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20년 전 만들어진 ‘5・31 교육개혁안’의 한계에서 벗어나, 진화된 대한민국의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5월 30일 한국교총 회관에서 열린 ‘5・31 교육개혁 20주년 평가 세미나’에서는 정부주도의 교육개혁에 대한 평가와 분석을 통해 향후 대한민국 교육패러다임의 방향을 모색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단임 정부 성과주의가 빚은 톱다운식 교육개혁의 한계
안양옥 한국교총 회장은 이날 기조강연에서 “5・31 개혁은 세계화, 정보화의 무한경쟁 시대에 대비하고 한국 교육의 질적 성장을 추구한다는 명분 아래 신자유주의 해법을 교육에 적용한 정부 주도의 하향식 개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교원은 공급자, 학생・학부모는 수요자로 대별시킨 시장 경제적 접근으로, 교원의 책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바람에 교원들의 자율적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 했다”며 한계를 지적했다. 안 회장은 5・31 교육개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 성과지향의 톱다운 방식 탈피 ▲ 초정권적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 교육정책 입안 때 반드시 국민대토론회 개최 및 교육구성원 참여 보장 ▲ 학생과 교원, 학부모가 같은 교육관을 형성하는 학사모일체(學師母一體) 운동 전개 ▲ 1교사 1사회 공헌활동 등 ‘새로운 교원상’정립을 제안했다.
기조강연 이후 안선회 중부대학교 교수, 박남기 광주교육대학교 교수, 최의창 서울대학교 교수, 김성렬 경남대학교 교수가 차례로 주제 발표에 나섰다.
교육재정 GNP 5% 확보 성과 있지만 사교육비 증가 등 부작용 커
안선회 중부대 교수는 ‘5・31 교육개혁이 학교교육에 미친 영향’이란 주제 발표에서 ‘학교혁신을 위한 타당한 개혁정책과 학교내부의 구조와 문화, 교수학습을 위한 구체적이고 적합한 추진전략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5・31 교육개혁은 지방교육과 단위학교의 자율성과 책무성을 증진시키고 교육의 다양화・특성화를 추진하는 성과가 있었지만 고등학교 서열화, 내신 경쟁심화, 교원의 사기 및 학생 지도력 약화 등의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교육개혁 정책과 관련, 안 교수는 교육재정 GNP 5% 확보, 선택교육과정 확대, 고교 다양화, 학생부 중심 대입제도 개선, 학교운영위원회 구성, 방과후교육 활동 확대, 인성・창의성 중심교육 등을 성공사례로 들었다. 그러나 교원평가제 도입을 계기로 교원의 사기와 열정 및 학생지도력을 약화시킨 점과 고교서열화 등 경쟁교육이 심화돼 사교육비 부담이 크게 늘어난 것은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1998년 학생 1인당 월평균 6만 원이던 사교육비가 2014년 24.2만 원 수준으로 크게 오른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고 강조했다.
교육계에 대한 따끔한 지적도 내놓았다. 5・31 교육개혁이 교원을 개혁 대상으로 내몰았다는 교육계의 불만에 대해, “교원이 교육개혁의 주체는 맞지만 (교원이) 교육개혁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교원 스스로가 교육개혁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현실감이 없다”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어 “(교사에게) 책임교육이 강조되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원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국가 세금을 가지고 교육 하면서 (교사가)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건 당연하며, 책무성은 학교에 꼭 필요한 가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높은 교육열 원동력 삼아 교육개혁 판 새롭게 짜야
‘학교교육 혁신의 방향과 과제’를 주제로 두 번째 발표에 나선 광주교대 박남기 교수는 “교육이 특정 정파에 좌우되지 않도록 초정권적 국가교육위원회를 구성하고 학교혁신 의제 설정 때는 교육전문가인 교사에게 최종 결정권을 주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육의 경우 학생의 실력 향상을 위해 학교 현장에서 열정을 갖고 헌신하는 선생님이 바로 전문가”라며 “학생을 직접 상대하고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교사가 학교혁신 정책의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우리 국민의 높은 교육열과 학습열을 에너지원 삼아 교육개혁을 추진하고 홍익인간의 이념을 세계시민교육으로 재정립,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는 새로운 교육개혁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학부모의 교육열과 학생의 학습열을 잘 활용하면 교육개혁의 새로운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며 “교육열과 학습열은 핵(核)과 같은 존재여서 한꺼번에 폭발하면 재앙이 되지만 이를 잘 제어하면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에너지원처럼 교육개혁의 자양분이 된다”는 논리를 펴 주목을 끌었다.
그는 이어 우리의 교육이념인 홍익인간을 계승 발전시켜 세계시민교육의 가치로 삼아야한다고 주장했다. ‘홍익인간’을 우리 교육의 진정한 이념으로 부활시켜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을 구분 짓는 교육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가르치면서 성장하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박 교수는 5・31 교육개혁의 실패 요인으로 ▲ 정부가 교사를 공급자로, 학생은 수요자로 구분해 양자 간 갈등을 초래한 점과 ▲ 경기 불황으로 청년 일자리가 줄어든 것을 학교교육의 잘못으로 책임 전가한 점 ▲ 교육대통령을 표방하면서도 교육을 정책 우선순위에서 제외한 정부의 이중적 행태를 각각 예로 들었다.
