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4 지킴이’로 학교 바꾼 충주대원고 이승우 교사
‘1004 지킴이 프로그램’을 시작하신 2004년, 학생생활부장을 자청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학교는 학력수준이 중하위권인 학생 1000여 명이 다니는 인문계 남고입니다. 당시 적어도 40% 이상이 흡연을 해 학교 화장실은 늘 담배연기로 자욱했고, 학교 안팎은 담배꽁초 투성이였죠. 음주, 폭력, 절도 사건에 휘말려 경찰서 출입하는 학생의 수도 해마다 줄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생은 학교에 대한 자긍심이 없었고 주변에서 학교를 보는 시각도 좋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중요한 청소년기를 너무 쉽게 보내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특히 시각장애가 있는 제 아이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시달림을 당할 때면 ‘과연 학교교육이 이래서 되겠는가’ 하는 회의가 들었죠. 단순히 벌세우고 혼내는 식의 생활지도는 그때뿐, 청소년 비행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에이, 또 걸렸어’라고 생각하지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이끄는 교사 중심의 생활지도에서 벗어나 학생 스스로 중심이 되는 생활지도를 만들어 행동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진짜 교육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동안의 생활지도 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아이들을 바꾸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떤 식으로 접근하셨습니까?
“우선 선생님들의 의견을 모아 ‘3無 운동(폭력, 담배, 쓰레기 없는 학교)’ 스티커를 만들고 학교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제가 하려는 생활지도는 학생 스스로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해 학생회의에서 학생회 간부들에게 ‘우리가 학교를 한번 바꿔보자’고 호소해 의견을 모았죠. 그런 후에 제 전공이 수학인데도 틈날 때마다 전교 30개 교실을 수없이 돌며 설득하고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공감대 형성만 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어요.”
“고자질이 아닌 진심으로 친구를 걱정한 아이들”
선생님의 새로운 시도에 아이들의 거부감은 없었나요?
“거부감보다 더 의외의 결과가 나왔죠. 3월에 시작해 5월이 지나니 학교에서 버젓이 담배 피우던 아이들이 숨어서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1004 지킴이’로 ‘000 사물함 운동화 속에 담배와 라이터가 있어요’, ‘00가 배에 담배를 숨겨서 지금 화장실로 피우러 가고 있어요’하는 제보가 들어오니 더 이상 학교에서는 숨어서도 필수 없게 됐죠. 그 후에는 PC방 등 학교 밖에서 피웠는데 그마저도 ‘1004’가 지켜보고 있으니 결국 아이들이 담배피울 곳이 없어졌고, 친구의 감시(?) 덕분에 담배를 끊는 아이들이 아주 많아졌습니다.”
‘1004 지킴이’가 나쁘게 보면 친구를 선생님에게 고자질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어떻게 성공하게 됐나요?
“요즘 아이들에게 친구가 잘못했을 때 선생님에게 문자를 보내라고 한다면 아이들이 보낼까요? 아이들이 고자질이라고 조금이라도 느꼈으면 성공하지 못했을 거예요. 핵심은 ‘1004’ 문자가 날아왔을 때 그 아이를 절대 야단치지 않고 선생님이 안아주고 감싸주는 것입니다. 또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죠. 아이들이 잘못했더라도 선생님에게 언제든지 다가와 상담할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처음에 김철수(가명)가 담배를 피웠다는 문자가 왔어요. 교실에 가서 1004 문자를 보낸 주인공이 누구냐고 물으니 아무도 손들지 않았죠. 철수를 불러 문자를 보여주고 ‘어때? 너를 위해서 이렇게 노력해주는 친구가 있으니 넌 얼마나 좋으니? 담배는 언제부터 배웠어? 친구가 이렇게 응원해주니 이젠 같이 끊어보자. 너희, 이런 우정 절대 변치 말아라’하고 말해줬어요. 그런 후에 누가 문자를 보냈는지 물으니 주인공이 나왔고 반 아이들과 모두 함께 응원해줬습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아무리 해도 담배를 못 끊는다며 ‘선생님이 도와주세요’하고 직접 친구를 교무실로 데리고 온 학생도 있었어요. 1004 문자가 정말 친구를 위한 일이라고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준 것이 유효했죠.”
“생활지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
아이들이 보낸 문자를 보면 흡연뿐 아니라 학교 폭력, 왕따, 도난 등 학교 내 모든 문제들이 드러나네요.
“휴대폰 문자의 저장용량이 다 찰 정도로 문자가 오는 날들도 많았어요. 이 ‘1004 지킴이’가 성공한 것은 학생들과 제가 쌓아온 믿음, 신뢰가 바탕이 됐기 때문이에요. 사실 좋은 생활지도 프로그램은 많습니다. 그러나 신뢰가 있어야 생활지도는 성공할 수 있어요. 또 중요한 것은 ‘가슴’으로 하는 생활지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아이 키우기도 힘든 요즘, 저는 1000명의 학생들과 공감대를 형성해 학교에 큰 변화를 가져왔어요. 학교를 바꾸겠다고 하니 처음에 동료교사들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들을 믿었어요. 매일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너 오늘도 담배피웠니? 왜, 힘들었어? 그랬구나. 우리 내일부터 다시 시작해볼까?’, ‘00 요즘에도 담배 때문에 힘들어하니? 니가 친구니까 함께 도와줘야 해’하고 아이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말썽 피우는 아이들의 어깨를 두드리는 그런 생활지도 광경을 처음에는 다른 선생님들도 이해하지 못했죠.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 아이들이 바뀌니 다들 놀랐습니다.”
