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만치 100만 명 국민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 한 목소리로 외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니 답은 있었다. ‘박근혜 퇴진’이란 국민의 외침에 대한 답은, 맙소사 연기를 빙자한 검찰조사 거부였다. 2차 사과에서 밝힌 ‘성실한 검찰조사’의 약속을 박대통령 스스로 뒤집고 이른바 버티기 모드로 돌입한 것이다.
버티기는 엘시티 철저수사 지시와 인사권 행사 등 사실상의 국정 재개에서도 엿보인다. 그게 신호탄인 듯 그와 동시에 새누리당 친박계가 다시 돌격대로 나섰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 극우단체들도 맞불 집회 따위로 준동하기 시작했다. 100만 촛불집회 이후 뭔가 화끈한 매듭풀이가 나올 것을 기대한 민심과 동떨어진 시국으로 급반전한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전무후무한 국가 사유화사건도 그렇지만, 이후 돌아가고 있는 나라꼴을 보고 있자면 말문이 턱 막혀버린다. 분명 나라가 잘못돌아가고 있는데도 원인을 제공했거나 책임자여야 할 박대통령이 화끈하게 책임지지 않고 있어서다. 정치권의 대책 등 후련하게 수습되지 못하는 정국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게다가 박대통령 탄핵절차마저 최장 6개월, 새누리당 이탈표 여부, 장담할 수 없는 헌법재판소 통과 등 이런저런 제약이 있다니 그야말로 미쳐 팔짝 뛸 지경이다. 그런데 미쳐 팔짝 뛸 일이 더 있다. 내리 3주째 굴욕적이라 할 100점 만점에 5점짜리 박대통령의 하야반대 집회와 정홍원 전 국무총리의 ‘마녀사냥’ 운운하는 옹호 따위이다.
지금 비선실세 국정농단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된 박대통령 범죄혐의는 보수니 진보를 따져 질책할 문제가 아니다. 또 박사모니 친박계가 그렇게 설쳐댈 사안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진짜로 박대통령을 위한다면 지금까지 드러난 각종 비정상적 행위만 가지고도 참회하고 책임을 함께해야 맞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인간의 도리다.
뭐, 십이분 양보해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야 ‘당무수석’이니 ‘머슴 의리’란 비아냥을 들어온 처지이니 그렇다치자. 심지어 김진태 의원은 직이라도 걸었는지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며 촛불집회서 표출된 민심을 칠싸리 껄짝 취급하고 있다. 과연 박대통령 임기가 끝난 1년 4개월 후의 자신을 생각해보고 한 말인지 의문이다.
또 하나 이해 안 되는 일이 있다. ‘식물대통령’이 주는 자리도 벼슬이라고 넓죽넓죽 받는 사람들이 즐비한 점이 그것이다. 나름 깊은 뜻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들은 국민들로부터 퇴진압박을 받고 있는 박대통령과 한패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청와대 비서실장과 민정수석, 국무총리 내정자와 외교부⋅문체부 2차관, 그리고 박대통령 변호인 등이 그들이다.
그들은 국민의 공복(公僕)이 아니다. 그냥 대통령의 심복일 뿐이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도 심복이긴 마찬가지다. 100만 촛불민심을 확인했으면 응당 총사퇴를 해야 맞을 것 같은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런지 그게 아니다. 누구 하나 이런 대통령 밑에서는 부끄러워 각료를 못하겠다면서 물러나지 않으니 국민의 심부름꾼은 아닌 것이다.
생각해보자. 차관은 그만두고 총리를 비롯한 장관들만이라도 일괄사표와 함께 업무거부를 선언한다면 아무리 ‘버티기의 여왕’ 박대통령이라하더라도 뒷통수 맞은 듯 크게 당황할게 뻔하다. 그 점은 청와대 수석 등 보좌진도 마찬가지다. 그 공백의 혼란을 어떻게 하겠는가? 이를테면 국민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인사권자의 눈치만 살피는 그들의 자리보존이야말로 ‘참 나쁜 대통령’의 또 다른 주범인 셈이다.
이미 내놓은 자식쯤으로 치부하니 친박계야 그렇다치자. 새누리당에서도 비박계는 지금 한가하게 ‘한 지붕 두 살림’으로 내홍만 키울게 아니다. 과감하게 집단탈당하여 박대통령과 확실히 선을 긋는 결연한 행동이 필요하다. 그들의 정치적 새 출발을 위해서가 아니다. 나라살리기 선결과제인 ‘박근혜 퇴진’을 이끌어낼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어서다.
지금은 그만큼 비상시국이다. 왜 수능을 끝낸 고3 학생들이,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찍었던 기성세대들이 광장에 모여야 하는 나라가 되었는지 답답하고도 안타까운 나날이다. 얼마나 많은 애먼 국민들이 30년 전으로 돌아가 분노를 쏟아내야 하는지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너무 부끄러운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