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배(除拜)의 선생님

2016.08.23 09:27:00

날씨는 아직도 여전히 폭염이다. 이 폭염을 잘 넘겨야 시원한 바람을 맞이할 수 있고 시원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

올해는 유달리 더운 해였다. 작년에는 선풍기를 틀지 않고 살았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다고 하는 얼마나 더운지 알 수가 있다.

스리랑카의 관광객이 우리나라에 와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 왜 이리 더운지? 겨울이 언제 오는지” 묻더라는 것이다. 아마 스리랑카는 우리보다 여름의 온도가 10도 정도는 낮은 모양이다. 아무튼 견디기 힘든 여름을 잘 견뎌내는 선생님이 대단하다 싶다.

이제 방학도 끝나가고 있다. 2학기가 다가오면 일부이겠지만 새로 부임해서 오는 초임선생님도 계실 것이고 일부 이동하는 선생님도 계실 것이다.

임용고사에 합격해서 교육감의 사령장을 받고 학교에 부임하면 그 기분은 하늘을 날아갈 듯 좋은 것이다. 그 행복은, 그 기쁨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부임을 하기 전에 여러 가지 다짐을 할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복장은 누구보다 단정하게 할 것이라고, 누구보다 일찍 출근할 것이라고, 누구보다 교재연구를 많이 하겠노라고, 누구보다 열심히 가르치겠노라고, 누구보다 학생들을 사랑하게 학생들에게 모든 것을 바치겠노라고 다짐하면서 부임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다짐이고 마음가짐이다. 다들 좋은 생각이다.

목민심서에 보면 목민관이 제배(除拜 : 사령(辭令)을 받으면서)를 하면서 다짐을 한 것을 볼 수가 있다. 임관 발령을 받아 처음에 재물을 함부로 나누어 주거나 써서는 안 되겠노라고, 저보(邸報)를 처음 내려보낼 때 그 폐단을 줄일 수 있는 것은 줄여야 하겠노라고, 부임할 때 여비를 국비로 받고서도 또 백성들에게 돈을 거두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며 부임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가짐인가?

초임 발령을 받고 학교에 가서 나는 이런 것 해보겠노라고 하는 것 중의 하나가 학교의 물건을 사적인 물건처럼 함부로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도 좋다. 전기도, 종이도, 물도, 학교의 모든 물건도 나의 것인 양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지면 모든 것이 낭비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또 하나 교무회의에서 전달되는 내용은 하나도 빠짐없이 메모해서 학생들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겠노라고, 뺄 것 빼고, 넣을 것 넣고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는 것도 좋은 마음의 자세다. 학교의 방침에 잘 따르는 선생님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교무회의라는 생각이 들면 위계질서에 따라 바르게, 효율적으로 운영되도록 하기 위해 건의하겠노라고 다짐하는 선생님도 정말 좋은 선생님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학부모님으로부터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은 자제하겠노라고,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하고 난감할 때가 생겨도 참고 견디겠노라고 다짐하는 것도 참 좋은 생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 부임을 하면 천국 같은 학교생활이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하면 큰코 다친다. 요즘은 많은 학부모님이 시어머니가 되고 시아버지가 된다.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다. 엊그제 신문을 보니 서울 모 지역의 일부 학부모가 바지를 입으면 치마를 입으라, 치마를 입으면 바지를 입으라고 하면서 간섭한다고 하니 정말 교직의 생활은 험난하기 짝이 없다.

이때 지혜로운 선생님은 지혜롭게 행동하며 잘 참고 견디는 것이다. 첫 부임을 앞두고 있는 선생님들은 제배(除拜 : 사령(辭令)을 받으면서)의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 경륜이 많은 선생님들께서도 첫 부임의 때를 생각하면서 제배(除拜)의 선생님이 되면 좋을 것 같다.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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