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서울시내 학교선택권 확대가 계획대로 시행된다 하더라도 어느 특정학군으로 학생이 몰리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교를 선택함에 있어 무엇보다 통학시간과 여건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의견을 취합해보면 3년 후 제도시행에서도 이같은 분위기가 지속될지는 장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여 앞으로 소속 학군 내 이른바 명문고의 존재여부와 특성화 교육으로 교육수요를 잘 반영하는 학교가 나오지 않으면 일부에서 우려하고 있는 강남학군으로의 집중이 현실화 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요인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학 부담 학군 내 학교지원율 높아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용역의뢰를 받아 학교선택권 확대를 연구해 온 동국대 박부권 교수팀이 지난 해 7월 서울시내 중 3학생을 11만3225명을 대상으로 모의실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현재 계획 중인 단일학군 2회, 통합학군 2회를 선택하는 안에서 서울시내 남녀 학생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50% 이상 거주지 소속학군을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남학생 북부학군, 남학생 중부학군, 남학생 강동학군, 남학생 강서학군, 남학생 강남학군, 여학생 강동학군, 여학생 강서학군, 여학생 강남학군 등은 80% 이상 자기가 거주하는 학군에서 고등학교를 지원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박 교수팀의 모의지원실험에서는 일부 우려하고 있는 타학군에서의 강남학군 지원 집중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남학생의 경우 인근 강동학군에서 16.3% 학생이, 동작학군에서 19.5% 학생이, 강동학군에서 10.4% 학생이 강남학군으로 지원해 두 자리 지원율을 보였을 뿐 나머지 학군 소속 중학생들은 5%대 미만의 지원율을 기록했다. 특히 강남학군으로부터 거리가 먼 강서학군 학생의 경우 1.9%, 성북학군 학생도 2.8%만이 강남권 고교를 선택했다. 여학생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동작학군 학생의 25.5%가 강남학군을 지원해 두드러진 수치를 보였을 뿐 인근 강동학군(11.4%), 성동학군(8.8%)를 제외하면 대부분 5% 미만의 지원율을 보였다.
이같은 모의실험 결과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선택 지원이 가능한 고등학교의 범위가 서울시 전지역으로 확대됐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의 학생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일반학군에서 학교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 선택도 다수의 학생이 통합학군을 지원하고 있는 반면 통합학군의 경계를 넘어 지원하는 사례는 많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결국 학생들이 학교를 선택함에 있어 통학거리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이번 시뮬레이션 결과에서는 남녀학생들의 지원형태가 미묘한 차이점을 보였다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여학생들의 소속학군 지원비율이 남학생들의 소속학군 지원비율에 비해 낮은 수치를 보였으며 동부학군, 남부학군, 성북학군의 학생들은 소속학군 지원비율이 50%도 미치지 못했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박 교수팀은 이들 학군의 여학생들이 인접하고 있는 중부학군에 대거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혀 남학생보다 여학생의 중부학군 선호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설문 ‘실제 강남학군 선택은 33%’
2월 서울시교육청의 학교선택권 확대 계획 발표 이후 학부모들은 일방적 배정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올해 중학교에 진학해 제도가 시행되면 첫 해당자가 되는 자녀를 둔 노원구 상계동의 임미숙 씨는 “타 지역의 학교를 선택할지 안할지는 아직 시간이 있는 만큼 결정하지 않았지만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광진구 자양동의 초등학생 학부모인 박인자 씨도 “강남으로 집중이 우려되기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평준화 틀 속에서 학교는 별 차이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오히려 걱정은 강남 쪽의 사교육 시장에서 경쟁이 더 커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이 학부모와 교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학부모의 69.2%가 학교선택권 확대에 찬성했다. 하지만 원거리 배정을 우려하는 강남지역 학부모의 찬성율이 36.7%에 그쳐 대조를 이뤘다.
강남구 일원동의 한 중학생 학부모는 “강남으로 진학하는 학생을 따라 다른 지역에서 학부모들이 이사오게 되면 집값이나 전세값이 아무래도 영향을 받지 않겠냐”고 밝혔다. 지난 해 12월 ‘학교선택권 확대 제2차 공청회’에 참석했던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부모도 “시뮬레이션 결과에서 강남학군 학생에 미치는 별 영향이 없을 것이란 결과가 나왔다곤 하지만 실제 지원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라며 “결국 다른 지역에서 학생들이 지원해 배정받으면 이 지역 학생들이 원거리 통학을 해야 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박 교수팀의 모의지원 결과와 3년 뒤 실제 시행에서 차이를 보일 것이라는 대한 우려는 최근 실시된 한 민간 어린이교육업체의 설문에서는 학교선택권 확대에 대한 반대(58%)가 찬성(42%)보다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자녀를 어느 학교에 보낼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는 ‘강남학군에 보낼 것’이라는 응답이 33%를 차지해 학부모 사이에서 강남 선호 현상이 아직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학부모들 학교여건, 정책변수 모두 고려
결국 시뮬레이션 결과와 학부모의 의견들을 종합해보면 통학거리나 시간, 여건 등을 고려해 볼 때 가급적 학군 내 학교를 지원하겠지만 진학률이나 수업의 질, 특성화 여부 등 적절한 교육여건이 갖춰지지 않거나 타학군과의 현저한 차이가 느껴진다면 결국 통학부담을 안고서라도 타학군을 지원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따라서 학교선택권 확대 계획의 논의 초기부터 제기돼 온 특정학군으로서의 집중현상이나 학교 간 서열화 등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학교는 교육정책에 부합되면서 특성화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정책당국은 일관된 정책 유지로 교육신뢰를 제고하는 한편 학군별로 적어도 2~3개의 이른바 명문고 육성을 지원해야 한다고 학부모와 전문가들은 제언하고 있다.
초등학생 학부모인 강서구 화곡동 이지현 씨는 “지금 생각으로는 인근에 좋은 학교가 있다면 당연히 지원할 것이지만 만일 고교등급제 도입 등과 같은 교육정책의 변화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학교선택권 확대를 고려할 것”라고 말해 학교 여건과 함께 입시를 포함한 교육정책의 변화도 변수로 고려하고 있음을 밝혔다.
학교선택권 확대 연구를 맡아 온 박부권 교수도 “학교선택권이 확대된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추첨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학생들이 구성원이 될 수 있다”며 “이들의 다양한 욕구를 부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지 않는다면 학군 내 학생을 유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앞으로 시행까지는 3년이 남았고 그 기간 동안 실제 지원자를 대상으로 모의지원 실험을 실시해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 변화를 관심있게 지켜 볼 것”이라며 “앞으로 잠재적 비선호학교에 대한 지원 강화 등을 통해 제도 보완을 계속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