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상담 도중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는 아이들을 만난다. 상담자도 사람인지라 돌아나가는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을 깊은 심호흡으로 억누를 때도 있다. 내 인생 최고의 ‘강적’은 올해 만난 1학년 학생이다. 상담 도중 “상담교사라는 사람이 그딴 식으로 말할 거면 입 닥쳐요. 여기서 나가라고요”라고 소리치는 학생이다. 3개월 정도를 만나고 있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교사들은 물론 선배들도 멀리서 이 학생이 나타나면 피해 다닐 정도이다. 도대체 이 아이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견적’조차 나오지 않는다. 상담을 한다고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 학생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은 부담스럽고, 두렵다. 하지만 이대로 사회에 내보내면 9시 뉴스에서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더 두려웠다. 기나긴 싸움이 시작되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변화가 생겼다면 상담실에 비상벨이 생겼다는 것이다. 한 대 맞을까 봐서….
7살에서 정신적 성장이 멈춘 듯 보이는 아이
처음 상담실에서 만났을 때 어깨는 좌우로 삐딱하게, 치마에 손을 찔러 넣고, 눈은 위아래로 훑어 내리면서 건들건들 걸어 들어왔다. 의자에 털썩 앉으면서 “××, 이 학교 선생들은 다 쓰레기 같다니까. 왜 남의 핸드폰을 뺏고 지랄이야”라며 욕부터 내뱉었다. 그리고는 어서 인성지도부에 가서 자신의 핸드폰을 찾아오라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응? 내가? 왜?”라고 반문하자,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핸드폰을 뺏겼어요. 그래서 달라고 했더니 안 된다잖아. 상담샘은 애들을 도와줘야 하는 거니까, 샘이 나를 도와줘.” 직장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지시를 내리는 듯 반말로 일관했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그건 도와주는 게 아니라 심부름해주는 거잖아.”라며 거절했다. 그랬더니 “그럼 내 핸드폰 어떡하냐고. 내 핸드폰 내놓으라고”를 외치며 상담실 바닥에 퍼질러 앉아 발을 굴렀다. 기가 막혔다. 마치 마트에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는 7살 어린아이 같았다.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떼를 부리는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어른이 지쳐서 항복할 때까지 떼를 쓴다. 협상하며 어른을 제압하려 한다. 점점 강도가 심해져 육체적·언어적 폭력을 가하면서 자기 뜻대로 상황을 이끌어 간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해를 해서라도 항복을 받아내려고 한다. 따라서 이런 경우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는 식으로, 제풀에 꺾이도록 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눈치를 살피던 학생은 툭툭 털고 일어나 교실로 가버렸다.
두 번째 만남은 더 기가 막혔다. 수업시간에 교사에게 대들다가 상담실로 끌려온 학생을 개인상담실에 잠시 대기하게 하고, 밖에 나와 어떤 상황이었는지 자초지종을 듣던 중이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서 안을 들여다봤더니 상담실 사물함을 뒤져서 과자를 꺼내먹고 있었다. “뭐하니?”하고 묻자, 또다시 상담실 바닥에 퍼져 앉아 대성통곡하며 울었다. 기괴한 소리까지 내면서. 마찬가지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저 눈물 자국 많이 났어요?”라고 물으며 자리에 앉아 화장을 고쳤다.
세 번째는 체육복을 입고 다니다가 인성지도부에 걸려,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난 후였다. 여전히 흥분상태에서 씩씩거리며 나에게 황당한 한마디를 했다. “담배 피우다 걸린 아이와 체육복 입고 걸린 아이를 동급으로 취급하는 학교가 어디 있어요? 아니 어떻게 둘 다에게 벌점을 줄 수가 있는 거죠?” 체육복을 입은 거나 담배를 피운 거나 둘 다 교칙위반인 것은 마찬가지라는 설명에 또 이렇게 외쳤다. “상담교사라는 사람이 그딴 식으로 말할 거면 입 닥쳐요. 여기서 나가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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