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때 논다고요?

2016.01.11 09:06:00




인생은 3권의 책

사람은 일생 동안 책을 세 권 쓴다. 1권은 '과거'라는 이름의 책이다. 이 책은 이미 집필이 완료되어 책장에 꽂혀 있다.  2권은 '현재'라는 이름의 책이다. 이 책은 지금의 몸짓과 언어 하나하나가 기록된다. 3권은 '미래'라는 이름의 책이다.
그러나 셋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2권이다. 1권이나 3권은 부록에 불과하다. 오늘을 얼마나 충실히 사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진다.

인생은 연령에 따라서 각기 다른 키워드를 갖는다. 10대는 공부, 20대는 이성, 30대는 생활, 40대는 자유, 50대는 여유, 60대는 생명, 70대는 기다림으로 채워진다. 돈을 벌려면 투자를 해야 하는 것처럼 내일을 여유롭게 보내려면 오늘을 투자해야 한다. 과거는 시효가 지난 수표이며, 미래는 약속어음일 뿐이다. 그러나 현재는 당장 사용 가능한 현찰이다. 오늘 게으른 사람은 영원히 게으른 것이다. 오늘은 이 땅 위에 남은 내 삶의 첫날이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중에서-

아이들은 선생님을 배운다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은 '나도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당신에게 심어준다." -마크 트웨인

그 확신을 심어주는 사람이 바로 훌륭한 교사다. 그는 제자를 거인의 어깨 위에 올려놓는 사람이다. 잠들어 있는 제자의 영혼을 일깨워 세수를 시키고 먼 길을 제대로 갈 수 있도록 무한한 에너지를 불어 넣는 역할을 기꺼이 감당하는 사람이다. 겨울방학은 그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기다.

주변에서 흔히 듣는 말 가운데 "선생님들은 방학이 있어서 좋겠다"는 말이다. 부러움도 있지만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선생님은 재충전이 필요한 직업임을 간과하는 사람들이 많다. 거기에는 그렇게 보도록 만든 사람의 잘못도 있으니 어쩌랴! 새로운 1년을 살아낼 책을 읽고 각종 연수와 배움을 향한 더듬이를 곧추 세워야 하는 시기다. 때로는 고장 난 몸을 살피고 건강을 되찾으며 휴식이 필요한 사람이 선생님이다.

필자 역시 방학이 더 바쁘다. 그동안 시간에 쫓겨 하지 못한 건강검진을 했다. 그랬더니 한 달분의 약을 처방 받아 복용 중이다. 의사와 상담을 하고 고장난 몸에게 미안해하며 몸을 돌보는 중이다. 그동안 가까이에서 살피지 못한 가족을 챙기고 정성스럽게 집밥을 챙겨주는 일을 하며 숙제를 하는 중이다. 무엇보다 소중한 일은 2016년을 살아낼 영혼과 정신의 양식을 찾아 서점으로 도서관으로 출퇴근 하는 일이다. 방학 동안 1년 동안 읽어야 할 책의 30퍼센트는 마쳐야 최저 수준의 숙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책으로 먹고 사는 직업인이니 책이 생명수다. 아이들은 나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배운다. 내 인격과 내 품성과 독서 습관까지 고스란히 배운다. 내 제자가 책을 읽지 않는다면 순전히 내 책임이다. 그 아이를 감동시키지 못한 잘못은 나에게 있다. 선생님이 원재료이고 교육과정은 조리대이며 교과서는 양념일 뿐이다. 원재료가 신선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조리 기구나 양념을 넣어도 맛을 낼 수 없다. 그 원재료를 만드는 것은 방학 동안의 독서와 연수 활동이다. 거기다 건강한 몸은 기본이고 필수다.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최고의 책이다. 그 선생님의 언어사용 능력과 교수 용어는 그가 마신 책의 종류와 수준에 따라 교육철학을 좌우한다. 교사자격증은 최소한의 요건임을 잊어서는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 없다. 결혼과 동시에 책과 담을 쌓는 부모가 자녀 교육을 잘 할 수 없듯이, 교사자격증을 얻고 임용시험을 통과한 후에는 책과 담을 쌓는 선생님이라면 그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내가 아는 모든 선생님들은 방학이 더 바쁘고 열심히 연수하는 분들이다.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활동해온 교사동아리를 새해에도 함께 꾸려갈 구상을 하는 필자도 즐겁다. 2016년에 교사동아리에서 읽고 토론하고 공유할 책들을 미리 읽어야 하는 모둠장의 역할을 잘 해내서 좋은 영향을 끼치는 선배 교사의 모습을 견지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하다.

방학은 '학교라는 교육공동체의 책'을 만드는 준비 기간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는 4년간 공모교장을 모시고 침체된 시골 학교의 분위기를 성공적으로 바꾸었다. 거기에 이어서 무지개학교(혁신학교)2년차를 준비하고 있다. 겨울방학을 하기 전에 그  바쁜 학년 말 일정에도 불구하고 전 교직원이 5차례 모여서 2015년의 교육 활동을 반성하고 재구성하는 워크숍을 실시하고 2016년의 교육활동과 교육과정을 심도 있게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었다.

거기에는 학부모 대표와 학생회 대표까지 참여하여 의견을 묻고 수렴하는 민주적 의사 진행 과정을 거쳤다. 교육의 삼두마차가 함께 협의하고 참신한 의견을 내며 같이 고민하는 시간들은 길었지만 모두가 학교의 주인이라는 자부심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연구부장이나 교무부장 중심으로 학교 교육계획이 수립되는 게 아니라 학교의 비전부터 세부적인 교육 활동 영역까지 협의 과정을 거쳐서 하나하나 의견을 나누고 조율한 다음, 분야 별로 팀을 나누어 교육과정의 틀을 잡았다. 겨울방학 동안 2016년 학교 교육활동 계획과 각 학년 교육과정이 완성될 것이다. 이미 학년 배정과 담당 업무에 이르기까지 겨울방학이 끝나기 전에 마무리 되어 새 학년도 시작 한 달 전에 출발점 행동을 고르게 된 셈이다.

3월이 되어야  새 학년도가 시작되는 게 아니라 겨울방학 동안 물밑 작업을 다 끝내고 준비하므로 2월 한 달 동안 2016학년도 출발선이 그어진 셈이다. 그만큼 시행착오를 줄여서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 하자는 협의 내용을 착실히 준수할 수 있도록 모든 선생님들이 준비 중이다.

혁신학교는 바로 바로 생각을 혁신하여 시행착오를 줄이는 행동의 혁신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그 바탕 위에 합리적인 예산 집행, 교육적이고 길게 보는 교육 활동으로,  학생들이 현재의 책을 잘 쓰게 하여 미래의 책을 편집하는데 힘들지 않고 즐겁게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식이 모든 선생님에게 내재해 있어서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자면 선생님들부터 각자가 쓰고 있는 현재라는 책을 잘 쓰기 위해서 방학 동안 충분히 배우고 구상하여 학생들보다 먼저 자신의 책을 완성해야 할 책무를 다 해야 한다. 그래야 선생님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제자를 올려 놓을 수 있으니.

지금 우리는 '학교'라는 현재의 책을 잘 쓰기 위해서 겨울방학 동안 다람쥐처럼 부지런히 글감을 모으고 설계도를 그리고 뼈대를 완성하는 중이다. 살을 붙이는 일은 아이들과 함께 학교라는 공예실에서 잘 해내리라 확신한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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