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신뢰받는 학교 만든 비결은 眞心"

2009.12.01 09:00:00

충북 제천에서 ‘골칫거리’, ‘깡패학교’로 불리며 문제학교로 낙인찍혔던 제천산업고가 3년 만에 지역에서 신뢰받는 학교로 거듭났다. 이런 사실이 학생, 학부모들 사이에 소문이 나면서 8년여간 신입생이 미달이었던 학교가 지금은 신입생이 몰려드는 상황이 됐다. 이 학교 변화의 중심에는 정팔영(57) 교장이 있다. 아무도 지원하지 않아 초빙교장 공모가 두 번이나 무산된 학교에 2007년 초빙교장으로 부임한 그는 전교생의 사진과 이름이 담긴, 코팅된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매일 아침 교문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정성 끝에 학생들의 신뢰를 얻었다. 그런 노력으로 제천산업고는 2007년, 2008년 2년 연속 충북도교육청 생활지도 우수학교로 선정됐다.

9시 등교하는 학생이 20명도 안 되는 학교

제천산업고가 문제 학교였다는데 2007년 초빙교장으로 부임하셨을 당시 상황은 어땠습니까?
“학교에 처음 오던 날 부임인사 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심각해 한나절 동안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어요. 전교생 중에 9시에 등교하는 학생이 20명도 채 안 되고, 그나마도 책가방 없이 빈손으로 학교에 왔다가 가고 싶은 시간에 가버리는 식이었죠. 시험시작 10분도 안 돼 책상에 모두가 엎어져 자더군요. 학교 밖 상황은 더 심했습니다. 제천의 청소년 사건 · 사고 대부분이 우리 학교 학생들이었죠. 그러니 학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던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어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가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학교가 이런 상황이 된 요인을 제가 분석을 했을 때 교사 > 학부모 > 동문 > 지역 인식 > 학생 순으로 문제가 있다고 파악했어요. 그리고 교사, 학부모, 동문, 지역사회 인사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더니 모두가 ‘학생이 가장 큰 문제’라고 대답했죠. 모두가 학생한테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 학교의 문제였어요. 그분들에게 이 학교의 가장 큰 문제가 학생이라면 제가 쉽게 해결하겠다고 했습니다. 학생들이 변하면 변하는 만큼 여러분도 따라 변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어요.”

학생들의 문제라면 쉽게 해결하겠다고 하신 건 어떤 이유에서였습니까?
“저는 수학이 전공이고 교감까지 인문계고 시스템밖에 몰랐습니다. 전문계고 교장이 되면서 ‘아 이런 어려움도 있고, 이렇게 소외된 아이들이 있구나!’를 느끼고 겸허함을 알게 됐죠. 공부 못 한다며 부모들은 포기했고, 학교에 오면 선생님들은 골칫거리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관심 받기를 원하죠. 그래서 아이들이 택한 방법이 사고를 치는 것이었어요. 본성이 나쁘거나 거친 아이는 없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서 소속감을 갖게 해주면 학생들의 문제는 풀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처음에는 거부하던 아이들도 마음이 열리니까 순식간에 달라졌어요. 최근 3년간 제천에서 청소년 문제로 연루된 아이들이 없습니다. 그 결과로 최근에 청주지방검찰청제천지청의 ‘법 질서 우수학교’ 표창까지 받았죠.”

학교를 바로 잡기 위해 가장 먼저 어떤 일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생활지도부터 바로 잡았습니다. 그것만이 학부모의 신뢰를 얻는 길이고, 생활지도가 되면 공부나 다른 것들은 순차적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판단했어요. 우선 인사지도부터 시작했는데 학교 어디든 아이들을 만나면 붙잡고 ‘어른한테는 무조건 인사를 해야 한다’면서 5분이고 10분이고 설득하고 마주 서서 인사를 했어요. 저는 인사가 선생님들에 대한 기본적인 존경의 표시가 된다고 생각해요. 교사들도 인사하는 아이는 얼굴이라도 한번 쳐다보고 관심을 가지게 되죠.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예의를 갖추는 것, 이게 바로 학교를 바로 잡는 첫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교장선생님 잔소리 듣기 싫어 마지못해 인사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누구나 인사하는 게 학교 분위기가 됐죠.”

등교시간에 학교에 오는 20명도 안됐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하셨나요?
“제가 먼저 솔선수범했어요. 7시 20분에 출근해서 교내를 돌며 청소하고 전교생의 얼굴과 이름이 담긴 책을 만들어서 8시 40분부터 교문에 서서 한 명 한 명 등교하는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설득하고 등교를 독려했어요. 2~3주 만에 전교생이 9시 이전에 등교하는 놀라운 변화가 이루어졌죠. 그다음 달엔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이제 너희를 믿는다’고 칭찬하면서 선물을 줄 테니 8시 15분까지 등교하자고 설득했어요. 모든 선생님들이 안 될 거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약속을 지켰어요. 아이들이 기특해서 일찍 등교해 얻은 35분간 특기적성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선생님들을 설득해 오후에도 특기적성 교육을 한 시간을 더 넣었죠. 그 시간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자격증을 취득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학생들이 1인당 2.5개의 자격증을 따고 있죠. 저는 아이들에게 자격증을 선물로 줬습니다.”

