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를 평가의 잣대로 삼는 것이 문제
모 고등학교에서 같은 학년을 가르치는 국어과 교사 간에(4명) 협의 부족으로 출제범위와 방향이 다르게 고지되어(출제는 편의상 돌아가면서 맡고 있는 것 같음) 학급 간에 평균 차가 크게 났고(약 20점 정도), 그제야 교사들끼리 협의하여(학생들에게 미안해서가 아니라 내신 등급표에서 이 결과가 다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재시험을 치루게 하였다. 학생들 모두가 기분 나빴지만 학교내신제 때문에 불평도 못하고 수용하였다. 학부모들에게는 일언반구 공식 멘트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학교는 여전히 운영되고 있으며, 아무런 사고도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런 학교는 공급자 중심의 교육을 시행하였던 과거 전통적인 학교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학교에서는 교사에게 전문성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중학교 국어과 선생님이 한 반 평균을 82점에서 85점으로 올렸다. 이 선생님은 유능한 선생님으로 평가받는다. 반 평균 성적을 무려 3점이나 신장시켰으니, 유능한 선생님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한 반의 학생이 80명일 때에도 이런 선생님이 유능한 선생님이었고, 한 반의 학생이 35명 정도인 오늘날에도 이런 선생님이 유능한 선생님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12년간 성적이 올라가면서 성장한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갈 때에는 국어가 가장 어려운 과목이고, 별도로 과외를 해야 하며, 옛날에 비해서 국어 실력이 뒤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다른 과목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학년 전체에서 담임한 반이 몇 등이냐가 잣대가 되는 담임교사의 능력 평가 체제가 수 십 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늘 선생님은 유능했는데, 늘 점수를 향상시켰는데, 학생들의 실력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이처럼 점수는 아무 것도 말해주지 못하는 데에도 그 점수에 매달려야 하는 우리 학교사회의 맥락에서, 정작 유능한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일까?
전통적인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야
학급 학생들에게 교육과정을 실행하면서 교사는 전체성 또는 평균성, 타율성, 획일성, 경직성을 강조하는 전통적 교육에서의 학습 원리를 고집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여럿이서 뭉친다고 될 일도 아니다. 학생들의 특성에 관계없이 경직되고 획일적으로 사전에 편성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기술자에서 한 단계 격상하여야 한다. 전체 학생들 중 평균적인 학생들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어 일제식으로 수업을 전개하는 방식은 어느 학생에게도 유익하지 못하다. 학부모나 학생의 특성과 요구와 관계없이 교사가 일방적으로 조성한 교과 학습 환경은 교사의 전문성을 의심케 한다.
이제 교사는 학생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유연하고 다양한 교육과정을 편성 운영하여야 한다. 학생들의 개별적 또는 전체적 특성을 고려하여 적절한 수업행위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이를 실행에 옮겨야 한다. 학생들이 자기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추어 자율적이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점을 강조하여야 하며, 학습자의 특성에 맞게 다양한 학습 환경을 제공해주어야 한다(김차식, 2001). 교사는 담당하고 있는 교과목을 대상으로 교수 실천에 대한 지식, 내용지식, 교육과정 실행 지식에 정통한 자들이어야 하며(Doyle, 1990), 그러한 선생님들만이 유능한 선생님이다. 교수 실천에 관한 지식은 특정한 교사의 행위나 행위체제가 교실에서 사용되어졌을 때 어떤 결과를 낳았느냐에 대한 지식이다.
또한 내용지식은 교과지식과 교수적 내용 지식을 말하는 것으로 전자는 교과의 구조에 대한 이해, 개념적 조직의 원리에 대한 이해, 그리고 탐구의 원리에 대한 이해인 교과지식를 말한다. 후자는 교사가 갖고 있는 내용 지식을 교수적으로 강의하면서 학생들의 능력과 배경에 따라 교수학습 활동에 적합한 형태로 변형시키는 능력을 말한다. 그리고 교육과정 실행지식은 교육과정의 실행을 형성하는 교실내의 구조와 과정에 대한 것으로 교실이 어떻게 운영되는가, 교수 효과가 어떻게 일어나는 것 등에 대한 지식을 말한다.
스스로의 지식과 기술에 따라 결정
교사는 자신의 지식과 기술에 따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재량권을 행사한다. 교수자의 일은 단순한 과정을 요구하고 사전에 주어진 지침에 따라 수행해야 하는 것으로 이루어야 할 목표와 목표달성을 위한 실행의 절차가 객관화·일반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교수자의 일은 출발점에서부터 가시화·일반화될 수 없는 개성적 대상과 목표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실행과정에 시종일관 개별성과 우연성이 수반되기 때문에 교육받는 대상의 고유한 가능성과 교육적 필요를 포착하는 일에서부터 그에게 가장 의미 있는 경험의 소재들을 선정·해석·번역하여 전달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서 끊임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허병기, 1994). 그렇게 때문에 교사에게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이며, 유능한 교사의 판정 여부도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고객이 코를 높여 달라고 해서 코를 높여주고, 눈을 크게 해달라고 해서 크게 만들어주는 성형외과 의사처럼, 과학자를 원한다고 해서 과학자를 만들고, 피아노 연주자를 하고 싶다고 해서 피아노 연주자를 만들어 주는 그런 교육을 수요자 중심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형외과 의사도 고객의 건강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시술을 하지 않듯이, 교사도 학생과 학부모가 원한다고 해서 주문에 무조건 응하는 일을 자신의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이돈희, 2000).
