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깁스와 명절 증후군

2014.09.12 14:22:00

몇 해 전 친구 장례식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5대 독자로 2녀를 두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 친구가 모시던 홀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우리는 그 친구 어머니를 남다르게 생각했다. 남아있는 부모님들이 대부분 떠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친이어서 친구의 어머니를 모시는 묘소로 따라가려 했다. 하지만 그 친구 말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나고 물으니 화장을 한다고 했다. 의아한 눈길을 보내자 그 친구가 설명했다.

“내가 장손이니 집안에 회의를 열어서 조상 묘소는 모두 없애기로 했어.”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조상 분묘도 모두 해체하여 유골을 모아 화장을 한 뒤 산 위에 흩뿌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이상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이렇게 친구를 위로하며 장례식을 마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친구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딸 2명을 둔 그 친구 조상 제사만 지내다가 딸들이 결혼하면 그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집안 형제들에게 물려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조상 묘소를 모두 없애버린 것이다.

조상 묘소를 없애버리고 몇 해 가지 않아 그 친구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로 세상을 떠났다. 그 친구를 떠나보낼 때 가 보았는데 화장을 한다는 소리만 듣고 돌아왔다.

이렇게 친구는 흙으로 돌아갔다. 물론 그 친구도 조상들처럼 어딘가에 흩뿌렸을 것이다. 그 친구는 갔지만 자녀들은 성묘를 할 수 있을까? 체례는 지낼까? 가족끼리 옹기종기 모여 송편을 빚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까? 나는 생각해본다. 이런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 세대의 일이라는 것을

우리의 추석은 이렇게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요즘 들어 추석의 의미를 새삼 곱씹는 것은 세상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지우려 해도 추석은 한국인의 정서로서 자리 잡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추억의 얼굴은 우리의 의식 속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추석을 통해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밤늦은 시간 어슴푸레한 고향 마을을 향해 달려가지 않았는가. 고향의 냄새, 형제와 가족의 소중함도 추석이라는 만남의 자리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이제 추석도 마치고 며칠간의 시집살이, 귀경길 짜증으로 우리들은 명절 증후군을 톡톡히 겪는다. 직장에 들어가도 일손이 잡히지 않고 화병이 나서 가정불화를 겪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명절 증후군을 격지 않기 위해 가짜 깁스를 준비한다고 한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만우절이나 연극용·파티용 소품으로 쓰이던 가짜 깁스 주문량이 추석을 앞두고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소비층은 2~30대 여성, 일부 쇼핑몰에서는 상품이 품절되었다고도 했다. 가짜 깁스 사이 손을 집어넣고, 2~30분간 잡고 있으면 손 모양과 크기에 완전히 굳어져 송편도 빚지 않아도 되고 설거지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늘어나는 명절 증후군처럼 우리의 가족 공동체 의식은 식어가는 것은 아닐까? 가족 공동체 의식 없이 국가나 사회 공동체 의식이 보존될까? 선생님은 명절 증후군 때문에 가짜 깁스를 사용해본 적 있는지요?
김완기 로봇에게 쫓겨난 대통령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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