많은 농수산물은 수만리 이국땅에서 생산한 것을 수입하여 먹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맞지 않은 것이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든 서산을 바라보며 자연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시골길 산책이 작은 행복을 안겨주었다.
이찬재 (전)충주 달천초등학교 교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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