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세기의 시작과 간첩식별법

2017.03.01 00:00:00

<새교육>으로 본 교육사

“The Eagle has landed(이글호 착륙했다).” 인간이 달에 위대한 첫 발을 딛는 순간 닐 암스트롱이 했던 첫마디다. 1969년 7월 16일에 발사됐던 미국의 유인 우주왕복선 아폴로 11호의 닐 암스트롱 함장과 착륙선 조종사 버즈 올드린이 4일 후인 7월 20일에 드디어 달에 발을 딛는 모습을 대한민국 국민도 흑백텔레비전으로 세계인과 함께 시청했다. 미국인의 세기적 성취는 당연히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미국은 달 착륙, 우리나라는 국민교육헌장

1960년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공화당 후보 리처드 닉슨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말 그대로 ‘흙수저’ 출신의 정치인으로서 하버드 대학을 나와 정치에 입문한 후 39세에 미국 최연소 부통령이 된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반면에 민주당의 존 F. 케네디는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하버드대학을 나오고 20대에 하원의원에 당선된 인물이었지만 앵글로 색슨계가 아닌 아일랜드계였고, 미국의 주류 종교 개신교가 아닌 가톨릭을 믿는 구교도였다. 미국 대통령 선거 최초로 TV토론이 생중계된 이 선거에서 연설의 천재 리처드 닉슨을 0.1% 차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이미지 정치에 강했던 케네디였다.

케네디가 대통령 임기 첫 해를 시작한 1961년 4월 12일 소련은 유리 가가린이라는 최초의 우주인을 태운 유인 인공위성을 쏘아올림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했다. 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 발사에 성공한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4년만이었다.

냉전에서의 잇단 패배로 실망한 미국 국민들을 향해 케네디는 1961년 5월 25일 상하 양원 합동위원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나는 이 나라가 1960년대가 지나가기 전에 달에 인간을 착륙시킨 뒤 지구로 무사히 귀환시키는 목표를 달성할 것을 믿는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교육을 변화시켰다. 즉, 미국 교육의 상징이었던 진보주의 교육을 약화시키고 기초 과학 교육을 강화하는 결과로 나타났고, 변화한 교육의 성과 위에서 케네디가 선언한 목표는 달성됐다.

공교롭게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당시의 대통령은 8년 전 케네디에게 패했던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이었다. 닉슨은 이후 재선에 성공했지만 탄핵에 직면해 1974년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했다. 그러나 달세기가 열리는 과정을 통해 정권과 무관하게 국민과 공유할 수 있는 국가의 비전이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사회적 동력을 총동원하는 모습 속에서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가 가져야 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이 달 착륙을 미국의 목표로 선언하던 바로 그해에 우리나라는 5.16 군사정변을 맞았고,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할 즈음에 국민교육헌장이라는 추상적 교육선언의 실천에 모든 교육적 역량을 쏟아 붓고 있었다. 모든 교육내용이나 방법의 설정 기준도, 교육성과의 평가 기준도 국민교육헌장이었다. 그것은 법 이상이었다. 

포스트 아폴로 시대 교육 비전 요구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소식은 <새교육>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폴로 달 착륙 후 처음 간행된 1969년 9월호의 권두언 제목은 ‘달세기의 개원과 한국교육’이었다. 이 글은 아폴로 11호의 성공을 이끈 원동력은 “뭐니 뭐니 해도 그러한 과학 기술의 모체인 인간의 창조적 정신을 개발하고 신장케 한 교육”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아폴로 11호의 성공이 한국 교육에 주는 교훈은 “한국의 교육도 이제 포스트 아폴로(Post-Apollo) 시대에 적응할 수 있을 만한 원대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하여 우선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정치가를 비롯한 모든 지도층 인사들 사이에 새로운 달세기에 대비한 비전의 확립이 아쉽다”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권두언에 이어 9월호는 특별기획으로 ‘아폴로 시대의 우주과학’을 게재했다. 

발사에서 귀환까지의 과정을 다룬 위상규 서울대 공대 항공공학과 교수의 글 ‘신대륙 달을 정복하다’, 달의 지질학적 특성을 다룬 김봉균 서울대 문리대 교수의 ‘달 정복과 우주개발의 가능성-지질학적으로 본 달세계를 중심으로-’, 아폴로 11호 이후 우주개발의 방향을 논한 현정준 서울대 문리대 교수의 글 ‘아폴로 11호의 성공과 전망’, 그리고 아폴로 11호의 성공을 가져온 배경을 설명한 이남규 조선일보 기자의 ‘달 탐험을 가능케 한 미국의 과학정책’ 등이 실렸다. 

