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정치중립성 훼손 말라” 마지막 호소

2014.08.01 09:00:0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직선제 폐지를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교총은 헌법 31조 4항에 명시된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보장 정신에 부합치 않는 교육감직선제는 명백한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로 했다. 안양옥 회장은 “교육에서 정치적 중립이 없으면 교권도 없다”면서 “교육이 정치에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 _ 한명섭 객원기자


교육감 직선제 폐지 헌법소원을 추진하고 있는 안양옥 한국교총 회장은 지난달 7일 “교육감 직선제는 교육의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제도”라며 “이번 헌법소원은 대한민국 교육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결단”이라고 말했다. 안 회장은 이날 <새교육>과 인터뷰에서 “지역교육 수장을 선거로 뽑으면서 학교는 교육부와 교육감의 이중권력에 시달리고, 줄 세우기 인사와 포퓰리즘 정책 탓에 교육은 만신창이가 되는 위기에 빠졌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그러면서 안 회장은 “헌법 정신에 따르면 교육감은 임명제로 하고 3선 연임을 교육감 단임제로 바꿔야한다”며 “그래야 교육이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바른길을 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법원장과 감사원장, 검찰총장 등 고도의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을 요구하는 자리를 모두 임명제로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그는 또 6·4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진영 교육감이 대거 당선된데 따른 ‘화풀이 헌소’라는 지적에 대해선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교총은 지난 2010년부터 단식 농성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교육감 선출제도 변경에 온 힘을 쏟아 왔다”고 말했다. 안 회장은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국회에서조차 법률개정이 무산되는 것을 보고 교육이 정치에 종속되는 것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어 정면 돌파를 결정했다”며 “교육감 선거 결과와는 무관하다”고 일축했다.


우리 교육이 살얼음판 위에 있다고 했는데.
“한국교육은 지금 진보의 구름 속에 덮여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 교원들에 대해 ‘네이션 빌더’라고 칭찬했지만 우리는 낡은 신자유주의 이념을 내세워 교사들의 동기유발이나 자긍심을 완전히 약화시켜 버렸다.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이 정부도 시간선택교사제와 같은 급진적 진보교육을 밀어붙인다. 교사가 공급자고 학생이 수요자라는 왜곡된 교육철학이 난무하고 교육자치제라는 미명아래 진보 교육감들의 줄 세우기 인사와 검증 안 된 포퓰리즘 정책으로 학교는 만신창이가 돼 간다. 세계사적 흐름은 진보주의에서 본질주의 교육으로 바뀌고 있는데 우리만 정반대로 역주행 하고 있는 셈이다.”

원인이 뭐라고 보나?
“1987년 이후 전교조를 중심으로 한 교육민주화 열풍에 보수 성향의 교육자들이 주도권을 상실하면서 비롯됐다. 조직운동에 능한 특정 세력은 교장선출 보직제를 요구하고 학교운영위원회와 시·도 교육위원회를 지배하는 한편 교육감 직선제를 실시하면서 지방교육 권력을 장악했다. 진보진영이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는 동안 보수 세력은 넋 놓고 있다가 당한 꼴이 됐다.”

교육감 직선제를 바꾸자는 것인가.
“교육감 선출제도는 주민통제의 원리가 강조되면서 2006년 정치적 산물로 도입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헌법 31조 4항이 보장한 교육의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간과됐다. 더 큰 문제는 교육감 선거에 정치세력, 시민사회, 노동계 선거기획자들이 개입하는 바람에 ‘교육선거’가 ‘정치선거’로 변질됐다는 점이다. 선출직 교육감들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각종 이권개입과 후보매수 논란에 휩싸이면서 교육계 명예를 실추시켰다. 실제로 10여 명의 전·현직교육감들이 검찰의 수사를 받는 등 직선제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그래도 교육민주화는 중요한 덕목이다.
“비정치 기관장인 교육감을 고도의 정치행위를 요구하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과 같은 방식으로 뽑는 것은 명백한 정치적 중립 위반이다. 민주적 가치만 중시한다면 대법원장이나 감사원장, 검찰총장도 주민직선으로 뽑아야 할 것이다.”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근거는?
“막상 교육감 선거를 치러보니 보수와 진보의 진영대결로 변질되고 정책과 전문성보다는 정치적 영향력과 인지도가 당락을 가르는 결과를 초래했다. 현직교원은 교육감 선거에 나가고 싶어도 정치적 중립 조항 때문에 아무런 활동을 할 수 없다. 반면 교육계 밖 인사들은 최소한의 자격요건만 갖추면 얼마든지 정치 행위를 하면서 선거 기반을 다질 수 있다. 전문성을 가진 사람은 발이 묶여 있고 일반인은 마음껏 활개 치는 제도다. 그러다보니 몇 년 동안 정치 활동을 한 사람은 당선되고 마지막까지 교육에 전념하는 사람은 떨어지는 게 교육감 선거의 현실이다. 이런 모순이 어디 있나. 여기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단순히 선거 때문인가.
“교육이 정치화되면 교권이 약화된다. 정치논리와 진영논리가 판치는 현행 체제 아래서는 교권이 제대로 설 수가 없다. 교권의 만고불변의 진리는 정치적 중립인 것이다. 따라서 이번 교육감 직선제 헌법소원은 죽어가는 대한민국의 교권을 살리고, 대한민국 교육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저항이다.”