‘교원을 개혁대상으로’ … 5・31 교육개혁 결정적 패착
교원정책에 포커스를 맞춘 최의창 서울대 교수는 교원정년단축과 교원평가 도입, 교원 잡무증가. 교권 추락 등 5・31 교육개혁이 교사들에게 미친 부정적 영향을 날카롭게 제기했다. 최 교수는 “5・31 교육개혁 이후 교원의 근무여건 및 복지가 향상된 측면이 있지만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전문성 신장 정책 부재로 교권 위상 하락 등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교원의 질을 높인다며 추진한 정년단축은 사실상 경제논리에 충실한 것이었고 각종 교원 연수 역시 교원들이 자질과 능력이 부족하다는‘결핍모형’에 기본을 둔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교원평가제 시행으로 교직사회는 경쟁적인 문화가 형성되고 평가 척도의 공정성 논란이 일면서 교원의 사기를 더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교원이 전문인으로 존경과 신뢰를 받지 못하고 학부모와 교원 간 ‘능동적 불신’이 증가하는 등 교권 실추를 초래한 것을 가장 큰 실책으로 평가했다.
5・31 교육개혁에서 드러난 교원정책의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최 교수는 ‘교사학습 공동체 활성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교사에게 주어지는 과도한 수업 부담과 행정업무 경감을 덜어주고 교사증원 및 행정보조요원을 확충하는 지원 방안을 통해 교직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교원평가 결과를 성과급에 연계하거나 교직 퇴출 기준으로 적용해서는 안 되며 교원 연수 역시 교원 스스로 전문성을 신장할 수 있는 기법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권확보와 관련해서는 교권보호법을 조속히 제정, 교권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제도적 장치 마련을 촉구했다. 그는 “최근 빈발하고 있는 교사에 대한 각종 폭력 행위에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필요하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또 수업내용 편성권, 교재선택권, 성적평가권, 생활지도권, 징계권 등 교육활동과 관련된 학습권의 보호 영역을 법률적으로 구체화. 교사의 교육권을 확실히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함께 교직경력 8~10년 차 중견교사들의 전문성을 높이는데 초점을 둔 교직구조 재구조화를 통해 이들 연령대 교사들이 교직사회의 주축이 될 수 있는 다양한 트랙이 제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교장의 리더십과 전문성 강화를 위해 ‘교장연수원’을 신설, 교장후보자들에 대한 교육 훈련을 실시하는 한편 교장 임용 때 교육경력 상향 및 현장 교육경력과 연구능력을 엄격히 평가하는 심사 기준 강화 방안도 제안했다.
학교자율성 높이고 학교장 리더십 등 역량 강화해야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김성렬 경남대 교수는 ‘학교 교육혁신을 위한 교육행정체계의 구축’이란 주제를 통해 학생들의 특성에 맞는 수업 프로그램 적용과 단위학교의 자율성 확대를 학교 혁신의 핵심 과제로 꼽았다. 김 교수는 “도전감 없는 쉬운 과제로 공부하면 학생들이 곧바로 싫증을 느낄 수 있고 너무 어려운 과제는 좌절감을 가지게 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특성에 맞는 적합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교과 내용의 성격과 학습자의 특성에 적합한 다양한 교수방법을 활용하도록 해야 하며, 수업을 진행할 때 교과내용만을 잘 가르치려고 할 것이 아니라, 학습자를 인간으로서 존중하려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러면서 “교사는 지식의 전달자만이 아니라 코치로서, 상담자로서, 학습관리자로서, 참여자로서, 지도자로서, 학습자로서, 교과개발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어야 진정한 교육자”라고 강조했다.
학교장에 대해서는 리더십과 의사소통 능력을 길러 학교교육 혁신에 앞장서 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학교장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 높은 비전 ▲ 끈질긴 노력 ▲ 학생에 대한 긍정적 기대 ▲ 교사의 역량강화 노력 ▲ 공동체문화 조성 ▲ 지역사회와 학부모 협력 촉진 ▲ 안전하고 질서 있는 환경 조성 ▲ 구성원 간 활발한 의사소통 지원 ▲ 학습시간 보장 ▲ 참여민주주의 실천 등을 각각 꼽았다.
시・도교육청과 단위학교의 자율역량 강화방안도 제시했다. 그는 “단위학교가 교육행정기관으로부터 보다 확대된 자율성을 가질 때 학교단위의 교육혁신이 촉진되기 때문에 학교 중심의 자율경영체제를 구축해야 하며 교육행정기관이 가지고 있는 권한은 ‘적절하게’ 단위학교로 이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위학교의 자율역량강화를 위해서는 ▲학교장의 분명한 위상설정 ▲학교운영위원회 중심의 참여적 의사결정체제 구축 ▲단위평가와 투명한 학교정보 공개 등이 뒷받침 돼야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또 “학교 중심 자율경정체제는 학교단위 교육혁신의 시작이고 지속 가능한 조건”이라고 전제한 뒤 “이를 통해 교육수요자의 교육적 관심과 요구를 충족시켜 교육만족도를 높이는 데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