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년전 작은 형의 금전출납부를 보면서

2013.12.09 11:01:00

우리집에는 오래된 장부 금전출납부가 있다. 첫 페이지를 보니 1961년 12월 20일 기록이다. 우리집 물건 중 뒤주 다음으로 오래된 물건이다. 뒤주는 어머니 것으로 막내인 내가 물려 받았다. 그러니까 금전출납부는 뒤주, 나 다음이다. 무려 52년이 된 장부다.

글씨를 보니 1944년생인 작은 형 것이다. 작은 형은 필자보다 12살 위다. 띠 동갑이다. 이 물건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것이다. 첫 내용은 '청소년과 측근 수당 1.000원 입금'이고 그 날 금전출납부를 400원 주고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18살 작은 형의 직장생활의 편린이  나타나 있다. 이후 작은 형은 1965년 11월 24일까지 현금출납의 기록을 남겼다.

이것을  보면 1962년 당시 물가정보도 알 수 있다. 버스요금이 30원, 껌 30원, 깨엿 20원, 송년회비 100원, 자장면 200원, 어른 이발료 200원, 매산극장영화관람료 100원, 구두약 70원, 세수비누 200원, 목욕비 150원 등이다.


이 장부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 1964년 5월 18일 농촌진흥청 다니시던 아버지의 사망 당시 모습이 나타나 있다. 필자는 초교 2학년 작은 형은 20살이다. 조의금을 낸 사람과 금액이 적혀 있다. 농촌진흥청 총무과 5800원, 매산동장 100원, 뒷집 방상묵 선생님 200원, 박찬정(필자 초교 1학년 때 담임) 100원, 큰형 2000원, 고모 2000원 등이 나타나 있다. 당시 지출내역도 있다. 상포 4040원, 술 1말 300원, 지관 지불비 800원 등 장례비용으로 6240원이 지출되었다.

이 금전출납부, 1972년과 1974년 막내 여동생에게 잠시 넘어갔다.1970년대 초반 10살 정도의 여동생이라 현금출납이 많지 않았다. 1972년 사탕 4개 10원, 수재민 돕기 20원, 라면땅 5원 등의 기록이 있고 1974년 세뱃돈 500원, 스케치북 50원, 복조리값 50원, 도화지 7원, 과자 3원, 라면 30원 등의 기록이 있다.

1980년 3월 19일 필자가 수원 00초교에 전보발령 받으면서 개인 기록을 남겼다. 당시 물가 상황을 살펴본다. 버스요금이 80원이다. 소설책과 에세이 각각 1000원, 자전거 펑크 수리 500원, LP 레코드 1200원, 이발료 1000원, 목욕요금 550원, 볶음밥 600원, 중앙극장 영화요금 1000원 등이다.

1981년 3월 편입학 등록금을 보니 449,500원이다. 주경야독의 생활 시작이다. 이후 3년간 책값 지출이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배움에 투자하는 돈은 아깝지 않다. 또 직장생활을 하면서 야간에는 대학을 다니니 가슴이 뿌듯하다. 계속하여 교육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학위 논문 지도 받은 흔적도 보인다.


이 장부의 맨 뒷장에는 우리집 6남매의 생일과 생시가 기록되어 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기억력이 생생할 때 기록해 둔 것이다. 몇 달 전인가 이것을 촬영하여 누나에게 보내니 깜짝 놀란다. 누가 어디에 기록해 두었냐고 묻는다. 이 처럼 기록의 힘은 대단하다.

이 장부를 보더니 아내가 한 마디 한다. "당신도 성격이 꼼꼼 하지만 아주버님은 더 꼼꼼했네!"  집안에 있는 금전출납부 하나가 50여년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지금 70이 다 된 작은 형도 이 장부를 보면 20대 청년기를 회상하면서 스스로 놀라리라고 본다.

필자는 10여 년간의 리포터 활동을 즐기며 하고 있다. 당연히 기록이 생활화되고 습관화되었다. 결혼 전부터 써 온 20년이 넘는 금전출납부를 보면 나의 인생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집안에 기록을 남기는 선각자의 금전출납부 한 권이 이렇게 동생들에게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다. 이 장부는 우리집 정신적 유산이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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