‘1004 지킴이’ 6년, 대원고는 어떻게 변했나요?
“이제는 우리 학교 모든 아이들과 선생님이 ‘1004’를 씁니다. 처음에 적응하기가 힘들었지, 지금은 학생 스스로 감시하는 ‘1004’ 때문에 학교의 모든 문제가 해결돼요. 자율학습, 너무 잘 됩니다. ‘1004’ 한 통이면 알려지니 떠들며 소동을 피우지도, 도망가지도 못해요. 어디서, 어떻게 노숙자에게 담배를 사는지, 누가 PMP로 이상한 동영상을 보는지, 어떤 학생이 왕따를 당하는지 모두 제보가 오죠. 너무 정확하니 아이들도 거짓말하기 힘듭니다. 미리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문자로 제보받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니 학교폭력 예방도 자동으로 됩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담배를 피워도 ‘1004’ 문자가 올 정도죠. 학생생활지도가 정말 힘들다고 하시는데 사안이 생긴 다음에 처리하려고 하면 힘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미연에 방지하면 신뢰감도 생기고 아이들이 올바로 커나가는 것을 보면서 교사로서 보람도 느낄 수 있어요. 시스템만 잘 갖춰놓으면 특별히 어렵지 않습니다. 학생 생활지도가 더 이상 서로 인상 쓰며 체벌하고 징계받는 문제가 아니라 스승과 제자 간에 신뢰를 주고 받는 일이 되는 것이죠. 너무 보람 있고 재미있는 일입니다.”
“선생님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교사중심 생활지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셨는데 교사가 명심할 것이 있다면.
“생활지도는 교사가 먼저 본보기가 돼야 해요. 마음을 움직이려면 말로해서는 안됩니다. 선생님이 솔선수범해 따르게 해야죠. 저는 1년 365일, 교문에 나가 교통지도를 합니다. 그 후에는 학교를 깨끗이 쓸고, 휴지통을 들고 다니며 쓰레기를 줍죠. 특별한 문제가 없어도 퇴근해 저녁을 먹고 다시 학교로 와서 손전등을 비추며 학교를 돕니다. ‘선생님이 저렇게 열심히 하시는 구나’를 보고 깨닫게 하는 것이죠. 6년째 하니까 아이들이 이제 제 말이라면 잘 따릅니다. 또 생활지도는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 학생 스스로 변화할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것만 명심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대원고를 벤치마킹해 ‘1004 지킴이’를 시도했지만 실패한 학교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생활지도는 교사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게 가장 힘든 점이죠. 퇴근하는데 ‘1004’ 문자가 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차를 돌려 학교로 옵니다. ‘1004’ 문자를 받는 즉시 선생님이 반응을 보여야 해요. 문자를 보내도 묵묵부답이라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수시로 문자를 확인하고 받는 즉시 출동하는 직업병이 생겼습니다.(웃음) 또 생활지도를 하려면 교사가 무던히 참고 인내해야 하는데 말이 쉽지 실제로는 어렵습니다. 순간적으로 끓어오르는 감정은 묻어두고 도 닦는 기분으로 대해야 할 때가 많아요. 하지만 그런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쌓인 아이들과의 신뢰는 반드시 더 큰 보람으로 돌아옵니다.”
생활지도에서 ‘체벌’을 빼놓을 수 없는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체벌 금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교육에서 체벌은 해라, 말라는 선을 그을 수가 없어요. 때로는 교육적인 체벌도 학생 지도에 있어 중요합니다. 대신 교사의 감정이 섞이면 안 되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느 만큼의 체벌이 적절한지 아이들과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매를 대서는 안 됩니다. 요즘 현장에서는 정말 사랑의 매를 대고 싶어도 겁이 난다는 소리를 많이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교직생활이 무엇일까요? 바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무슨 짓을 하든 관여하지 않고 내 수업만 하는 것이죠. 그럼 비난받을 일도 없고, 잔소리 안 하는 인기교사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올바른 일일까요? 교사가 사랑의 매를 드는 것은 아이에게 관심이 있고, 소명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교육적인 체벌마저 할 수 없는 교육 현장이라면 과연 통제가 될까 생각해봐야 해요.”
“선생님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 아쉽다”
교사로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요즘 뉴스를 보면 성폭행, 성희롱에 체벌, 비리까지…. 선생님들이 죄인입니다. 교육가족이 50만 명이고, 열심히 하는 열정적인 선생님이 너무 많은데 일부의 잘못만을 대서특필하고 있어요. 공교육이 잘되려면 기본이 바로 선 학생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되려면 선생님들에게 많은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생활지도를 잘하고 싶은 선생님들께 어떤 말을 해주고 싶습니까?
“요즘은 대다수의 학부모가 맞벌이를 합니다. 지금은 가정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킬 만한 시간과 여유가 없어요. 학교교육이 무너지면 안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죠. 국가적으로 아이들 교육의 마지노선이 이제 학교가 된 것입니다. 선생님들이 이제는 시대적인 사명감과 소신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