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소통의 전문가

2014.03.10 13:18:00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다. 가르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박식하고 완벽한 교과 지식을 갖추는 것이 좋은 교사의 조건이다. 지금도 교육학자나 교육계에서는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고, 그에 따라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교사가 교단에 서려면 교과 실력이 출중하고 완벽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학생들은 교사에게 배우지 않아도 얼마든지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인터넷 매체로 오히려 교사에게 보다 정확하고 빠르게 수집한다. 이제 교사의 전문성의 개념을 확대 해석해야 한다. 그 중에 필자는 교사는 소통의 전문가임을 강조하고 싶다.

평상시 좋은 인간관계 형성이 교육의 출발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 소통을 강조하는데 교사의 역할에서 새롭게 강조해야 할 덕목이다. 소통은 수용과 존중을 이끌어낼 때 가능하다. 소통이라고 해서 무조건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소통은 힘없고 약한 쪽에 있는 아이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학생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감정을 힘이나 권유에 의해 조절하지 말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사라고 해서 학생의 마음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없다. 감정은 공감으로 만져줄 때 도움을 주는 것이다. 마음을 이해해 주면 따뜻한 인간관계가 생겨난다.

기다리는 교육도 필요하다. 아이들은 성장이 더디다. 선생님의 시각으로 보면 당연히 늦다. 그들이 천천히 성장하도록 기다려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급하게 채근한다고 정상에 가는 것은 아니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고 실천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의 방식대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도록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의외로 교사와 학생이 다투는 경우가 있다. 다툰다니까 이상한 것 같지만, 서로 의견 충돌로 갈등을 표출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이때 사건의 출발은 오해가 불러온다. 학생은 자존심을 짓밟힌 느낌 때문에 저항감을 표출한다. 자기 방어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러나 교사가 볼 때는 반항이다. 서로 티격태격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여기에 문제는 서로 마음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학생의 행동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행동을 만든 마음을 살펴야 한다.

학생 지도는 교과 지도와 함께 생활 지도도 중요한 영역이다. 과거에 생활 지도는 비교적 수월했다. 교사라는 권위로 아이들에게 말하면 지도가 가능했다. 이 과정에 적당히 힘의 위계를 이용하면 복종을 했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 민주적 의사소통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그들은 무의식 중에 약육강식의 논리를 내면화하고, 성장해서도 스스로 이러한 논리적 구조 속에서 수동적으로 일을 처리하게 된다.

힘과 권위에 의해 만들어지는 질서는 순간 편안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수동적인 집단을 만든다. 이제는 온화함과 부드러움으로 학생이 주체적으로 서는 교육을 해야 한다. 학생들이 방종이 아닌 자유를 누리고, 이 가운데 자율성과 책임감을 갖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인간적인 것을 배제하고 지식만을 내세우는 교육은 환영받지 못한다. 감탄이 아닌 감동 교육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교육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솔직히 표현하는 인재를 만든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는 시점에서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했듯, 교육도 바꿀 것이 많다. 특히 지식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중요해진 능력이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이다. 이제는 가르치는 것보다 학생과의 교감이 중요하다. 학생에게 무심하고 소통을 못하는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교사와 학생이 바람직한 관계를 형성하는 정서이다. 정서적 관계가 좋으면 학교 폭력이 예방되고 교육 효과도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교육은 가르치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실제로 교사가 교실에서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정작 학생들에게 배움의 과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따라서 교사는 자신의 일상적인 생각과 방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오히려 배우게 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배우게 하는 것은 강제적인 억압보다 자발적인 정서 고양이 효과가 크다. 우리 청소년들은 국제학업성취도 평가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나타낸다. 그러나 흥미 등에서는 최하위 등급을 보이고 있다. 이것이 강제적인 학습 지도의 요인이 없다고 못할 것이다.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자기효능감을 갖고 공부할 수 있는 정서적 관계 회복에 힘써야 한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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