미래교육 비전보다는 안보에 치중 

여기까지였다. 불과 몇 개월 후 1970년대의 문을 여는 신년호도, 몇 개월 후 맞이한 광복 25주년을 기념하는 1970년 8월호도 온통 국민교육헌장 이념의 구현을 향한 목소리만 난무할 뿐 이른바 ‘달세기’에 대비하는 그 어떤 교육적 이상이나 방법도 더 이상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지도층 인사들 사이에 교육의 비전 마련을 위한 새로운 노력도 없었고, 우주과학 시대에 대비한 과학정책이나 교육정책에 대한 고민도 보이지 않았다. “교육은 70년대의 국운을 좌우한다”는 박정희대통령의 담화는 교사들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강조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광복 25주년 기념호인 1970년 8월호의 내용 구성은 당시의 시대상과 교육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실린 글의 제목을 보면 ‘국가안보와 교육의 역할’ ‘북괴간첩 식별법과 신고요령’ ‘국가사회발전과 사회교육의 역할’ ‘학원소요에 있어서의 교수의 역할’ ‘경부고속도로의 완공’ ‘해군방송선의 납북’ ‘국립묘지에 침투한 공비’ ‘캄보디아 내 미국철수’ 등이 포함돼 있다.

교육전문 잡지라고 말하는 것조차 어색하게 만드는 내용이 많았다. 20년 전 창간 초기와 마찬가지로 교육자들이 긍지와 자부를 지켜줄 것, 우리 민족에게 부과된 추상적인 교훈을 교육자들이 솔선해 실천할 것을 억지스럽게 당부하고 있었을 뿐(솔선과 실천, 김형남) 국민들이 공감하는 교육적 목표를 창출하거나 제시하고자 하는 지도자들의 노력이나 고민은 찾을 수 없었다. ‘달세기’는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해방 25주년을 기념하면서도 아직도 “우선 해방 당시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 그리고 반공교육이 “형식에 흐르고, 유야무야의 존재에서 탈피하여 진정한 가치 판단과 올바른 실천으로 학교 교육의 기본 골격을 이루어야” 할 것을 주장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세계에 있어서 최초로 금속 활자를 발명하였고… 거북선이란 철갑선을 만들어 낸 우수한 문화민족” 타령을 하고 있었다.

교육의 양적 성장 이뤘으나 과학교육 외면 

아폴로 11호의 성공 속에 아주 잠시 흥분하던 한국의 교육계는 다시 국민교육헌장 중심의 반공교육, 도덕교육, 민족주체성 교육에 매달리는 모습으로 돌아갔다. 아폴로 11호 발사 이듬해인 1970년에 간행된 열두 번의 <새교육> 수천 페이지에서 단 한 번도 과학교육이 특집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우주과학 관련 주제를 다룬 글조차도 단 한 편만이 실렸다. 현직 교사 박상인이 쓴 ‘인공위성과 우주여행’이란 글이 1970년 11월호에 실렸을 뿐이다.

1970년을 마무리하는 12월호에도 국민교육헌장 2주년을 기념하며 그 교육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글들은 넘쳐났지만 과학교육을 향한 어떤 대책이나 의지를 보여주는 글은 없었다. 12월호에 게재된 포토뉴스에서는 제18회 학생의 날을 맞아 서울시내 1만 6000명의 고교생들이 효창운동장에서 승공을 다짐하는 합동 교련 훈련을 하고 있는 장면이 눈길을 끌고 있었다. 같은 호의 권두언에서 수학여행 기차사고로 경서중학교와 인창고등학교 학생들이 희생당한 가슴 아픈 사고 소식을 전하면서는 기계문명의 횡포를 경계했을 뿐 과학발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1970년대 초반 우리나라 인구의 1/4이 학생이었다. 그 비율은 교육선진국 미국과 동일한 수준이었다. 국가의 노력보다는 학부모들의 교육열에 힘입어 이룬 양적 성장이었다. 교육의 질적 발전은 성취해야 할 무거운 과제로 예나 지금이나 교육자들을 괴롭히고 있었지만 지도자들은 시대적 과제를 외면한 채 정치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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