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헬리콥터 부모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이야기가 된지 오래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도전의식이 사라진 것은 어쩌면 헬리콥터 부모 때문인지 모른다. 오래 전 조카 중 한 아이가 서울과학고에 들어갔다. 그 아이는 서울과학고에서도 공부를 잘 해서 전교 1등을 했다고 한다. 몇 년 후 그 아이는 서울대학교에 들어갔다. 무슨 과로 갔느냐고 물으니 치과대학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들어간 대학은 부모의 뜻이었다. 해마다 입시철만 되면 입시설명회장에는 학부모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대학 들어가는 일은 자식의 일인데 학부모들이 챙기기에 의해 결정된다. 이렇게 대학과 학과의 등급이 정해지고 자녀의 점수로 저울질 하는 것이 입시 설명회이다. 학부모들이 자식 챙기기는 대학을 넘어 일자리를 구하는 면접장까지 향한다고 한다. 하지만 자식 챙기기는 일자리 구하기를 넘어서도 계속된다. 배우자를 구하는 일, 결혼생활 등까지 부모의 간섭이 이어진다. 우리나라 부모 자식 챙기기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미성년자의 나이를 40쯤 올려 놓아야할지 모르겠다.
조카처럼 공부 잘 하기 때문에 의과대학이나 법과대학에 들어간다면 바람직한 현상일까? 그런 나라가 잘 되는 나라일까 생각해본다. 서울과학고등학고에서 1등을 했다면 과학대학이나 공과대학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대학 입학은 부모의 간섭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다. 그래야 공부한 것도 살리고 능력이나 소질도 개발하고 나라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 아이는 부모에 선택에 의해 치과의사가 되었다. 치과의사란 직업을 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한 이빨을 치료하는 직업은 공부실력보다 손재주가 더 필요하다. 그런데 공부 잘 하기 때문에 법과대학이나 의과대학으로 간다면 과학발전은 누가 한단 말인가?
요즘 창조경제를 부르짖지만 젊은이들이 도전의식이 없다고 한다. 젊은이들의 꿈은 공무원이 되는 것, 공부 잘 하면 의사나 법관이 되는 것이란다. 부모가 하는 가업을 이어받을 의지도 없고 기업을 만들 의지도 없다. 어려움을 극복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 모두가 기성세대들이 안정된 삶만 추구하는 아이로 만들고 직업선택의 기준을 정형화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즉 보수, 신분만 생각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누가 헬리콥터 부모들일까? 어쩌면 내 자신이 헬리콥터 부모인지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모두 헬리콥터 부모의 특징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 헬리콥터 부모의 특징은 어떨까? 헬리콥터 부모들의 특징은 자녀를 적게 낳는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자녀 양육비 때문이다. 몇 해 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우리나라 자녀 양육비가 1인당 3만원을 넘는다는 통계가 나왔다. 젊은이들이 결혼해야 할 인식 조사에서 필요를 못 느낀다고 했다. 여성이 더욱 필요를 느끼지 않는 걸로 나타났다.
하지만 자녀 양육비의 많은 부분은 사교육비다. 그리고 명품이 아니면 사주지 않는 양육 태도가 부모의 허리를 휘게 만든다. 자녀에게 좋은 것만 사주면 아이에게 배고픔과 씀씀이를 가르쳐주지 못한다. 씀씀이를 배우지 못한 젊은이들이 노숙자가 되고 사회에 실패자로 낙인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어릴 때 씀씀이와 배고픔을 가르쳐주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한 둘 낳은 자녀는 사회적 관계에서도 서투르다. 종일 부모만 따라 다니다보니 또래와 어울릴 기회가 줄어든다. 결국 사회성 부족으로 남을 생각하는 배려나 원만한 인간관계를 배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형제가 많은 자녀들은 남을 다스리는 방법, 배려하는 방법, 복종하는 방법,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 규칙을 만들고 타협하는 방법을 배운다. 형제가 많은 가정에서 성공한 사람들과 지도자들이 많이 나왔다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헬리콥터 부모들은 자녀에게 과잉 기대를 한다. 자녀가 하는 활동을 기다리지 못하고 간섭하려 든다.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 부모의 기준으로 만든 자녀의 생활계획표를 강요하는 것이다. 자녀가 하나, 둘이니 자녀의 미래에 대한 과잉기대나 불안으로 간섭하게 된다. 기성세대들이 정형화시켜 놓은 대학에 들어가도록 자녀를 강요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헬리콥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무심코 부모가 정한 프로그램에 의해 길들여져 간다. 과외공부도 자신이 선택보다 부모의 간섭이나 영향을 더 받는다. 부모는 좋은 학원을 위해 선택을 고민하지만 아이의 특성이나 능력보다 입소문이나 돈의 가치를 더 존중한다. 그래서 비싼 학원이 좋다는 생각으로 자녀를 이끈다. 이렇게 할 일이 많은 젊은이들은 오로지 점수만을 위한 경쟁의 대열로 내몰린다.
헬리콥터 부모 아래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자기 계획표를 만들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한다. 과외가 만능이라고 믿는 부모들은 자녀의 결혼생활, 직장생활, 사업 성공에 대한 과외가 세상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