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원본을 직접 보다

2014.08.18 14:47:00

서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 갔다. 이곳은 새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볼만하다. 여성 건축가가 만든 곳이라 여성적인 느낌이 있다. 건축물에 직선이 없고, 물이 흐르듯 곡선으로 이루어져있다. 내부에도 막힘이 없다. 이리저리 자유롭게 연결돼 있다. 최첨단 시설을 자랑하면서도 역사가 함께 있다. 가운데 한양 도성 성곽 터를 품고 있는 모습이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하다.

이곳에서 간송문화전이 열리고 있다. 간송미술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이다. 국보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 중 하나다. 간송미술관은 1938년 일제강점기에 간송 전형필(1906~1962)에 의해서다. 그는 문화유산을 수집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1936년에는 영국인 국제 변호사 존 개스비를 찾아가 ‘청자기린유개향로’(국호 제65호)와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국보 제270호)등을 거액을 들고 가 찾아왔다.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장에서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국보 제294호)을 비롯해 고려청자, 조선 백자 등을 구입하며 우리 문화재의 해외 반출을 막았다. 6.25전쟁 때는 훈민정음을 베개 속에 넣고 지켰다는 일화도 있다.

평생 국어 선생으로 살면서 학생들에게 ‘훈민정음’ 원본에 대해서 설명했다. 간송 전형필이 거액을 주고 소장하게 된 일화도 수도 없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훈민정음 해례본’을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그래서 전시장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훈민정음으로 달려갔다. 이제 광복이후 학자들과 일반에게 공개된 의미도 생생하게 말할 수 있다. 여기에 한글을 만든 이유와 원리가 들어 있어, 국보 70호로 지정됐고, 1997년 10월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는 이야기도 감동적으로 말할 수 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의 착한 마음이다. 백성을 불쌍히 여겨 쉽게 쓰는 문자를 만들겠다는 군왕의 착한 마음이 영원의 길목을 만든 것이다. 착한 마음은 단순히 남의 배래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심도 중요하다. 자아존중감이다. 이타적인 마음과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이 진정한 착한 마음이다. 한글은 학문에 대한 열정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의 조화가 열매를 맺은 것이다.

‘훈민정음’ 앞에서 착한 사람을 생각해 본다. 간혹 착한 사람은 남에게 이용당하고 자신의 이익을 찾지 못하는 바보로 인식된다. 세상이 각박하다보니 착함의 본래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착하다는 것은 선함이다. 악한 것이 아니다. 착한 사람이 욕심을 버리고 더불어 행복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실천한다.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예를 어긋나면 멀리한다. 착한 사람은 항시 자기를 성찰하면서 마음을 닦는다. 그래서 타인을 위한 마음이 만들어진다. 세종대왕도 책을 가까이 하고, 성인의 말씀을 헤아리면서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래서 국왕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정성으로 백성을 생각했다. 그 정성과 마음이 한글 창제의 꽃으로 피어났다.

이번 전시에서 ‘훈민정음’은 물론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와 ‘혜원전신첩’, 겸재 정선의 ‘압구정(狎鷗亭)’·‘풍악내산총람(楓岳內山總覽)’, 단원 김홍도의 ‘황묘농접(黃猫弄蝶)’, 탄은 이정의 ‘풍죽(風竹)’, 추사 김정희의 ‘고사소요(高士逍遙)’, 오원 장승업, 윤덕희, 심사정 등의 작품을 직접 만났다. 이밖에 국보급 문화재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오늘 유물은 교과서나 기타 문헌에서 자주 보던 것이다. 그런데도 감동이 밀려온다. 그것은 단순히 옛것으로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지혜와 정신이 전하기 때문이다. 유물은 박물관 구석에 먼지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정신의 산물이다. 그것은 현재의 문화를 더욱 창의적으로 계승 및 발전시키는 디딤돌이다.

연암(燕巖) 박지원은 ‘참으로 과거의 것을 배우면서도 변용할 줄 알고 새로운 것을 만들면서도 고전에서 배울 줄 안다면, 오늘날의 학문이 옛날의 학문과 같게 될 것이다(<楚亭集序>)’라고 했다. 연암의 지적은 고전이 지혜와 가치를 발휘하려면 옛날의 상태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로 연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오늘 간송미술전에서 본 것도 단순한 유물이 아니다. 21세기의 가치 창의성을 보았다. 창의성이란 새로운 생각이다. 창의성은 생명력이 영원하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의 창조 정신이 만든 것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한문을 쓰고 있을 것이다. 신윤복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화풍을 따라 산수화를 화폭에 담고, 인물화에 붓놀림을 쏟았다면 신윤복은 지금까지 기억하는 사람들이 없다. 오직 기존의 화풍을 거부하고 인간의 비밀스러운 감정까지 그렸다는 창조적 정신이 감동으로 남은 것이다. 김정희의 글씨도 고정 관념을 거부하고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겠다는 정신의 먹물이 마르지 않았기 때문에 영원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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