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는 시간> 집밥 한 끼

2016.04.21 11:21:00

집밥 한 끼                            

박라연*


아이 맡길 곳이 절박해지자
정으로 똘똘 뭉쳐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물의 대화 사이로 입술을 쭈욱 내밀더군요
물결엔 반드시 모성이 있다고 믿게 되었던 거죠
주저함 없이
겨우 중학생이던 아들의 뼛가루를 뿌리더군요
뼛가루가
뿌리내린 듯싶은 거기를 해마다 찾아가네요
한 해에 한 끼라도 챙기고픈 엄마의 손을 알아본 물결은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입을 벌려주네요
또 그 마음을 알아차린 엄마는
흰 국화 꽃잎을 정성껏 따서
한참을 던지더군요

《실천문학》2015 겨울호

*1951년 생. 1990년 『동아일보』등단. 시집『서울에 사는 평강공주』,『생밤 까주는 사람』,『너에게 세 들어 사는 동안』,『공중 속의 내 정원』,『빛의 사서함』등.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박두진문학상 등 수상.

<시 감상>

시인의 감정이 배제된 곳에서 감동은 샘솟는다. 어느 경우에나 비극에 대해 시인이 먼저 울면 시의 묘미는 반감된다. 이 시도 전혀 시인의 감정이 개입되지 않고 객관적인 묘사에 그쳤기 때문에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비로소 감동의 소용돌이가 일렁이게 된 경우다. 어린 자식의 뼛가루를 강물에 뿌리는 어미의 기막힌 사연을 다루면서도 시의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이 격해있거나 흐트러진 흔적이라곤 없다. 그저 아무 일 아닌 듯 시치미를 뚝 떼고 행을 이어가는 그 솜씨, 독자는 그만 먼저 조용히 내면의 울음을 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요새 집밥 열풍이 불고 있다. 그 현상을 설명하면서 한 요리 전문가는 말한다. 옛날에는 외식 열풍이 불어 너도 나도 외식문화에 심취해 있다가 요새 티브이 프로그램에 점점 더 집밥 열풍이 부는 것은 알고 보면 슬픈 사회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1인 가정이 늘어나면서 집밥 먹을 기회가 점점 없어지니 옛날에 어머니가 해주시던 정성 가득한 집밥이 그리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매일 혼자 외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은 옛날 가족들과 함께 먹던 집밥이 생각나기 마련이고 이런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텔레비전 집밥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이 시의 제목도 아마 그런 사회적 현상을 의식하고 지어졌을 개연성이 있다. 시는 일상생활 속에서 발아한다. 절실하게 체험한 것에서 시작(詩作)의 동기를 얻게 된다. 집밥이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따뜻하고 포근한 어머니의 이미지, 세상의 관심사가 되어버린 집밥이라는 유행어는 이제 시의 제목으로도 안성맞춤이다. 시의 내용도 그렇고 표현도 그렇고 난해한 부분은 없다. 그러면서도 읽는 재미가 있고 감동이 있다. 강하게 전달되어오는 메시지가 있다.

시인의 역량에 따라 역사도, 철학도 사상도 중후하게 시에 담을 수 있겠지만 어떻게든 독자와 소통해야할 사명도 있는 것이라면 시를 너무 무겁게 다루는 것은 조심스럽다. 그러나 그림에서 지나치게 짜임새가 허술하고 구성에 적절한 복잡성이 없이 단순하게 처리된 선이나 색상을 보면 실망감을 갖게 되듯이 시도 지나치게 단순하고 평이하면 읽는 즐거움이 반감되고 말 것이다.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충족시킬 만한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최일화 시인/2011.8 인천남동고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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