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성적표를 나눠준 날 교실은 맨붕 그 자체였다
12월 02일. 수요일. 오전 10시. 어제(12.01) 미리 출력해 놓은 수능 성적표를 들고 교실로 갔다. 교실 문을 열자, 아이들의 모든 시선은 내 얼굴이 아닌 손에 쥔 수능 성적표에 있었다. 이번 수능은 워낙 어려워 가채점으로 본인의 점수를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의 표정이 사뭇 굳어져 있었다.
성적표를 나눠주기 전에 “지금까지 공부해 온 결과에 좌절하거나 슬퍼하지 마라.”라는 아주 짧은 멘트를 아이들에게 해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고생했다.”라는 말과 함께 성적표를 나눠주었다. 그런데 나의 격려의 말에 아이들이 “네”라고 대답은 한 것 같은데 들리지는 않았다.
성적표를 받아 든 아이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자신의 성적표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였다. 믿기지 않은 듯 성적표를 들고 불빛에 비춰보기도 하고 스마트 폰 계산기로 성적을 계산해 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성적을 확인하는 내내 아이들의 입에서는 연신 한숨만 새어 나왔다.
행여 자신의 성적에 불만족하여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성적표를 나눠주면서 나의 시선은 아이들 개개인의 행동에 집중하였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교실 분위기는 말 그대로 맨붕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이들은 안정을 되찾았고 자신의 성적표를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생각보다 점수가 잘 나온 아이에겐 축하를,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울상 짓는 친구에겐 위로를 해주었다.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아이들이 모습이 훈훈해 보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교실 뒤쪽에서 누군가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한 여학생이 얼굴을 책상에 파묻고 울고 있었다. 수능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는지 그 아이의 책상 밑에는 조금 전에 나눠준 성적표가 조각조각 찢겨 떨어져 있었다.
그 여학생은 수시모집 1단계에 합격하여 며칠 전 대학별 고사를 치르고 온 아이였다. 그리고 다녀와 면접을 잘 봤다며 자신감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난 수능(11.12)이 끝난 뒤, 수험생들의 가채점으로 입시학원에서 발표한 예상 등급 컷과 맞춰본 결과 최저학력을 맞췄다며 좋아했던 아이였다. 그런데 오늘 성적표를 받아본 순간, 사회탐구 1과목에서 1등급이 떨어져 결국 수시모집에서 낙방하게 된 것이었다.
사실 수능 성적표에 원점수가 나와 있지 않아 자신의 원점수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으나 수능이 끝난 뒤 가채점으로 입시학원에서 발표한 예상 등급 컷과 차이가 난다며 울화통을 터뜨리는 아이들이 의외(意外)로 많았다. 그리고 학급마다 수능 최저학력을 맞추지 못해 수시모집에서 고배를 마셔야 하는 아이들의 경우, 그 안타까움은 더욱 크다.
아직 입시는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수시모집 최종 합격자 발표와 정시모집(12.24-12.30)이 남아 있는 만큼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은 수능 성적표로 아이들이 낙담하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워 줘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조금이라도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여지(餘地)를 남겨주는 것이 좋을 듯싶다. 대학이 인생 전부가 아닌 만큼, ‘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다’라는 말처럼 우리 아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길 바랄 뿐이다.
오늘따라 하교 하는 고3 아이들의 어깨가 여느 때보다 많이 처져 있다. 대학 합격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갖고 앞만 보고 달려온 아이들이다. 수능이라는 단 한 번의 시험 결과에 마음 아파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교사로서 마음이 착잡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