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글쓰기인가, 내 삶이 빛나는 순간

2015.06.03 10:48:00

서울대는 ‘대학국어’를 폐지했다. 이는 교양 과목으로 모든 신입생이 의무적으로 들어야 했던 과목이다. 대신 ‘대학 글쓰기의 기초’ ‘인문학 글쓰기’ ‘사회과학 글쓰기’ ‘과학과 기술 글쓰기’를 교양 과목으로 지정했다. 학생들은 이 중 1개 과목을 골라 수강해야 한다. 경희대는 미국 하버드 대학으로 대표되는 교육 시스템인 학부대학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출범했다. 교양 교육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설립했는데, 여기에는 글쓰기 교육이 중요한 영역이다. 신입생은 ‘나를 위한 글쓰기’와 ‘세계를 위한 글쓰기’를 한다. 이 밖에 숙명여대, 서강대, 연세대, 이화여대, 인하대, 중앙대 등 전국의 대학 재학생은 계열 구분 없이 쓰기와 읽기, 토론 등 다양한 글쓰기 교육을 받고 있다.

대학뿐만이 아니다. 글쓰기를 가르치는 민간 기관도 많다. 언론 기관 등의 문화센터는 1년에 20~30개 글쓰기 강좌를 연다. 백화점, 대학 평생교육원, 지방자치 단체 시설 등에도 글쓰기 비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기업체에서도 글쓰기와 관련한 특강을 여는 경우도 많다.

이제 글쓰기 교육은 우리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다. 인터넷 서점의 판매 분석에 따르면, 글쓰기와 관련한 책이 1,000종에 가깝다고 한다. 인터넷 서점에서 글쓰기 항목을 한 갈래로 분류한 게 2010년 중반부터인데 책 판매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처럼 글쓰기 교육이 열의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이 글쓰기 교육에 집중하는 이유는 글쓰기는 학문의 기초 단계라는 점이다. 글쓰기는 정보 전달 혹은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한다. 근본적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문자 언어를 통해서 표현하고 전달함으로써 상대방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일련의 의사소통 행위이다. 의사소통 능력을 길러주지 못하면 인재로 키울 수 없다는 인식에서 시작한 것이다.

문과만이 아니라 이공계에서도 글쓰기 교육이 활발하다.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강호정 교수는 유학 시절 논문 쓰기에 어려움을 겪은 경험 때문에 대학생들에게 과학 글쓰기 강좌를 하고 있다. 강 교수의 글쓰기 강좌는 유명해져 서울대, 중앙대 등에서도 하고 있다. 이는 쓰기 행위가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조직하고 표현함으로써 지식을 구조화하는 기능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는 학습 내용을 단순히 수용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에서 문제를 재해석하고 새로운 문제 사태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글쓰기는 사고력 증진의 도구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해야 글로 구성할 수 있다. 여러 아이디어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그 관계 속에서 새로운 생각들을 만들어내는 동안 논리적으로 사고하게 된다. 아울러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비판적으로 현상을 이해하는 힘을 갖게 한다.

글쓰기는 사회적 경쟁력의 도구이다. 대학에서 글쓰기가 주목받는 것은 미국 MIT 영향 때문이다. 이 대학에서는 매년 200만 달러 이상 예산을 투자해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글쓰기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이 왜 생겼을까. 졸업생들의 강력한 건의 때문이다. MIT를 졸업하면 보통 전문 분야에서 일을 하는데 중견 간부로 필요한 것은 보고서 작성이었다. 직장의 상급 관리일수록 업무 시간의 50% 이상을 글쓰기와 관련된 일을 한다. 중견 간부로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도 보고서로 체계화하지 않으면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다. 우리 주변에서도 글쓰기를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사회적인 발언권을 얻으면서 전문가가 되는 사람도 많다. 김난도 교수, 혜민 스님 등이 그런 경우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최첨단 시대에 글쓰기가 유행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느낌의 글쓰기가 대세로 떠오르니 역설적인 현상이다. 쓰기는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정서를 강화하는데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실제로 최근 불안, 우울증 등을 겪는 청소년이나 노약자들이 글쓰기 치료를 통해 정서적 안정감과 자신감을 얻는다는 보도도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안네 프랑크가 매일 일기를 쓰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처럼, 쓰기는 긍정적인 정서를 강화하고 바람직한 가치관을 형상하도록 한다. 인간은 자기 성취에 대한 욕구, 자기를 표현하는 욕망이 있다. 인문학 바람과 더불어 SNS 상에 힐링 차원의 글쓰기가 유행하는 것도 결국은 이러한 욕망의 갈증을 해결하는 양상이다.

글쓰기가 유행을 타면서 그것을 배우려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글쓰기는 기능을 단숨에 배워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를 잘하는 사람도 그것은 그 자신의 것이지 가르쳐서 남에게 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글쓰기에 대한 가르침은 중국 송나라 때 문인 구양수가 강조했던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다작(多作)’보다 좋은 것이 없다. 좋은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독서력에서 나온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을 다듬고, 써 봐야 한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끊임없이 수양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다.

사실 글쓰기란 실용성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 경우는 거리가 멀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회적 권력을 얻고자 하는 것도 없다. 고상하게 말하면 취미일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좋아서 하는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 생각을 다듬는 것이 좋다. 숨 막히는 도시의 삶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순간이다. 마음의 여유를 즐기고, 그러다가 표현해야 할 생각이 있다면 글로 쓴다. 글 솜씨가 없는 탓에 내 생각의 깊이만큼 문장에 담지 못해 아쉬움도 많다. 하지만 문장 하나에 허우적거리고 밤을 밝혀도 그것이 즐거우니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 모두가 내 삶이 빛나는 순간이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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