생활지도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 중요한 부분이 폭력문제였어요. 그때 당시 학생들 간의 폭력도 문제였지만 교사가 학생에게 멱살을 잡히는 일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2007년, 2008년 2년간 교육부 지정 학생인권시범학교를 했습니다. 무조건 안 된다고 하지 않고 내가 인정받고 대우받는 방법은 먼저 남을 이해해 줄 때 가능한 것이라고 설득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특강을 했습니다. ‘나에게는 소중한 너희들을 잘 키우려고 하는데 폭력 문제로 내 품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어렵다. 선생님들 품으로 들어와 달라’고 솔직한 호소도 했어요.”

고교 중간고사 수학문제가 ‘2+3’, ‘100+2’
센세이셔널한 수학 문제를 내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활지도가 어느 정도 되고 나니 아이들이 학력이 문제였어요. 시험시간에 답을 쭉 찍고 자다가 종소리에 깨는 아이들을 바꿔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시험을 잘 보고, 안 보고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시험 보려는 자세 자체가 안 되어 있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궁리를 하다 중간고사 수학 시험 15문제를 제가 내겠다고 했죠. 선생님들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들이 시험을 볼 수 있도록 깨워달라는 부탁만 했어요. 1번 2+3, 2번 1×3, 3번 100+2 이런 식으로 15번까지 냈습니다. 시험이 끝난 후 보니 복도에서 아이들이 깡충깡충 뜁니다. 덮어놓고 포기하려고 했는데 풀 수 있었거든요. 그전에는 수학이 평균 13점, ‘수’가 한 명도 없었는데 그해 기말고사를 마치고 보니 수학이 정규분포가 나왔죠. 일단 학생들이 시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그 이후부터 차츰 시험 문제를 어렵게 내면 됩니다. 이제는 학생들이 시험 기간이면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합니다.(웃음)”

교장선생님의 의지가 있었어도 교사들의 도움 없이는 이뤄내기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선생님들께 부담 많이 드렸어요. 우선 생각을 바꾸자고 설득했습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못한다고 야단치는 것은 교사의 의무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이해시키고 깨닫게 해서 이끌고 나가는 것이 교사의 임무이니 어떤 방법으로든 끌고 가라고 강조했죠. 아이들이 없으면 우리는 존재 할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퇴근도 못하고 아이들 가르치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일을 해오셨는데 앞으로 학교를 어떻게 이끌고 가실 것입니까?
“이 학교를 자동화기기 특성화 학교로 만들어 지금 제천산업고의 취업률은 50%가 넘어요. 또 정원 30명인 미용과의 경우 매년 50명 정도가 지원해 20여 명이 다른 과로 입학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죠. 다른 과로 들어오는 학생들이 안타까워 특기적성교육으로 뷰티아카데미를 개설해 100% 미용자격증을 취득하게 하고 있습니다. 제 인문계고 경력을 살려 입학사정관제 준비를 제대로 하게 해 진학도 많이 하고 있죠.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 취업이 우선이라고 설득합니다. 앞으로는 전문계고 본연의 목적을 살리고 아이들에게 실질적이고 희망이 되는 선물, 희망 로드맵을 제시해주고 싶습니다. 인문계 학교의 대안으로 선택하는 학교가 아니라 자신의 꿈을 위해 선택하는 학교로 만들고 싶어요. 전문계고 교장이 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이 전문계고의 자존심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문계고 선생님들 고생 많이 하시지만 사기는 저하되어 있습니다. 기술을 가진 학생들이 취업해야하는데 진학에 뜻이 더 많고, 힘든 일 하기 싫어해요. 산업현장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우리 기술을 모두 배워가고 있죠. 이런 안타까운 현실들을 고쳐나가고 싶습니다.”

교장선생님의 노력들이 결실을 맺는 것을 보면서 남다른 보람을 느끼실 것 같습니다.
“골치는 아팠지만 인문계 학교에만 계속 근무했다면 교직의 오만함만 가지고 퇴직을 할 뻔했습니다. 또 지금 느끼는 만큼의 보람도 못 느꼈겠지요. 이 학교에 와서 가장 큰 수확은 아이들에게 겸손함을 배웠다는 것이에요. 내 품에서 응석 부리는 자식들은 잘 살펴보면 뭔가 불만이 있는데, 잘 풀어주면 잘 성장해서 내 품으로 돌아옵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에요. 지금도 저녁이 되면 함께 고생하며 길을 찾은 제자들에게 ‘교장선생님 소주 한 잔하시겠어요?’하고 전화가 옵니다.(웃음) 학생, 학부모들의 ‘고맙다’는 칭찬과 격려에 신바람이 납니다. 교직에서 이보다 더 큰 보람이 어디 있겠어요.”
이상미 월간 새교육 기자 smlee24@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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