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선생님이 한두 분은 있으실 겁니다. 옷을 아주 잘 입었던 멋쟁이 선생님이나 유독 자상하고 친절하셨던 선생님. 또는 호랑이처럼 무서웠던 선생님. 이런 여러 선생님들 중에서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역시 무서웠던 선생님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은 우리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선생님으로 악명이 높은 선생님 한 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 선생님은 우리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치는 과학 선생님으로, 외모를 묘사하자면 우선 180cm가 넘는 큰 키에 피부는 구릿빛으로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설상가상으로 양 미간에 굵은 세로줄의 주름이 깊게 패여 있어 인상이 더욱 험악하게 보이는 역할을 합니다. 아이들 말로는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그 주름에 오백 원짜리 동전을 꽂았는데 수업 내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물론 과장이겠지만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선생님 말로는 학생부에 오랫동안 있다 보니 저절로 생긴 주름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요즘처럼 춘곤증이 맹위를 떨치는 나른한 계절에도 그 선생님의 수업시간에는 절대 조는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공포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별명도 조폭입니다.
작년에 저는 마침 그 선생님과 같은 교무실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 자리에서 그 선생님의 자리가 훤히 바라다보여서 그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죠. 역시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일선 학교에서는 학기 초만 되면 학생 상담주간이란 것이 있습니다. 저녁 늦게까지 학생들을 교무실로 불러 기초조사서에 근거해서 아이들의 신상과 진로를 상담하는 것인데, 그 선생님도 그날 저와 같이 상담 중이셨습니다. 제가 상담 중에 잠시 화장실에 가려고 교무실 문을 나서는데 한 무리의 아이들이 교무실 앞에서 상담을 기다리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도 궁금해서 제가 아이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선배들이 그 선생님은 엄청 무서운 선생님이니까 무조건 조심하라고 해서 지레 겁을 집어먹은 거였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무섭게 아이들을 대하시기에 저 정도일까. 호기심마저 일었습니다. 하지만 그 호기심은 금세 풀리고 말았죠.
학생 : (상담을 받기 위해 학생 한 명이 쭈뼛거리며 조폭 선생님 앞으로가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가만히 서 있다.)
조폭 선생님 : (인상을 확 쓰며) 야, 임마, 넌 담임한테 인사도 할 줄 모르냐?
학생 : (겁을 잔뜩 집어먹은 표정으로) “안녕하세요?”
조폭 선생님 : “이 자식 뭐야? 야, 네 눈에는 지금 내가 안녕하게 보이냐? 이렇게 밤늦게까지 근무하는데? 다시 해봐.”
학생 : (이제 당황하다 못해 무척 허둥대는 표정으로)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조폭 선생님 : “어라? 이 자식 봐라. 내가 죽었니? 왜 두 번 절하는 거니? 엉? 내가 죽었으면 좋겠지?”
학생 : (어찌할 줄 모르고 땀만 뻘뻘 흘리고 있다.)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오월이면 고등학교에서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체력검정을 실시했습니다. 반별로 팀을 이뤄 윗몸일으키기, 제자리멀리뛰기, 왕복달리기, 턱걸이 등을 실시했는데 2학년 학생 중에 진짜 유명한 조폭님의 아들이 끼어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한겨울에도 가끔 웃통을 벗고 다닐 정도로 체격이 탱크처럼 우람하고 유도까지 배워 선배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학생이었죠. 상황이 이렇다보니 그 학생은 무서울 게 없었죠. 그날도 저 혼자 빨리 끝내고 집에 가려고 반에서 빠져나와 혼자 검정을 받으려 다녔던 모양입니다. 원래는 한 반씩 줄을 맞춰 이동하면서 순서대로 검사하는 게 원칙이었죠. 하지만 이 학생에겐 이것이 통하지 않았죠. 제자리멀리뛰기, 턱걸이, 왕복달리기를 무사히 마치고 드디어 그 조폭 선생님이 담당하고 있는 윗몸일으키기 코너로 왔더군요.
조폭 선생님 : “야, 너 뭐야? 뭔데 혼자 다녀?”
조폭 학생 : (아주 불량한 자세로 비딱하게 서서) “쪼까 저 먼저 좀 해야되겠습니더.”
조폭 선생님 : “이런 개 썅 ×× 똑바로 서지 못해!”
조폭 학생 : (의외의 강한 반격에 조폭 학생은 조폭 선생님을 멍하니 쳐다본다.)
조폭 선생님 : “좋은 말 할 때 눈 깔아라. 확 뽑아버리기 전에.”
조폭 학생 : (갑자기 시선을 땅에 떨구며 침묵한다.)
조폭 선생님 : “그리고 너네반하고 같이 와. 다음에 또 이런 짓 하다 걸리면 그땐 죽는다!”
이 일로 조폭 선생님은 진짜 조폭을 제압한 선생님으로 더욱 유명해졌고 이 이야기는 학생들 사이에 구전되면서 거의 전설로 굳어졌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학교에 장학사와 외부 손님들이 찾아오는 대대적인 행사가 있어서 아침부터 대청소를 하느라 교내가 발칵 뒤집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호랑이 선생님 반 아이 하나가 2층에서 바깥쪽 유리창을 닦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추락하고 말았죠. 그 광경을 목격한 선생님께서 기겁을 해서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그러자 그 떨어진 학생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부리나케 도망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조폭선생님은 그 학생이 걱정되어 달려간 것인데 그 학생은 조폭 선생님이 자기를 혼내려고 쫓아오는 줄 알고 줄행랑을 친 것이었죠.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한 점은 이처럼 무서운 선생님인데도, 그 선생님이 담임을 했던 반 아이들은 졸업한 후 스승의 날만 되면 어김없이 카네이션을 사들고 조폭선생님을 찾아뵙는다는 사실입니다. 재학시절엔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서워했던 선생님이었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어느 날은 제가 찾아온 졸업생에게 그 이유를 또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학생이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재학시절엔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무서웠지만 졸업한 후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선생님처럼 공평무사한 분이 없더군요. 반 아이들 누구 하나 절대 편애하지 않고 모두 똑 같이 대해주셨고 무엇보다 수업을 열정적으로 잘 해주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졸업생들을 환하게 맞이하는 조폭선생님의 얼굴이 부처님의 상호보다도 더 인자하고 거룩하게 보였습니다. 아무리 호랑이처럼 무섭게 대해도 결국 진심은 통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선생님, 오래도록 아이들에게 그런 뜨거운 사랑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