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선생님, 요즘 혈당관리 잘하고 계세요?“

2016.08.04 14:36:00




당뇨로 고생하는 동료교사를 위해 텃밭에 '여주' 심어 전달한 선생님, 감동 그 자체였다.


몇 년 전 일이다. 피곤해서일까? 연일 퇴근하자마자, 씻지도 않고 잠자리에 든 적이 많았다. 특히 잦은 소변과 갈증으로 잠을 제대로 못 자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개운치가 않았다. 더군다나 체중까지 줄어 양복바지 허리사이즈를 줄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런 증세가 일시적일 것으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와 같은 증세가 지속하자 아내는 당뇨가 의심된다며 함께 병원에 가 볼 것을 제안했다. 당뇨는 가족력의 영향이 크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바가 있어 집안에 당뇨 환자가 없는 나로서는 아내의 말이 그다지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 갈수록 이런 증세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가 이야기한 당뇨병의 초기 증상에 대해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당뇨병 증세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증세와 똑같지 않은가? 믿기지 않아 사이트에 나온 내용을 인쇄하여 계속해서 읽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다음 날 아내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의사에게 지금까지 일어난 증세를 자세하게 말했다. 그러자 의사는 이런 증세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물었다. 그리고 당뇨가 의심된다며 먼저 혈당 측정을 해보자고 하였다.

측정 결과, 혈당 수치가 정상인보다 훨씬 더 높게 나왔다. 의사는 혈당 수치를 낮추는 것이 급선무라며 인슐린 주사를 주문했다. 그리고 당뇨 관련 책자를 건네며 당뇨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의사는 가능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규칙적인 운동을 적극 권장하며 처방전을 써 주었다.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 한번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병원에서 당뇨 확진 판정 후, 아내는 지금까지의 가족 식단을 당뇨 환자인 내 기준에 맞췄다. 그리고 아내는 신문과 언론 매체 등을 통해 당뇨 관련 정보를 수집하였고 노트에 기록하는 열정을 보였다. 특히 당뇨에 운동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실천하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운동해야 한다며 나를 현관 밖으로 떠밀기도 했다.

처음에는 동료 교사들이 이 사실을 아는 것 자체가 싫었다. 그래서 학교 식당보다 빈 사무실에서 아내가 싸준 현미밥을 동료 교사들 몰래 먹었다. 그런데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동료 교사인 ○선생이 우연히 사무실을 지나치다가 혼자 밥 먹고 있는 나를 본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내가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이유를 ○선생에게 이야기해 주었고 웬만하면 이것을 비밀로 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자 ○교사는 당뇨는 병도 아니라며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냐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내가 완강히 고집하자, ○선생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그 이후, 내가 당뇨라는 사실을 아는 교사는 ○선생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몰랐다. 가끔 마주치는 ○선생은 안부를 물으며 내 건강에 신경 써 주었다. 그리고 ○교사는 당뇨 관련 좋은 정보가 있을 때마다 내게 알려주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내의 정성 탓인지 나의 혈당 수치가 거의 정상을 되찾았다. 그런데 워낙 운동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그 수치(당화혈색소 포함)가 일정 수준에서 더는 낮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이 고무줄 혈당 수치를 정상으로 꾸준히 유지하는 방법을 찾기로 하였다. 

화요일 아침. ○선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김 선생님, 오늘 학교에 나오실 거죠?"
"네. 그런데 조금 늦을 겁니다. 오늘 당뇨 정기 검진이 있는 날이라…"
"그럼, 진료 보고 오세요."
"학교에서 뵙겠습니다."


평소 급한 일이 아니면 전화를 잘하지 않는 ○선생이기에 아침부터 전화한 것을 보면 분명 좋지 않은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병원 진료 내내 ○선생의 전화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진료 결과, 오늘도 혈당 수치가 정상보다 높이 나왔다. 의사는 떨어지지 않는 수치가 이상하다며 꾸준히 운동할 것을 주문했다.  

진료를 마치고 학교에 도착하자, ○선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은 오랫동안 못 본 친구를 만난 것처럼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리고 내 손에 들고 있는 약봉지를 보며 물었다.

"김 선생님, 요즘 혈당관리 잘하고 계세요?"
"네∼에. 혈당이 조금∼"


평소 내 건강에 신경 써주는 ○선생에게 혈당 수치가 올라갔다는 말로 걱정을 끼쳐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말을 머뭇거리자 ○선생이 기다렸다는 듯 말을 꺼냈다.

"선생님, 이거 말려서 차로 한번 드셔 보세요. 당뇨에 좋다네요."
"이게 뭐예요?"
"여주인데요. 선생님께 주려고 텃밭에 심었는데, 너무 잘 자란 것 같아요."
"네∼에?"


○선생은 딴 지 얼마 되지 않은 파란 여주가 든 자루를 내밀었다. 사실 여주가 당뇨에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나를 위해 손수 재배하여 수확한 여주를 ○선생이 내게 준 것이었다. 감동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자루에는 여주 외에 ○선생이 직접 재배한 채소와 옥수수가 함께 들어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오늘 있었던 모든 일을 아내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아내는 너무 고마운 분이라며 ○선생이 준 여주를 잘게 쓸어 채에 말렸다. 그리고 나는 그 고마움을 간단한 문자메시지로 전했다.

"선생님과 같이 마음이 넓은 분과 함께 근무해서 행복합니다. 제 혈당 수치도 아마 선생님의 사랑에 힘입어 정상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이 무더위에 선생님께서도 건강관리 잘하세요. 김환희 올림."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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