헌법소원을 낸 것도 그 때문인가.
“교육의 전문성·자주성·정치적 중립성을 명시한 헌법 31조는 지방교육자치법보다 상위 개념이다. 그런데 교육자치법에 매몰돼서 헌법 정신을 부분적으로 적용하다 보니 정당에만 가입 안 하면 된다는 인적 요인만 규제하게 됐다. 교육감 선거제도가 갖고 있는 정치적 함의에 대해서는 간과했다. 헌법소원을 통해 교육감 직선제가 헌법이 정한 교육의 정신과 얼마나 배치된 것인가를 확인시켜 주고 싶다.”

6·4 교육감 선거에서 보수진영이 패배하자 직선제 폐지를 요구했다는 지적이 있다.
“교총은 2010년 이후 단식농성을 불사하며 줄기차게 직선제 폐지를 요구해 왔다. 또 지난해 대의원

대회 결의사항이기도 하다. 교총 여론조사 결과 회원의 87%가 직선제 폐지에 찬성하고 있다.”

지금까지 왜 미뤘나.
“법률자문을 받아 보니 헌법소원 요건이 되기 위해서는 이해 당사자가 기본권을 침해받았다고 판단되는 시점부터 90일 이내에 제기해야한다고 하더라. 그러니 6·4 지방선거 이전에는 하고 싶어도 못했다. 8월 중에 헌법재판소에 접수할 계획이다.”


만약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린다면?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명시한 헌법 31조 4항은 사문화되는 거다. 그럴 경우 구상 단계지만 교육감 단임제를 요구할 생각이다. 단임제를 통해 교육감들이 선거용 정책보다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게 할 것이다. 그래야 인사 줄 세우기 폐해도 없애고 소신껏 일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감 3선을 허용하니까 교육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서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진영 싸움 하고 사사건건 정치색을 띄는 것 아닌가. 좁은 나라에서 여기는 진보, 저기는 보수로 갈라져 교육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교육정책만이라도 정치로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튼튼한 기틀을 만들고 싶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헌법에 명시한 나라는 OECD 국가 중 우리가 유일하다. 법률이 아닌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의미를 깊이 새겨야 한다.”

합헌이면 교총도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인데.
“지금 단계서 언급하는 것을 적절치 않다. 다만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에 근거한 단체가 교총이다. 그런데 교육감 선거를 지켜보면서 교원단체 존립에 대한 이념적 정체성을 다시 검토해볼 필요가 생겼다. 헌재의 결정을 지켜봐야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교총도 정치활동을 요구할 수도 있다. 교원의 이익을 보호하는 길이라면 가시밭길이라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전교조는 민주노총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사실상 원하는 대로 정치활동을 한다. 단체행동권만 없을 뿐이다. 반면 교총은 공직선거법에 발이 묶여 꼼짝을 못한다. 그러니 그들이 각종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다 해도 막아낼 재간이 없다.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진보의 흐름에 당당히 맞서 대한민국 보수 교육정책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교총이다. 또 교총은 교원의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다. 강한 정치력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앞으로 계획은?
“헌재 결정이 나오기까지 1년 반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미증유의 도전 앞에 서 있다. 지금껏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이고 가보지 못한 길이지만 새로운 교총을 위해 멈추지 않겠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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