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감정을 느끼며 삽니다. ‘喜怒哀樂愛惡慾(희노애락애오욕)’과 같은 기본 감정 외에 수백 가지 감정이 있으며, 생각보다 훨씬 더 위력적으로 우리를 지배합니다. 생각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력의 속도를 거북이걸음에 비유한다면, 감정은 토끼가 아니라 빛의 속도로 우리 몸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만큼 ‘즉각적’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한번 감정에 휘말리면 생각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어서 나중에 후회할 행동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초감정’이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무의식 상태에 기억된 감정적 경험과 가치관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나타나는 ‘감정에 대한 감정’입니다. 예를 들어, 우는 아이에게 “뚝 그쳐!” 하고 화를 내며 야단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눈물을 허약함으로 인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공감의 중요성을 터득한 사람은 함께 슬퍼해 줍니다. 이렇듯 살아온 경험과 받아들인 철학, 물려받은 정서적 유산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각자 다른 감정적 반응을 보입니다. 이러한 다양성에서 사회규범이 조율되어 갑니다.
‘수능’과 ‘대기업 취업’이라는 학부모들의 집단 초감정
그러나 만약에 사람들이 같은 경험과 사고관을 지녔다면 결국 같은 초감정을 공유하게 되고, 같은 행동(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서로 같은 행동을 보면서 본인의 반응이 정상이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다 실체가 있는 건 아니지요. 강한 초감정은 이성적 생각과 판단이 개입될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팩트(fact)가 아닌 환상이 집단으로 유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집단 초감정’이 작동될 때에는 마치 집단 최면에 걸린 듯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학부모는 교육에 관하여 거의 동일한 초감정을 지닌 것 같습니다. ‘수능’이라는 단어에 대다수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일단 귀가 쫑긋해지고 가슴이 뜁니다. ‘대기업 취업’이란 단어에도 신경이 예민해지고 촉각을 세웁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학부모는 수능 점수를 위해서 초ㆍ중ㆍ고 12년 내내 죽어라고 공부했고, 점수에 따라 직장이 달라졌고, 인생의 진로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부모는 창의력과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뒷전으로 하고, 수능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게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하소연합니다.
그러나 과연 수능의 중요성이 현실일까요? 아니면 학부모의 집단 초감정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과거의 환상일까요? 팩트를 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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