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의 ‘무상’ 공약, 누구 돈으로 할까? 자기 돈 들여 ‘무상’공약 실천하는 사람 있을까? 대답은 없습니다. 정치인들의 공약, 표 따기 위한 거짓말인가 나라 위한 약속인가? 대답은 ‘표 따기 위한 공약입니다. 권력을 잡는 것이 최고의 가치잖아요. 권력이 정직과 관련되나요? 그건 시간 지나면 잊어버리는 데요’
“무슨 돈으로 그러실 겁니까?”
“세금이 있잖아요. 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세금에서 빼내는 돈 말이요.”
“왜 지키지 않습니까?”
“해보려고 하니 경제가 어려워요. 나랏돈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걸 몰랐나요?”
“…….”
이렇게 대답하면서 민생 운운한다. 정치인들이 지키지 않는 공약, 하지만 잊지 않는 국민들도 많다. 지켜도 세금으로 낸 나랏돈을 역류시키는 정치인, 유권자들의 짐만 무겁게 만드는 공약 때문 정치에서 국민을 멀어지게 한다. 아무리 청렴사회를 강조해도 정직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정치는 청렴마저 비웃음으로 된다.
요즘 들어 나랏빚을 걱정하는 기사들이 신문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랏빚 만든 정치인들에게 되묻고 싶다.
“무슨 정신으로 그 많은 공약을 내세웠지요? 국민연금도 그렇잖아요. 당신들의 공약으로 나랏빚 늘어나고 있잖아요?”
“나랏빚? 내 탓이라고요?”
하지만 어느 신문 머리기사의 제목이다.
'나랏빚 1117조, 나랏빚 1년 새 200조 급증, 그중 공무원·軍人연금이 159조'
國民 짓누르는 ‘연금 퍼주기’ 공무원 연금, 작년만 2조 적자, 나랏빚이 공무원 군인 연금 때문이라는 것이다. 연금에 손을 보겠다는 사전포석이다.
나랏빚에 치어 연금까지 손대겠다는 이 지경, 누가 만들었나? 공무원이 만들었나, 정치인들이 만들었나? 기사에는 정부가 계산법을 바꾸었기 때문에 늘어났다고도 했다. 그러나 한치 앞을 예측하지 않고 만든 것이 국민연금 아닌가? 나는 김대중 정부 시절 국민연금 만든 정치인 안다. 아첨꾼 몇몇 불러 허겁지겁 장밋빛 청사진 내놓고 국민에게 물어보지도 않았다.
왜 서둘렀을까? 왜 이지경이 된다고 말하지 않았나? 늘어나는 나랏빚 예측도 못하는 바보들끼리 모여 국민연금 만들었나? 아니다. 늘어나는 실업률, 인구 감소, 고령화 나도 알았는데 정치인들이 몰랐다고? 일부러 예측 안했을 뿐이다. 그럼 왜 만들었나? 국민을 위해 만들었을까? 아니다. 돈 있는 곳에 이권이 있으니까 만들었지. 연기금 운영하는 사람도 정치적 공신자인 낙하산 인사들의 차지였다. 전문 관리인 따로 두어 연기금 운영해본 적 있나? 아니다. 연기금 쓰임도 그랬다. 주식폭락하면 총알받이, 공적자금으로 사용하고 손실금액은 세금으로 메꿔 이제와 책임은 가입자의 몫이란다. 그 세금이 연금 지원금액이라고 수면위에 떠오른 것이다.
공무원 연금은 더욱 그랬다. 이제와 국민연금 부실 책임을 공무원 연금으로 떠밀지 마라. 우리는 안다. 허리 때를 졸라매며 기업체에 다니는 친구를 부러워하던 시절, 가난을 참으며 묵묵히 나랏일을 수행하던 공무원들은 정부를 믿었다.
‘그래도 노후 복지는 국가가 마련해주잖아.’
이제 그것을 파기하려고 한다. 법까지 바꿔가며 말이다. 하지만 납부자를 뺀 혁신은 주인 내쫓고 남의 곳간 정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요즘 선거에 나왔다고 하면 무상 시리즈로 재미 본 정치인 닮아가고 있다. 입후보자만을 위한 무상 공약, 백성의 짐을 무겁게 하는 방만한 공약,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우리 사회가 믿음을 잃어버린 나라로 된 건 선량한 국민도 아니고 흉악범도 아니다. 정치인들이 믿음을 잃어버린 나라로 만들고 있다. 정직을 가르쳐야 하는 교육감 선거까지 정치판 닮아가고 았다. 무상급식의 학습 효과 때문이다.
우리는 알자. 무상 포퓰리즘 정치인의 쌈짓돈이 아니다. 돈의 주인은 정치인이 아니라 우리라는 것을. 정치인이 나랏빚 걱정하고 약속을 지키게 만드는 건 깨어 있는 국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