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가 잘 다니던 일류대학을 그만두려는 진짜 이유?

2016.09.01 23:53:00


졸업식 때 나타나지도 않았던 제자, 반수생(半修生) 되어 나타나다

개학 이틀(8월 19일)을 남겨 놓고 올해 졸업한 한 제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회 졸업생 ○○○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제가 올해 수능시험을 다시 보려고 하는데 수능 원서를 언제부터 작성하는지 궁금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수능시험을 다시 본다고? 지금 다니는 대학은 어떻게 하고?”


졸업 이후, 그간 연락 한번 하지 않았던 제자의 뜬금없는 수능 시험 이야기에 다소 어이가 없었다. 더군다나 졸업식 날 ○○○상 대상자로 선정되었으나 녀석이 아무런 연락도 없이 식장에 나타나지 않아 내 걱정을 많이 끼쳤다. 다행히 다른 아이가 대리 수상을 하긴 했으나 녀석이 졸업식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를 모른 체 지나왔다.

문득 지난 일이 떠올려졌다. 사실 제자는 졸업생 중 제일 성적이 우수한 여학생이었다. 그래서일까? 제자에 대한 선생님의 기대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모든 선생님의 관심은 제자의 대학 입시 결과에 집중되었다.

그해 제자는 수시모집 세 군데 대학(일명 SKY대학)에 원서를 썼고 두 대학에 최초 합격을 하였다. 그런데 본인이 가고 싶은 ○○대학은 불합격하여 그 안타까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이후, 누구도 제자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리고 ○○대학에 최종 등록하여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제자의 친구로부터 간간이 들은 것이 전부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난 제자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제자는 전화상으로 졸업식에 참가하지 못한 이유와 그간의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한 죄송함에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제자의 말이 다소 변명처럼 들렸지만, 제자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는 되었다.

무엇보다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도 괜찮은데 틈틈이 대학에 다니면서 수능 공부를 해 온 것으로 보아 제자는 떨어진 ○○대학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했다. 더욱이 전공 학과가 취업이 잘 안 되어 고민하다가 부모님과 상의하여 반수를 결심했다고 제자는 말했다. 

제자에게 수능 원서 작성과 관련하여 자세히 설명해주고 난 뒤, 언제까지 학교에 찾아올 것을 주문했다. 그러자 제자는 부탁할 것이 있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제가 수능 시험 본다는 사실을 비밀로 해 주었으면 합니다. 괜한 일로 선생님께 심려를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아서요. 그리고 추천서는 선생님께서 써 주셨으면 합니다. 부탁할게요.”

제자의 부탁이 워낙 완강하여 거절할 수 없었으나 다소 부담은 되었다. 그리고 제자는 약속한 날짜에 찾아오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수요일(31일). 제자가 음료수를 들고 교무실로 찾아 왔다. 오랜만에 나타난 제자의 깜짝 등장에 교무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제자는 가지고 온 음료수를 선생님께 일일이 나눠주며 인사를 했다. 모든 선생님은 녀석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대학생활을 묻기도 하였다.

제자는 선생님의 질문에 미소로 답을 했을 뿐, 학교에 찾아온 진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수능 원서를 작성하고 난 뒤, 녀석은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 것을 재차 당부했다. 아마도 그건, 선생님의 기대를 두 번 다시 실망시켜 주지 않으려는 제자의 진심 어린 마음이 아니었나 싶었다.

제자는 ‘대학도 중요하지만, 전공 학과가 더 중요하다’며 자신이 반수(半修)를 결심하게 된 이유를 말했다. 그리고 다니는 대학에 자신과 같은 대학생이 많다며 후배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모름지기 제자의 이야기는 9월 수시모집을 앞둔 재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올여름, 자신의 못다 한 꿈을 이루기 위해 제자는 최선을 다했으리라 본다. 특히 반수생(半修生)으로 마음고생을 많이 한 만큼 제자의 꿈이 꼭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그리고 제자의 지금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꼭 보고 싶다.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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