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꽃이요, 나무다

2014.03.24 17:18:00

오늘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이다. 가장 공평한 날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길이가 긴 것을 좋아한다. 공평하지 못한 생각이다. 공평한 저울추가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공평한 것이 좋다. 그래야 모두가 불평이 없어지고 말이 없어진다.

3월은 꽃의 달이다. 꽃이 피면 누구나 좋아한다. 꽃은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이제 더 이상 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다./ 꽃에 대해 애기하자면 한이 없을 것이므로/ 그러다 마침내 꽃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므로//새벽 산책길에서/한낮의 호젓한 산길에서/행여 그 꽃을 보게 되면/그냥 생각만 하리/거들거리는 바람처럼…“이쁜 꽃이 피었네.”//

꽃을 생각만 하겠다고 한 시인은 무엇 때문에 생각만 하겠다고 했을까? 꽃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꽃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움 그 자체가 가장 좋은 것이다. 꽃에 대해서 말을 하거나 손을 대거나 하면 그 아름다움이 훼손되고 만다. 꽃에 대해 너무 자랑을 많이 하면 그 꽃을 반대로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 학생들은 꽃이다. 아름다운 꽃이다. 순수한 꽃이다. 봄꽃은 언제가 힘든 겨울을 잘 견뎌내야 핀다. 그렇기에 꽃다운 학생들을 사랑하게 되어 있다. 관심도 가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게 너무 지나치면 그만 상처를 입고 만다. 너무 가까이서도, 너무 멀리서도 말고 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기만 하고 늘 생각만 하면 꽃은 좋아할 것 같다. 꽃을 사랑한답시고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고 자율을 침해하는 것은 꽃을 좋아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다. 특히 꽃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꽃을 꺾는 일은 엄청난 상처를 주는 것일 뿐이라 꽃을 죽이는 행위에 해당하므로 더욱 조심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쯤 피는 꽃은 개나리꽃이고 매화꽃이다. 매화는 벚꽃이 피기 전에 피면서 벚꽃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먼저 피는 꽃은 언제나 선두적인 역할을 한다. 늘 희생적 사고를 갖는다. 남들이 관심을 적게 가질 때 피어난다. 주인공이 뒤에 나타날 것을 예고하는 역할만 한다. 그래도 봄의 초기에, 열악한 환경 속에 꽃을 피우는 것은 용기가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창의적 사고로 세상을 이끌어가는 주역으로서 사명을 감당하기에 더욱 아름답고 빛난다.

학기초에 새로 오신 선생님들은 봄꽃과 같다. 그러기에 늘 관심이 대상이 되고 사랑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게 너무 지나쳐 부담을 주고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새로 오신 선생님이 제자리에 서서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도록 지켜만 주고 격려의 눈빛만 던져주어도 좋아할 것 같다.

3월은 우리 선생님들에게는 서로 바쁜 달이다. 남을 쳐다볼 겨를이 없다. 그래도 사람 사는 냄새가 풍겨나도록 사람 구실은 하면서 바쁘게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꽃다운 선생님들이 꽃답게 예쁘게 피어있도록 관심만 가져주고 생각만 해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는 하지 말자. 그게 지나치면 그 선생님에게 도움보다 손해가 될 수 있다.

한참 꽃이 피어야 할 나무가 죽어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나무는 나무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미 죽어있으니 나무가 아니다. 생명이 없는 나무는 죽은 것이다. 자리만 차지한다. 오히려 짜증만 나게 만든다. 베어 버렸으면 하는 마음도 생긴다.

내가 죽은 나무처럼 나무모양만 하고 나무 구실을 못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볼 필요가 있다. 나무구실을 못하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과 같이 선생님이 선생님 구실을 못하면 다른 선생님들의 눈살을 찡그리게 만들 수도 있다. 살아있는 나무, 나무 구실을 하는 나무, 생명 있는 나무,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나무, 많은 분들이 늘 생각나게 하는 나무처럼 아름다운 선생님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학생들은 꽃이다. 선생님도 꽃이요, 나무다.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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