교사는 도덕적·전문적 책무성을 담보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학생, 학부모의 주관적 요구와 필요에 응하며, 그에 부응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전문성을 발휘하여야 한다. 즉 학습목표와 학습활동과의 연계성 모색, 학습의 개별화 전략의 수립 실천, 교과 병행 학습과 통합 학습의 적절한 활용, 소집단 학습의 구성 및 학습 방법에 대한 이해와 실천, 학생의 학습 계획 참여 여부 및 방법 결정, 토론 학습에 관한 연구, 훈련 및 학습 결과에 대한 종합 토론 실시, 학습 결과 정리 및 확인 등과 같은 전문적 지식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이용숙, 1997).
우리나라 교사들은 학생의 특성과 정보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인식을 대체로 가지고 있으며, 주된 방법은 학생과의 접촉 또는 면담(46%), 학교생활기록부(31%) 등이었다. 학생지도활동에 가장 중요한 학생 특성·정보의 내용은 성적수준(46%), 태도 및 성격(36%)의 순이라고 한다(최상근, 1999). 이와 같이 교사들이 학생의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조사연구에서 볼 때, 전체 교과목을 대상으로 한 점수, 그것도 아마 전체 학생 가운데에서 차지하는 상대적 순위에 관한 의식을 중심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교사들의 학생 파악 실태는 위에서 기술한 전통적 교육 상황에는 적합하다거나 효과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그런 풍토가 우리 학교사회를 주도해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지향하고 있는 학생, 학부모를 교육 공급자 입장에서 보지 않고, 교육의 선택권을 갖고 있는 고객이며, 교사의 전문성과 존재적 의미는 그러한 수요자의 필요와 요구에 부응하는 수요자 중심의 교수 학습을 지향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교사는 막연한 점수 중심의 학생 정보에 그치지 말고 자신이 담당하는 교과, 그것도 교과에서 가르쳐야 할 주요 내용 영역별로 구체적인 학생 개인별 정보를 파악하여야 학생 개인의 필요에 부응하는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사는 가르친 학생들의 능력 대변
각 교과별로 학년별로 교수하고자 하는 내용 영역이 있을 것이다. 그 내용 영역별로 각 개별 학생들의 출발점 단계에서의 이해도 수준을 진단해야 한다. 대체로 주지교과(여기서는 수업시수가 많은 교과를 말함)의 경우, 학교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4~6개반(100~200명)을 담당한다. 이 담당하는 학생들의 내용 영역별 출발점 정보를 소상히 파악·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수업 장면에서 학생에게 무작정 '그것도 모르니' 하고 못을 박아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학생들의 학습 실태와 수준과는 전혀 관계없이 교사 나름대로 작성한 천편일률적인 교육 내용의 전달식으로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각 학생별로 내용영역별로 연간 지도 계획(방법)과 목표달성 내역을 작성하여 운영함으로써 주먹구구식 전체적, 일제식 수업을 지양하고, 맞춤형 수요자 중심 교과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 이러한 교육과정 운영 및 실행자만이 전문직으로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 실태가 그러할 때에 전문직으로서의 평가를 요구할 수 있다. 즉 전문직으로서의 교사의 업적은 교사 본인이 작성하고 수행한 내용, 영역별 성취도, 진단-교육과정 및 수업지도 운영-목표 달성도에 대한 자체 또는 전문가 평가를 통해서만이 평가되어야만 하며, 그 결과를 통해서 유능한지를 이야기 할 수 있다.
위와 같이 수행한 교사는 자신이 가르친 학생 하나하나에 대해서 각 내용영역별 습득 수준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국어과를 예로 할 경우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 등으로 구분하여 학생이 갖고 있는 능력과 부족한 점 등을 지적할 수 있으며, 앞으로 어떤 노력을 더 경주해야 하는지 등에 관하여 자신의 입장을 후임 교사에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잘 못하는 아이와 잘 하는 아이로만 구분되어 후임교사에게 인계인수되고 있는 낙인의 현실을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교직 활동을 위해서는 동일교과 교사간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전문성 중심으로 상호 협력하고, 각자의 전문성을 제고할 수 있는 과업지향적 교과 풍토 조성을 위한 노력이 중요할 것이다. 매년 교사가 바뀌고, 독자적 전문성(예컨대 비밀주의, 폐쇄주의 같은 것)만을 중시하려는 교사들의 그릇된 직무 태도에도 변화가 일어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