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 첫 날. 기말고사에 임하는 아이들의 마음 자세가 사뭇 달라 보였다. 사실 수능 이후 치러지는 기말고사를 별 의미 없이 생각하여 시험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았으나 어려운 수능 탓에 올해는 예전과 다른 양상을 보였다.
기말고사가 끝난 뒤, 문단속을 위해 교실로 향했다. 학생들이 돌아간 교실은 다소 어수선했으나 기말고사를 위해 최선을 다한 흔적을 이곳저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책상과 의자를 대충 정리한 뒤 교실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정적이 흘렸던 3학년 복도가 무언가에 의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소리의 정체가 궁금하여 소리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소리는 다름 아닌 3학년 ○반에서 나는 소리였다.
조용히 교실 문을 열자, 시험을 끝낸 아이들 몇 명이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심 오늘 치른 문제지의 정답을 맞혀보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확인한 결과, 아이들이 들고 있는 것이 문제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며칠 뒤에 있을 면접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면접을 위해 각자의 자기소개서와 생활기록부를 꺼내놓고 질문을 던져가며 서로의 잘못된 점을 하나하나 꼬집어가며 정정해 주고 있었다. 잠깐 아이들의 면접을 도와주기로 하고 먼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소개서와 생활기록부를 차근차근 훑어보았다.
아이들 대부분이 나름대로 자소서를 잘 썼으나, 그중 내용을 유난히 잘 쓴 자소서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 자소서의 주인공은 교대 면접을 앞둔 3학년 ○반 ○○○였다. 자소서 각 문항에 대한 답변 내용이 성실했고 학교생활 충실도와 전공적합도 또한 다른 학생과 비해 차별 있게 잘 썼다.
문득 이 학생의 자소서 작성에 대해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누군가로부터 첨삭을 받지 않고는 도저히 이와 같은 훌륭한 자소서가 나올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자소서 첨삭을 받은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화들짝 놀라며 내 질문에 반문하였다.
“선생님,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질문에 한참 동안 대답을 못 했다. 순간, 지난여름 방학 때 아이들의 자기소개서를 첨삭해 준 기억이 났다. 고3임에도 자소서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아이들을 심하게 꾸짖은 적이 있었다. 일부 아이들은 자소서 문항의 취지와 전혀 다른 내용을 적어 다시 쓰게 하였다. 그리고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제대로 모르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특강까지 하였다.
더군다나 인터넷과 스마트 폰에 길들어 있는 요즘 아이들의 문제점이 글쓰기를 제대로 못 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일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거기에 비해 이 아이의 글쓰기 수준은 놀라울 정도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어본 것이 이 아이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 같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이 아이의 글쓰기 비결은 다름 아닌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써 온 일기에 있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을 잠자기 전 잠깐 시간을 내어 쓴 일기가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 자소서 또한 평소 일기를 쓰듯 부담 없이 작성하였다고 하였다.
그래서일까? 그 아이의 자소서 내용은 솔직하고 담백한 무언가가 있었다. 읽을수록 그 어떤 감동을 주는 것 같아 면접관에게 자기 생각을 어필하는데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는 듯했다. 그리고 요즘 일기 쓰는 아이들이 그다지 없는 것을 고려해볼 때, 그 아이의 말이 어느 정도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추천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 준비에 기말고사까지 아이들은 이중고를 겪어야 한다. 그래도 면접 준비에 임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진지하기만 했다. 아이들은 질문 하나하나에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이야기하였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수능이 끝난 뒤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에게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