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글짓기

2014.05.07 09:54:00

몇 해 전 학교에서 글짓기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 ‘글짓기 시간’, ‘작문 시간’이 있었다. 언젠가 글짓기는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그 때문 요즘에는 글짓기가 글쓰기로 바꿔 쓴다. 그런데 글짓기는 잘못된 표현일까? 글짓기가 잘못된 것이라는 이유는 ‘짓기’에 보듯 지어 낸다는 뜻이 들어간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 아이들이 거짓 글을 쓴다는 이유에서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 내서 쓰는 글보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통해서 정직하게 글을 쓰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한 이유처럼 보인다. 아이들에게 거짓을 가르치는 일은 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어내는 글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세상에 모든 글은 지어내지 않고 경험한 것만으로 된 글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주장하던 사람도 평생 자신의 경험만으로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그렇고 해리포터를 쓴 조앤 롤랑도 그렇다. 글에는 상상력과 창조성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상력의 세계가 정직하지 못하다고 규정하여 학교에서 막아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말이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어쩌면 어른보다 풍부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상상력은 창조로 가는 길이 아닌가? 상상력을 통해 글짓기를 하는 일이 죄짓는 행위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상상력을 통해서 현실세계에서는 불가능한 문제 해결을 통해 문학적 카다르시스도 체험할 수 있다.

글짓기나 글쓰기는 모두 인위적인 가공이 불가피하다. 물론 소재나 내용은 사실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상상만으로 쓴 판타지 소설이라도 리얼리티를 담보하지 않으면 독자로부터 설득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글쓰기만 받아들이면 어떤 일이 생길까? 학교 현장에는 창작을 배제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편지 쓰기’, ‘논설문 쓰기’는 글쓰기로 할 수 있다. 그런데 ‘동화 쓰기’, ‘시 쓰기’, ‘이야기 마무리하기’ 등과 같은 것도 ‘글쓰기’로 해야 하는가 하는데서 모순에 빠진다. 그래서 ‘글짓기’라는 말 대신 ‘창작’이라는 용어를 써야 된다. 다행이 교육과정에는 문학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며 ‘창작’하는 교육까지 하고 있다.

결국 글짓기와 글쓰기, 그리고 작문과 창작이라는 용어는 나름대로 간섭해서는 안 될 어휘 개념을 가지 있다. 글짓기와 글쓰기는 근본적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문자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의사소통 행위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글짓기와 글쓰기를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글짓기’라는 말은 억지로 지어내는 짓이기 때문에 고쳐야 한다는 말도 궁색하다.

글짓기와 글쓰기 개념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국어교육의 하위 영역은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로 나눈다. 여기에 답이 있다. 읽기와 쓰기가 대응한다. 다시 말해 글 읽기와 글쓰기가 대응한다. 읽기와 쓰기는 서로 넘나든다. 읽고 쓰는 행위는 반복해야 하며 읽어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쓰기에서 창의성을 배제하기란 어렵다. 결국 읽어야 하는 글의 종류에 따라 글쓰기가 이루어지므로 글짓기를 글쓰기에 포괄하는 것이다.
김완기 로봇에게 쫓겨난 대통령 동화작가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강주호 | 편집인 : 강주호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