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통한다
인문학은 라틴어 휴마니스타스 즉 인간의 본성을 뿌리로 하여 인간의 사상 및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 영역이다.
<고전의 시작>은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이다. 정독해야 하고 생각하며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심하며 반복해서 읽어야 하는 책이다. 인문고전 읽기를 시작함에 있어서 동양철학 25선으로 이루어진 이 책을 필자가 권한 까닭이다.
음식으로 치자면 정통 한정식 메뉴라고나 할까? 시간을 들여 조리한 음식의 풍미와 색을 음미하며 맛을 보고 코스 요리를 즐기는, 마치 귀한 사람 대우 받는 느낌으로 받아든 밥상 같은 책이다. 동양철학을 관통하는 25가지 책을 잘 골라서 깔끔하게 정성스럽게 차려 놓은 동양고전의 밥상이다.
생각하지 않고 편하게 쉽게 읽히는 책은 인스턴트 음식처럼 씹지 않고 먹는 음식처럼 지혜가 생기기 어렵다. 격물치지는 책을 읽는 태도에도 꼭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읽고 되묻고 의심하고 초서를 남기며 읽게 하는 책이라야 오래 남는다.
성리학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수기치인修己治人의 학문이다. 자신을 수양한 후에 남을 교화해야 함을 이르는 말이니 자기 스스로를 닦고 백성을 다스리는 학문'이다. 성학십도는 한마디로 경(敬)이다. 이것 역시 성현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며 자신을 닦는 것이니 수기치인의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맹자의 왕도정치는 "백성들이 원하는 것을 모아주고 싫어하는 것도 하지 않는 정치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그다음이 나라이며 임금은 가장 가벼운 존재"라는 맹자의 사상은 파격에 가깝다. 오늘날 우리의 정치 현실은 그 반대가 아닌가! 국민이 원하는 것은 외면하고 싫어하는 것을 하는 정치가 아니던가. 국민이 가장 천하고 대통령은 가장 귀한 존재로 군림하는 세상이니.
이를 교육으로 가져오면, 학생이 가장 귀한 존재이고 그다음이 선생이고 관리자는 가장 가벼운 존재다. 학생이 있어야 선생이 있고 관리자도 존재할 수 있으니 말이다. 회사에 빗대어 말하면, 사원이 가장 귀한 존재이고 회사가 그다음이며 사장은 가장 가벼운 존재다. 그러나 현실이 그러질 못하니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생기고 억울한 사람들이 즐비하다.
맹자의 왕도정치론은 결코 오래된 과거의 지론이 아니어서 지금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덕목임을 깨닫도록 죽비를 내리친다. 고전을 읽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일자천금의 문장을 발견하는 순간의 행복한 전율로 짜릿한 감성의 비를 맞으며 행복을 느끼게 한다. 읽음에 속도가 더디고 자주 멈추는 까닭이다. 느리게 읽어야 보이는 풍경도 열매도 더 얻을 수 있는 책이다.
공자의 忠과 恕도 그러하다. 충은 나 자신에게 진실하고 성실한 자세이니 修己이며 敬이다. 현대식으로 말한다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의 자세다. 恕는 타인을 향한 忠의 자세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타인에게 하지 않는 자세다. 지금 세상은 충과 서가 부족해서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으니, 이것 역시 고리타분한 과거의 학문이 아니다. 그러기에 고전은 삶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중용에서 말하는 군자와 소인의 기준도 현대인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군자는 배움 이전에 행동하는 사람이고 소인은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군자는 충과 서를 실천하는 사람이고 소인은 자신에게도 충하지 않고 타인에게도 서하지 않는 사람이다.
오늘날 험한 세상이 되어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자기에게 충하지 못한 사람이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충할 리가 없다. 자기에게 충한 사람은 타인에게도 충하는 서를 실천하는 사람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탈무드에서 말하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과도 통한다.
공중도덕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몇 사람 때문에 이웃이 힘들다. 함부로 말하고 상처 주고 폭력을 일삼고도 남탓을 한다. 그런 부모를 보고 자란 아이들에게 또 그렇게 대물림을 한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높은 학위를 가지고 관직에 올라서 제멋대로 하는 사람(소인)이 상사가 되면 그 직장이 힘들고 조직이 힘들 수밖에 없다.
바가바드 기타(지존자의 노래라는 뜻)의 핵심도 공자의 충과 서와 통한다. "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모든 존재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며 집착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 고통과 기쁨에 더 이상 휩쓸리지 않는 사람으로 헌신적인 삶으로, 이타행으로 적극적인 참여의 삶을 강조"을 말하고 있으니!
원효의 진리관 역시 통한다. 원효는 "하나의 울타리(일상생활)안에서 그것에 매몰되지도, 거기서 벗어나지도 않으면서 바르게 생각하고 관찰하면 그것이 진리에 이르는 길이다." 라고 말하며 일상의 평범한 삶으로 진리의 길을 걸어서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순간에 깨달음을 얻고(돈오(頓悟) 계속 정진(점수漸修)할 수 있음을 일반대중에게 몸으로 보인 선각자였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세상 만물에 道가 있다. 없음에서 있음이 비롯되었다. 그러니 없음이 근원이다. 마음의 눈으로 보면 없음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어린 왕자>에 나오는 가장 멋진 대사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매몰되어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잊고 산다. 질서정연한 우주의 운행도, 어버이의 깊은 사랑도, 세상을 존재하게 하는 도의 실제도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보이는 사물에 집착하여 살다가 귀한 시간을 다 놓치는 게 인간이다. 돈과 물질, 좋은 집과 비싼 차, 외모지상주의는 모두 보이는 것을 중시하는 현상의 단면들이다.
좀 더 과장해서 말하면 직업의 귀천까지도 물질이 좌우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사기>를 쓴 사마천은 인간의 나약한 단면을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어서 놀랍다. " 무릇 보통 사람들은 자기보다 10배 부자에 대해서는 헐뜯고, 100배가 되면 두려워하고, 1000배가 되면 그 사람의 일을 해주고, 1만 배가 되면 그의 노예가 된다."고 갈파한 것이다. 사기는 세종이 즐겨 읽었던 역사서이기도 하다. 세종은 경서는 백번을 읽고 역사서는 30번을 읽을 정도로 인문고전에 밝은 철인 정치가였기에 세계 역사에 빛나는 군주가 될 수 있었으리라.
<고전의 시작, 동양철학편>을 두 번 읽으니 어렴풋이나마 동영철학의 줄거리들이 보인다. 모두 진리라는 한 나무에 뿌리를 두고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는 거대한 나무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몇 번이나 더 읽어야 저자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동양철학의 잎사귀들을 만지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망망대해처럼 아득하게 보였던 동양철학의 지평선이 몇 센티미터씩 가까워지는 설렘에 돋보기를 쓰고 이 초록을 쓰면서도 배우는 삶을 선물한 교직에 지극한 감사를 보이지 않는 모든 존재 앞에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