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는 인생을 생각하다

2016.03.15 09:49:00

나는 지금 몇 개의 저축통장을 갖고 있는가?

오늘처럼 기분이 착잡한 날도 없을 것이다. 어제 밤 늦게 Y중학교에 근무했던 부장교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당시 체육부장이였던 모 교사가 저 세상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지난 설 명절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모임에 나타났기에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향년 42세.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고인은 체육교사답게 체격이 좋다. 키도 크고 건장하다. 다리도 굵어 체력 또한 강하다. Y중학교에선 각종 체육행사를 주관하였고 전공이 씨름이라 수원시 대표, 경기도 대표로 전국체전에 선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체육수업도 잘 하여 외부 손님을 모시고 공개수업도 한 적이 있다. 가정에서는 아내와 딸, 아들 네 식구가 행복하게 살았다.

나와의 근무는 2년 반 동안 하였다. 학교생활이 성실하고 수업도 잘 할뿐 아니라 본인이 초빙교사를 원하여 2014년부터 4년간 Y중학교에서 더 근무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나는 2014년 3월 학교를 떠나 전직을 하였다. 그 동안 소식을 몰랐는데 안산의 S고교에 근무한다고 한다. 아마도 무슨 사정이 있어 근무지를 옮겼나 보다.

전화를 건 부장교사의 말에 의하면 지난 설 명절 후 간염 증세가 나타나 입원하였다는 것이다. 그 후 증상이 악화되어 간 수치가 매우 높게 나왔다고 한다. 의사 말로는 환자가 신체조건이 좋고 체력이 강해 잘 이겨내고 있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얼마 전 두 종류의 간염이 겹치고 황달도 심하게 나타나 치료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세상을 등질 줄 아무도 몰랐다.

아침 일찍 대학병원 장례식장을 찾으니 손님이 별로 없다. 분향을 하고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예의를 표하였다. 빈소를 지키는 가족에게 나의 신분을 밝히니 본 적이 있다고 하면서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나와 대화를 나누는 부인은 눈물이 글썽글썽하다. 조문을 하고 정중한 인사말을 건넸지만 배우자를 잃은 슬픔을 어찌 말로 표현하랴. 아마도 하늘이 무너진 듯 참담한 기분일 것이다.

점심 땐 교직에서 퇴직한 선배들과 함께 광교산을 찾았다. 항아리 화장실 코스인데 헬기장까지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 분들 평소 얼마나 건강관리를 했는지 산행 도중 벤치가 보여도 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헬기장 인근 전망 좋은 바위에서는 준비해 온 간식을 먹는다. 이 분들은 산새들과 언제 친분을 쌓았는지 땅콩을 잘게 쪼개어 손바닥 위에 놓으면 산새들이 땅콩을 물고 달아난다.


몇 년 전인가 ‘일본 은퇴자들이 후회하는 것들’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일본의 경우나 우리의 경우나 별 차이가 없다. 은퇴 후 후회하는 것은 건강, 돈, 일과 생활, 인간관계 분야인데 후회막급은 무엇일까? 이른 바 ‘∼걸 ∼걸 ∼걸’이다. 건강 분야에서는 치아를 소중히 관리할 걸, 꾸준히 운동해서 체력을 길러둘 걸, 평소에 많이 걸을 걸, 약간 부족한 듯(8부) 먹을 걸 등이다.

돈 분야에서는 좀 더 많이 저축해 둘 걸이다. 은퇴 후 생활 측면에서 후회하는 것은 평생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가질 걸, 여행을 많이 할 걸, 좀 더 여러 가지를 공부해 둘 걸, 퇴직 후에 활용할 자격증을 따둘 걸, 가족과 친구관계 등 인간관계를 소홀히 하지 말 걸 등이다. 지금 우리 은퇴자들이 느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건강할 때 건강의 소중함을 모른다. 건강을 잃고 나서 비로소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 지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늦었다. 은퇴한 선배들이 말하는 후회는 현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귀중한 깨달음을 준다. 선배들이 후회하는 것을 미리 알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고 실천한다면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길이 보인다.

위에 나타난 각 항목을 보니 나도 반성할 점이 보인다. 치아 임플란트는 벌써 세 개째이다. 아내와 해외여행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직장 일 때문이라지만 그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교직에 매어 있다 보니 다른 분야의 공부는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지금 방송대 공부를 하고 있다. 가족과의 대화와 소통도 원활하지 못하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배우자와 가족이다. 절친한 친구와 사이가 좋으면 노후가 즐겁다.

후회 없는 인생, 이제야 조금은 보인다. 바로 5개의 저축통장 마련이다. 일상을 즐길 수 있도록 ‘취미 저축통장’,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도록 ‘교양(지식) 저축통장’, ‘건강 저축통장’은 필수이고 노후가 외롭지 않도록 ‘친구 저축통장’, 품위를 잃지 않도록 ‘돈 저축통장’. 나는 지금 몇 개의 저축통장을 갖고 있는가?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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